엔지니어의 숫자와 에세이스트의 사유
엑셀 시트 위의 세상
수심 -18미터, 파고 3.0미터, 일일 준설량 45,000 m3. 공사비와 공정률, 영업 이익률. 나는 그렇게 숫자로 먹고살았다. 현장 보고서는 항상 숫자로 채워졌다. 프로젝트 코드 2021-KD-003, 손익분기점 87%. 파일명도 숫자로 시작했다. 직원 한 명도 결국 숫자였다.
발주처는 규모순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대기업 A사 연 29조원, 중견사 B사 연 3000억 원. 엑셀 시트 위에서 세상은 명료했다. 계산이 잘못되면 구조물은 쓰러진다. 견적을 잘못하면 회사가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사람보다 숫자를 먼저 보았다.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프로젝트 수익률이 어떻게 되나?" "직원 1인당 매출 목표는?" "안전사고 발생 확률은?" 성공은 검은색 숫자였고, 실패는 적색이었다.
보고서에 찍힌 숫자에 따라 성과급이 달랐다. 숫자는 나를 보호했다. 설득할 때 근거가 됐고, 책임을 나눌 때 방패가 됐다. 그렇게 회사에서 숫자로 일했다. 숫자가 곧 권위였고, 실적이 존재 증명이었다.
커서가 깜박였다 - 사유의 세계
어느 날, 엑셀 화면을 닫았다. 은퇴였다. 대표라는 직함이 사라졌다. 전화와 미팅도 없었다. 숫자가 사라지자 허전했다. 한 달쯤 지나서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빈 화면에 커서가 깜박였다. 첫 에세이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경제성장과 생태계 파손이었다.’ 너무 딱딱해서 지우고 고쳐 쓰기를 여러 번 했다.
엑셀은 숫자만 입력하면 됐다. 그러나 빈 문서 앞에서 나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공학은 수치와 단위를 맞추는 일이다. 오차는 ±0.5%, ±2mm로 측정된다. 그러나 에세이의 오차는 다르다. "이 문장이 사람의 마음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 보이지 않는 거리다. 나는 사전에서 단어를 다시 찾았다. 이 부사와 형용사가 꼭 필요한지, 이 비유가 맞는지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을 다듬는 것이 기술 보고서와 닮아 있었다. 둘 다 본질을 찾는 일이었다. 구조물의 본질은 끝까지 견디는 힘. 사업의 본질은 지속 가능성. 글의 본질은 진솔한 문장.
그리고 질문이 달라졌다. 예전엔 "이 공사에서 몇 퍼센트 이익을 남기나"였다. 지금은 "이 이야기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다. 숫자는 세상을 측정한다. 에세이는 세상을 품고 보듬는다. 나는 측정기에서 보듬자로 옮겨가고 있었다.
숫자의 폭력
세상은 숫자를 맹신한다. 학생은 점수로 줄 세우고, 직장은 평가 등급으로 내쫓는다. 사람의 가치는 연봉, 자산, 팔로워 수로 매겨진다. 심지어 건강도 콜레스테롤, 혈압, 혈당, 체지방 수치로 판단한다. 숫자 만능주의다.
숫자의 위험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성적, 소득, 집값 몇 줄로 요약한다. 그러나 직원 평가서에 쓰인 숫자 뒤에는 그 사람의 스토리가 있다. 새벽 6시에 공사 현장을 점검하던 김 과장. 출산한 아내를 두고 현장 사고를 수습하던 이 과장. 숫자는 그들의 눈물, 희생, 돌봄, 용기를 담지 못한다.
숫자는 관계를 거래로 만든다. "이 만남은 나에게 얼마나 이익인가?" 명함을 받으면 회사 규모부터 추정했다. 사랑과 우정은 계산하는 순간 식어버린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노인, 장애인, 약자를 밀어낸다. 숫자는 차갑다. 공정해 보이지만, 숫자를 만든 사람의 의도를 숨긴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숫자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숨겼는가?" 이익률 숫자 뒤에는 새벽 현장에서 땀 흘린 노동자가 있다. 목표 달성 110%라는 숫자 뒤에는 주말도 없이 일한 직원이 있다. 숫자는 그들을 감춘다.
숫자는 바닥, 인간은 천정
나는 엔지니어로 여전히 숫자의 필요를 안다. 해상 풍력 프로젝트 검토서를 쓸 때 숫자는 필수다. 수심, 해저 지반 강도, 바람의 방향과 속도. 숫자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숫자는 오류를 찾고, 현실의 한계를 발견하고, 위험을 미리 계산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를 사람보다 우선시하는 태도다. 숫자는 바닥이고, 인간은 천정이다. 숫자는 의사결정의 기초일 뿐, 그 위에 사람의 가치를 세워야 한다. 이익률이 높아도 노동자의 안전을 무시하면 그 공사는 재검토해야 한다. 숫자로 판단하기 전에, 사람을 봐야 한다. "이 결정으로 누가 피해를 보는가?" 질문 하나가 숫자의 폭력을 막는다.
숫자는 질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왜 이런 숫자가 나왔는가?" "이 숫자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 인생은 숫자로 요약하지 않는다. 인생의 가치는 다른 질문에 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엔지니어로 나는 숫자 덕분에 생계를 유지했다. 에세이스트가 된 나는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쓴다. 숫자는 세상을 계산하게 해 준다. 서사는 험한 세상을 건너게 해 준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숫자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숫자에 예속되지 않는 태도다. 숫자는 삶을 설명하는 기호일 뿐, 사람의 존재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면 안 된다. 엔지니어의 숫자 세계에서 시작한 내 인생은 에세이스트의 사유로 균형을 찾아간다.
나는 이제 숫자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 숫자를 내려놓은 자리에 평온이 찾아왔다. 고진하 시인은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 나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