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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Dec 13. 2020

햇살 같이 따뜻한 가족히어로, 파워 팩(2020) #1

제가 오늘 준비한 책은 2주 전에 발매된 따끈따끈 핫신간 <파워 팩> #1 입니다. 청소년 히어로들의 자경단 활동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아웃로드> 이벤트의 타이인으로 나온 5부작 리미티드 시리즈예요. 딱히 볼 생각은 없었는데, 타임라인에 한줄평으로 "뉴비들이 입문하기 딱 좋은 책"이라는 걸 보고 정말 홀린듯이 사서 읽어보았어요. 아~ 입문서는 못 참지 ㅋㅋ

아묻따 3.99달러를 투자해서 읽어보기로 결심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작가진이 있어요. 다행히 글작가도 그림작가도 제가 아는 이름이었거든요. 제가 글작가 라이언 놀스를 알게 된 계기는 제법 특이한 편인데요. 라이언 놀스는 코믹스가 아니라 스팀 게임 'To Be or Not to Be'를 통해 알게 된 작가였어요. <햄릿>의 주요 등장인물이 되어 재치있는 나레이션과 함께 다양한 선택지를 골라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는 어드벤처 캐주얼 인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 정말 나레이션이~ㅋㅋㅋ 진짜 진짜 너무 너무 웃기거든요! 어찌나 재밌는지 몇 회차를 반복하면서도 배를 잡고 깔깔 웃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이 게임을 만든 작가가 코믹스도 엄청 열심히 쓰고 있대요. 주요 저서로는 <천하무적 스쿼럴걸>이 대표적입니다. 스쿼럴걸 코믹스를 한 번쯤 들춰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발랄하고 유쾌해요. '재미'라는 것을 제대로 아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니코 레온은 마일즈 모랄레스의 솔타 <스파이더맨>(2016)과 <에이전츠 오브 더 아틀라스>(2019)를 통해 알게 된 작가였는데요. 제 안의 니코 레온은 뭐랄까, Unimpressed하다는 인상이 컸어요. 예시로 들고 온 페이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군데군데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컷별로 낭비되는 공간이 많고 그게 페이지 전체적인 구성에서 마이너스 기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도 <파워 팩>을 집어드는 데 있어서 크게 망설임은 없었던 게, 저는 애시당초 작품을 고를 때 글작가70:그림작가30 정도의 비율로 고려하는 편이어가지고요. 그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글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중요한 거잖아. 그렇게 생각했지요.

무작정 배경지식 없이 직접 읽어본 <파워 팩> 1편,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진짜 진짜 즐겁게 읽었어요. 우선 그림작가 니코레온의 역량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니코 레온은 직접 펜슬링과 잉킹을 동시에 하는 사람인데, 선이 확실히 더 나아졌더라고요. 선의 굵기를 시기적절하게 자유자재로 쓰면서도, 구성면에서도 페이지가 전처럼 비어보이거나 붕 떠보이지 않고 적재적소에 있을 것과 없을 것이 잘 맞춰 들어가있었어요. 인물의 외곽선을 조금 더 굵게 처리한 부분이 저연령대를 타겟팅한 캐주얼 코믹스에 잘 어울렸어요.


채색! 우와! 채색은 정말이지 끝내줬습니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무척 화사해요. 마치 아침 햇살을 받은 화단의 꽃잎처럼 근사하고 포근해요. 예시로 가져왔던 2019년 <에이전츠 오브 더 아틀라스>와는 다른 컬러리스트가 채색을 담당했는데 어때요, 얼굴 색을 칠하는 방법부터 많이 다르죠?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은, 다소 밀도가 낮은, 평면적인 인물 채색법이 오히려 캐주얼 코믹스에 걸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슈 1편은 반나절 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슈가 시작할 때즈음에는 정오의 따스한 햇볕을, 이슈가 끝날 때즈음에는 황혼의 어두침침한 땅거미를 훌륭하게 잘 표현해냈어요. 이 시간의 흐름이 극중 갈등의 흐름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갈등의 시각화라고나 할까요.


스토리 측면에서 보아도 상당히 훌륭한 코믹스였어요. 파워 팩에 대해 잘 모르는, 저와 같은 신규 유입 독자들을 위해서 오리진과 스토리 recap을 가장 막내 동생 케이티의 삐뚤빼뚤 수제 만화를 통해 보여준 것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요. 초능력 남매들이 어느덧 '청소년'이라고 부를만한 나이로 성장했다는 점도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쳐요. 결혼기념일을 맞은 부모님에게 능숙하게 거짓말로 둘러대서 괴물의 습격을 받은 고아원을 구하러 가는데, 부모님에게 안 들킬 거짓말을 하는 거야말로 청소년이 됐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웃음)


앞으로의 전개가 어느정도 추론이 가능할 정도로 힌트를 주어야 하는 게 이슈 1편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파워 팩>은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시크릿 아이덴티티를 밝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시리즈 후반부에 '비밀신분'이 중요한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겠구나 (즉, 떡밥이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이슈 1편의 백미는 그거지요. <아웃로드> 이벤트 타이인이니만큼, 청소년 슈퍼히어로 팀인 파워 팩에게 미치는 법망의 마수!!! 우, 도무지 다음 편을 읽지 않을 수가 없어요. 너무너무 기대돼요.

파워 팩의 핵심은 '가족'입니다. 4남매가 서로를 극진히 생각하는 상냥한 마음씨가 페이지 곳곳에서 묻어나요. 아이들의 초능력도 비주얼적인 부분부터 너무 사랑스럽지 않나요? 빠른 비행 능력을 가진 둘째 줄리는 날아오르는 궤적을 따라 무지개를 남겨요. 파워 팩이 가는 곳마다 무지개를 보고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요. 장난꾸러기 셋째 잭은 포슬포슬 구름이 될 수 있어요. 믿음직한 첫째 알렉스는 중력을 조종해요. 막내 케이티는 물건을 에너지로 변환해서 블라스트를 쏠 수 있습니다. 네 사람 모두 lethal한 능력은 거의 없는 수준이고, 그나마 '공격적'인 케이티의 능력도 이슈의 화자인 케이티 본인의 캡션을 통해 무기로서가 아닌 영웅적인 에너자이저로서 묘사되고 있어요. 아이가 직접 주체의식을 갖고 하는 말이니만큼 더욱 진실되고도 뜻깊으며 흐뭇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요즘 같은 날에 보기 힘든 A급 명작이라고도 감히 칭해봅니다. 무척 재미있으니 망설이지말고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강추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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