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차_사모스수도원과 사리아
아침 6시다.
새벽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활발하게 진동을 울려댄다.
내용을 보니 우리가 폰페라다에 머물고 있는 단체순례자 이야기로 난리다.
메시지 내용은 한국에서 온 단체 순례객들이 새벽 4시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캐리어를 가지고 오셨나 보다.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소리로 알베르게에서 자고 있던 순례자들이 욕하고 화를 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례객을 이끄는 가이드가 오늘 많은 비가 예보돼 일찍 출발하기로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단다.
신부님 이야기도 나오고 해서 자세히 물어봤더니, 성당에서 함께 온 성지순례 팀이라고 한다.
이 팀은 버스로 이동중이고, 생장부터 주요 장소만 찍으며 오고 있었다.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 떨어진 사리아부터는 본격적으로 걷기를 한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인 것을 떠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캐리어를 끌고 왔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벽마다 자고 있는 순례자들이 깨지 않도록 어둠속에서 침낭위에 모든 짐을 쏟아 조심스럽게 응접실로 가지고 내려왔던 내 행위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새벽부터 시끄러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니 기분도 좋지 않다.
밖에 나오니 하늘도 잔뜩 찌푸려있다.
오늘은 두 갈래의 길로 나눠진다.
하나는 사리아라는 도시까지 20km를 걷는 길이다. 한국순례객인 이규석씨와 김홍경씨, 그리고 최영화씨는 이 길을 간다.
다른 하나는 사모스 베네딕도수도원을 거쳐서 사리아로 들어가는 28km의 먼 길이다.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 장 회장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사실, 어제 회장님과 산실을 거쳐 사리아로 가는 20km의 짧은 길을 걷기로 결정한 바 있다.
어제는 먼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만 생각했다.
그 고통을 느끼느니 차라리 조금은 편한 길을 택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오늘 갈림길에서 태세전환을 한 것이다.
“회장님? 안되겠어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모스수도원을 꼭 보고 싶어요.”
“윤 국장? 왜 이랬다 저랬다 해. 사람이 한번 결정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아무튼, 저는 사모스로 가야겠어요.”
사모스수도원은 형은수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곳이다. 그 수도원을 꼭 보고 오라고 당부의 말씀도 있었다.
지금 갈림길에 서서 형은수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다.
‘사모스수도원 꼭 보고 오세요.’
회장님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곧장 사모스길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회장님도 뒤따라오신다.
10분 걸었을까? 하늘이 미친 듯 울어댄다.
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서운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짧은 길로 가는 것 같다. 사모스로 오는 사람이 너무 적다.
사모스까지 비를 맞으며 만난 사람은 고작 6명 뿐이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바르셀로나에서 온 파울리 산드라 부부다.
세차게 내리던 비도 잠시 소강상태였던 때다.
프레이툭세(Freituxe)라는 마을을 지날 때 소 떼가 나타났다.
우리 앞에 가던 남녀(파울리, 산드라)가 멈춰서 소 떼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둥글게 엮은 밧줄을 서로 잡고 있는 것이다.
‘왜 저렇게 걷지! 저분들은 다른 뜻이 있나? 회개의 표지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뒤따라 걷고 있는데, 앞에 가던 여성분이 철푸덕 사정없이 엎어졌다.
그 사람을 돕기 위해 회장님과 근처로 빠르게 달려갔다.
“괜찮아요?” 그녀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웃는다.
그런데, 시선이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많이 챙피하신가 보다.’
“Watch you’re step”-조심히 오세요.
인사를 하고 우리는 앞서 나갔다.
조금 지나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그들이 우리 곁은 지나간다.
우리가 “부엔까미노” 인사를 건네자, 남자분이 여성분에게 무슨 말을 하신다.
여성분이 우리를 향해 아무말 없이 손을 흔들어 주는데 시선이 우리를 보지 못한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저분 앞을 보지 못한다.’
남성분이 계속 중얼중얼 거린 이유를.
밧줄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궁금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해결됐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힘들다’는 표현을 많이 해 왔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은 신발까지 다 젖어 온 날은 더 그렇다.
지금 이 순간 투정 부렸던 모든 일들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걷는 그들 모습은 ‘내가(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주님! 저분들이 무탈하게 잘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어느덧 사모스수도원 앞에 도착했다. 정말 장관이다.
사모스수도원은 6세기에 세워진 베네딕토회로,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아스투리아스 왕 알폰소 2세 시절인 750년대에는 이 수도원에서 야고보(산티아고) 성인의 묘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알폰소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 건립을 지시했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대성당이다.
사모스수도원에서 가장 부각되는 장소는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이다.
이 공간은 산티아고대성당 계단을 본 떠 만든 곳으로, 바로크양식 미완성 파사드로 유명하다.
장 회장님과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만일 순례길에 오르는 분이 있다면 사모스수도원 성당 내부에 꼭 들어가길 바란다.
이 성당의 돔을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은 베네딕도회 의사들이며 성인들인 베르나르도, 안셀모, 일데폰소, 루페르토가 조각돼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온 것이 후회된다.
그리고 수도원 정원에 서 있는 거대 조각상은 베네딕토 성인이 아닌 페이호(Feijóo) 신부다.
페이호 신부는 베네딕도회 수사신부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던 교수신부였다.
당시 사람들이 미신과 무지에 빠져 있는 것에 비판을 했던 신부로, 사람들을 교육을 통해 계몽해야 한다고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가 이곳에서 200km떨어진 오비에도라는 도시에서 죽기까지 과학, 교육, 역사, 종교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한 과학적탐구를 스페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그는 사모스수도원에서도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집필한 서적의 판매수익이 사모스 수도원 유지에 쓰였다고 한다. 수도원 유물실에는 미카엘대천사 상이 놓여 있다. 그 뒤로 보이는 것들이 사모스수도원이 지키는 성물이다.
이 수도원은 현재 8명의 수사님들이 거주하고 모든 관리를 맡아 하고 있단다.
이곳을 투어 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크레덴시알을 가지고 있으면 5유로다.
그러나 투어 시간이 정해져 있다.
먼저 성당이 열리는데 오늘은 12시에 진행한다고 알려준다.
우리가 이곳에 10시에 도착했으니 2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이면 사모스에서 하루를 머물다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회장님께 쉬어갈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장 회장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리아까지 가자고 하신다.
아침에 내가 한번 계획을 틀었기에, 또 계획을 변경하자고 강하게 밀어붙이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회장님은 지금 불만이 가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 불똥이 사모스수도원으로까지 번졌다.
“수도원이 하느님 팔아서 장사하는 곳이야? 5유로나 받아?”
‘회장님의 기분을 풀어드려야겠다.’
투어 시간전까지는 개방되지 않는다.
기다릴 시간이 없던 우리는 수도원 내부로 몰래 잠입했다.
걸리지 않고 돌아다닐 자신이 있었던 나는 머릿속에 비밀스런 동선을 그렸다.
외부 정원은 마지막에, 멈춰 서 있어야 한다면 기도실과 소성당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수도원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3층을 돌다 수도원장님께 걸렸다.
다시 입구로 쫓겨났다. 조금만 늦게 걸렸다면 모두 볼 수 있었는데 아쉽다.
사모스수도원을 나왔을 때는 하늘이 맑아졌다.
사모스를 떠나 사리아까지는 길이 편안하다.
사리아강을 따라 걷는 길로 시냇물소리와 주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다리를 건널때마다 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 정도로 깨끗했다.
한가로운 오후시간이다.
3시간정도 걸어 사리아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잡고, 저녁식사를 위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오늘 알베르게는 10여명이 잠을 자는 곳이다.
침실 한쪽 벽에 벽난로가 있다.
밤 11시까지는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으로 따뜻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많이 추웠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