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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은 May 30. 2023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퍼블릭 커핑'

커핑(cupping)
커피를 더 깊게 즐기는 법





그는 커피를 좋아한다. 나도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다.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비슷한 시기였는데, 지금의 그는 커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깊이 좋아한다.


지난가을에는 그와 함께 코엑스에서 열린 카페 쇼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훨씬 큰 커피시장에 놀란것도 잠시, 다양한 품종과 브랜드의 커피를 마시며 반쯤 취해 헤롱거렸다.


카페 쇼가 커피에 대한 넓고 얕은 경험이었다면, 이번 경험은 비교적 깊이 있는 커피 체험.

바로 '퍼블릭 커핑'에 다녀온 거다.

(커핑 구경하는줄 알고 그를 따라갔다가, 갑자기 참여하게 되어 당황했다. "제.. 제가요?" "우.. 우리도 해..?")



2023. 05.28 커핑



커핑(cupping)이란,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감별 하는 일이라고 한다.


커핑에 대해 알게 된 건 그가 유튜브를 통해 잠깐 커핑 장면을 보여줬을 때였다. 일반적으로 커피를 맛보는 것과 달랐다. 보울에 원두를 갈아 넣고, 물을 넣어 갠 후, 숟가락으로 커피를 마셨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ㅊ슈웁-!"

(실제로 'ㅊ슈웁-!' 하는 소리가 난다. 엄청나게 파워풀한 소리다. 마이크를 댄 줄 알았다. )






커핑을 위해 그와 향한 곳은 '로우키 헤이그라운드'


커핑은 약 15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대부분 커핑을 해본 적 있었고 그와 나를 포함해 한 팀 정도가 처음이었다. 처음 가본 공간, 처음 접하는 문화에 조금은 위축되어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대표님이 나와 커핑에 대한 설명을 하셨는데...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지만, 배경지식의 한계로 많은 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로우키에서 했던 커핑은 '퍼블릭 커핑'.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커피를 소개하고, 의견을 나눠 소비자의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는 커핑이다.


이번에 진행된 방식은 주어진 시간 내에 커핑을 하고, 어떤 나라의 원두인지를 맞추는 것.

선태지로 베트남, 브라질, 케냐, 우간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네 가지 나라가 주어졌고,

컵 앞에는 숫자가 부착됐다. 이를테면 블라인드 테스트인 셈이다.


나라 맞추기를 듣고 짧은 시간 동안 든 생각은...

'그래도 내가 우간다 빼고는 다 먹어봤는데...'

'아 솔직히 케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는 구분하겠지.'

 '...내가?ㅋ'


첫 커핑에 앞서 걱정도 됐지만 대표님의 말씀을 듣곤 좀 편하게 임하기로 했다.

"나라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커피에 대해 느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커피는 어떤 향이 나고, 처음에는 어떤 맛이 나고. 시간이 지나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가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커핑 진행방식


1. 원두를 갈아 각각의 보울에 담는다.

(이 원두가 뭔지 알지 모르는 상태로, 각 숫자에 대한 원두의 맛과 향을 느끼는 것!)


2. 컵을 들어 흔들고, 원두의 향을 맡는다.


3.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낸  후, 숟가락으로 물 표면을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세 번 젓는다(브레이킹)

-이때 원두의 가장 많은 향을 맡을 수 있었다.


4, 컵 위에 뜬 커피의 불순물(?)을 걷어낸다(스키밍)


5. 시간별로 커피의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음미한다.(슬러핑)

-이때 위에서 말한 'ㅊ슈웁-!'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커피를 강하게 흡입할 때, 입에 맛과 향이 확 퍼지면서 다양한 노트를 느낄 수 있단다. 대표님들이 슬러핑을 할 때는 정말 엄청난 굉음이 났다. 나도 따라해보았지만, 들리는 건 '호로로록..'(머쓱)




프로 비염인이지만 커피의 향을 맡을 때, 원두별로 향이 다르다는 게 구분이 됐다.

'와...이게 되네?'


하지만 슬러핑을 시작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구분이 어려워졌다. 커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이 점점 바뀌는 거다. 또 계속 맛을 보다보니 혀가 둔감해져서 나중에는 모든 커피가 다 똑같이 느껴졌다. 내 입에 남은 건 그저 산미 뿐....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대표님은 시간에 따라 커피의 맛이 점점 상승하는 게 좋은 커피라고 했다. 여기서 뭔가 머릿속에 느낌표가 생겼다.





슬러핑 이후 사람들과 모여앉아 의견을 나눴다. 어떤 커피가 가장 좋았는지, 또 별로였는지.


와.... 다들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만 모였다. 향수의 탑노트, 미들노트를 말하듯 커피의 시작과 중간, 끝의 각기 다른 맛을 얘기한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고, 처음에는 플로럴함과 열대과일, 팬시함이 느껴졌고, 중반부에는 꿀같은 단맛이, 후반부에는 뒷맛이 클린하게 바뀌어..."

어떻게 커피에서 그 많은 맛을 느낄 수 있는지, 나와 같은 걸 먹은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


그의 차례. 그는 2번과 5번 커피를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2번은 싱싱한 과일이라면, 5번은 익은 과일 느낌이 났다고 답했다. 처음 듣는 커피 표현에 모두가 웃었고, 기가 막힌 비유에 감탄했다.





내 차례가 됐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대표님이 말씀하신 얘기가 생각났다. '시간에 따른 맛의 변화.'


다른 커피들은 처음과 끝의 맛이 달라졌다.  그게 커피가 주는 다양한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내 입에는 맛이 점점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커피를 오래 홀짝이며 마시는 터라, 처음 느낀 맛이 쭉 이어졌으면 싶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2번커피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처음 맛봤을때 느꼈던 맛과 향이 시간이 지나서도 꾸준히 유지되어서였다.


2번 커피가 좋았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요 근래에 자주 마시는 커피와 맛과 향이 유사했기 때문. 처음 맛보자 마자 든 생각

 '아니, 이건...!농밀하고 화려한 과일과 원두가 발효되었을 때 나오는 약간의 쿰쿰함...!'

'이..이건 콜롬비아다..!..발효시킨...!'

(실제 답은 콜롬비아 게이샤였다)





커피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대표님이 정답을 공개했다. 예상했던 게 있는가 하면, 상상도 못한 커피도 있었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그와 내가 그토록 많이 마셨는데도 맞추지 못했다. 원두를 어떻게 가공했고, 어느 산지에서 수확했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다.


케냐라고 확신했던 원두가 있었는데, 그건 케냐 원두를 코스타리카에서 재배했다고 한다. 근데 그럼...그건 코스타리카인가요? 케냐인가요?

(그 외엔 맛의 특징을 몰라서 유추조차 못했다)




어리둥절을 기본값으로 주춤대며 커핑에 참여했지만,

초심자의 행운이랄까... 많은 지식이 없어서 오히려 적은 범위에 집중할 수 있어서일까...

걱정보다 괜찮은 감상을 남겼던 것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처음의 긴장과 달리 공통 이슈가 생기니 다른 사람들과도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보통의 포스가 아닌 사람들에게 커피 업계 종사자냐고 물어봤고, 사람들을 답했다.

"그냥 커피를 좋아해요. 엄청엄청"


생전 처음 해보는 커피 경험. 커피는 점점 내게 마시는 것 보단 경험하는 게 되어간다.


카페를 나서며 그와 얘기했다.

"앞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마시지 말고, 안마셔본 것도 마셔보자!"

"인도, 브라질, 우간다...뭐 우리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가공했냐에 따라 또 달라지니까 다 경험해 보자!"




+

로우키에 방문하신다면 꼭 예멘 커피를 드시길! 예멘은 우리나라에서 잘 취급하지 않는데, 로우키에서 예멘 커피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화려한 맛이 코와 혀를 싸악 감싸노...' 내가 마시는 게 레드와인인지, 커피인지 알 수가 음슴.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후각 어딘가에 맴돌아 불현듯 포도향이 나요.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이 커피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맛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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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은 매주 일요일 '로우키 헤이그 라운드'점에서 진행됩니다. (인스타 참조 : @lowkey_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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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든든하게 먹고 가세요. 저는 거의 빈속을 카페인으로 후드려팼더니 조금 힘들었어요. 슬러핑할때 맛보고 다시 뱉어도 되지만, 저는 그걸 몰라서 다 마셨슴다







커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 사이트로▼(글 쓸때 참고함)

https://bwissue.com/coffeetopics/573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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