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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Apr 05. 2021

하고 싶은 게 없을 땐 뭐부터 해야 할까?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기록하는 하루



나는  사람을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고민인 사람과 하고 싶은  없어서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 하고 싶은  많은 사람은 일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어떻게 하면   해낼  있을지 고민만 하다 하루가 끝난다. 하고 싶은  없는 사람은 없어서 고민하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이 든다. 둘의 고민은 완전히 다른  같은데 결과는 똑같다. 고민만 하다 아무것도  하고 하루를 보낸 , 사실 모두  이야기다.


하고 싶은 게 없던 어느 날은 세상에 흥미가 하나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꿀꿀한 이 기분을 일기에 쓰려고 일기장을 꺼내 보는데, 이미 기분이 안 좋을 때 써둔 기록만 한가득이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문장을 발견했다. ‘요 며칠 계속 기분이 안 좋았는데, 오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어떻게 나아졌는지를 까먹지 않으려고 적어본다.’라고 시작한 문장이었다. 거기에는 내가 나에게 조언하는 3가지 팁이 적혀있었다.      


1. 책을 읽는다.

2. 밖에 나가서 산책한다.

3.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본다.      


‘에이, 뭐야. 별거 없네.’ 하며 일기장을 덮었다. 사놓고 쌓여있는 책이 책장에 수두룩이 쌓여있고, 밖에 나가기는 귀찮다. 하지만 계속 집에만 있으면 더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아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잠깐의 외출이지만 알차게 계획을 세웠다. 당근마켓에서 사기로 한 스탠드 조명을 받으러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사 오는 것.

  

하고 싶은 게 없던 사람이 서점에 갔는데 무심코 고른 책에서 영감을 받을 확률은 5:5다. 나에게 좋은 책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니까. 그러니 열심히 뒤져야 한다. 몇 권을 사서 집에 왔다. 조명을 켜고 한층 더 아늑해진 테이블 위에 오늘 산 책을 올려놓는다. 귤을 까먹으면서 한 권을 읽기 시작한다. 재밌게 읽기 시작하다가, 잘 쓴 문장을 보고 나는 왜 이렇게 못쓸까 의기 초심해지다가, 또다시 빛나는 문장을 발견해서 밑줄을 긋는다. 갑자기 저 마음 한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해보고 싶은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겼다. 까먹지 않게 메모해두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업가는 휴대폰 메모장에 사업 아이템을 줄줄이 적어 놓는다고 했다.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적기도 하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니 적어두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또 어떤 창작자는 내가 유튜브를 할지 말지 고민이었을 때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지금 바로 영상으로 찍고 싶은 이야기 10가지를 써봐요. 그게 써지면 유튜브 해도 돼요.” 10가지 리스트가 금방 써졌다. 그리고 한 편, 두 편을 올렸다. 세 번째쯤 되었을 때 미리 써두었던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영 형편없다.


‘아니, 뭘 이런 걸 써놨담, 써놓은 한 줄 빼고 더는 할 말도 없네’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나면 실패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역시 나는 게으르고 끈기가 없다며 자기 비난을 하게 되고,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던 마음은 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바뀐다. 끝까지 하지도 못하는데 해서 뭐하나 싶고.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할 바에 시작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기죽은 마음이 된다. 이런 때에는 sns나 비핸스, 핀터레스트는 보지 않는 게 좋다. 남들의 작업은 더 빛나 보이고, 나는 더 처참하고 못나게 느껴지니까.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스위트홈>을 보게 되었다.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나, 영화 속 갇혀있는 상황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실에 더 우울해졌다. 한층 더 깊어진 우울감과 대단치 못해서 괴로운 마음은 뜻밖의 곳에서 해결되었다. 극 중 한 인물이 큰 슬픔에 빠졌다. 누구나 쉽게 겪을 법한 슬픔이 아니었고, 그런 죽음 앞에서 과연 누가 어떻게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로될 때도 있지만, 감당하기 힘든 괴로운 상태일 때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쉽게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커다란 상처를 드러내는 것, 남도 나만큼 힘들고 불행한 사건을 겪었는지 아는 것은 왠지 위로가 된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기혐오 개쩌네. 넌 너가 되게 대단한 줄 아나 본데 미안하지만 아니야. 난 너랑 끝까지 살아남을 거야. 할 거 없었는데 그거라도 해야겠네.”  



나의 괴로움은 죽음의 괴로움과 비슷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해보려고 하다가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역시 나는 잘 안될 인물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을 때였다. ‘넌 너가 되게 대단한 줄 아나 본데 미안하지만 아니야.’ 이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내가 오늘 이렇게 시도한 것만으로도 잘한 거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꽤 괜찮은 것같은 느낌이랄까.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도움이 된다. 완벽한 히어로나 대단히 멋진 캐릭터로 설정하지 말고, 우여곡절도 많고, 허점투성이인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록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없거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지라도. 조금씩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편에 서서 응원하고 싶어지니까.




그러니 하고 싶은 게 없을 땐?

스스로를 대단하게 바라보지 말 것.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할 용기를 스스로에게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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