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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Oct 21. 2024

2_31. 성체성사의 기적과 두번째 고통의 언덕

31일차_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다…첫 마을 오세브레이로

오늘은 오세브레이로로 간다. 길의 초반부는 이렇게 도로길을 계속 따라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오늘은 오세브레이로까지 28km를 걷는다.

30여km를 가야 하기에 조금 일찍 서둘렀다.

지금은 6시 30분.

밖은 칠흑같이 어둡다.

이런 날에는 주변 순례자들이 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침낭위에 모든 잡동사니를 올려놓고, 한 꾸러미를 들어 1층 응접실로 조심스럽게 들고 내려와야 한다.

장 회장님과 1층에서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2층 2인실에서 주무셨던 이규석(65), 김홍경(67)씨가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치고 내려오셨다.

캄캄한 새벽! 그분들의 뒤를 이어 우리도 길을 떠났다. 

오늘은 드디어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간다.

갈리시아에 들어서는 십자가 표지(Punto de entrada a Galicia)를 넘으면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과는 안녕이다.

그러나, 이 표지를 만나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험한 산을 올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마을에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성당 내부 모습. 제대화 중앙에 있는 성상이 마리아 막달레나다.

장 회장님과 오르막 시작 지점인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ias)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이규석씨와 김홍경씨가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오던 한 순례자가 우리 앞에 멈춰서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그분은 우리가 반가웠는지 옆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하자고 제안하셨다.

그동안 자전거로 순례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들은 쏟아내시기 시작했다.

그분의 나이는 어림잡아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지난 2월에(지금은 4월초임) 스페인에 들어와 자전거로 산티아고 북쪽길를 왕복했다고 한다.

지금은 프랑스길을 가고 있다고.

이것이 끝나면 마드리드와 세비야까지 스페인 남부로 이동할 계획이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6월말 티켓이어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쪽길을 가던 과정에서 죽을뻔한 일을 털어놓으셨다.

처음 북쪽길을 출발했던 2월은 추위는 물론 눈도 많이 내린다고 한다.

하루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렸단다.

알베르게 주인은 이런 날에는 가지 말라고 강하게 말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고 했다.

함박눈이 너무 심하게 쏟아져 얼마지나지 않아 차도, 사람도 없고, 길도,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는 하얀 세상위에 홀로 서있는 상태가 됐다고 토로했다.

그때 ‘여기서 죽겠구나!’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고 한다.

알베르게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 너무도 후회됐다고 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단다.

당황한 시간속에 어찌저찌 두려움에 떨며 내려왔고, 이내 마을을 눈에 들어오자 드디어 살았구나 하는 안도심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스페인 사람들이 조심하라는 전해주면, 꼭 마음에 담아두고 행동하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준다.

‘자전거 순례자분이 마지막까지 잘 순례를 잘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오세브레이로로 들어가기 전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 마을에서 본 풍경

다시 길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돌이켜보면 오세브레이로까지 가는 구간은 제2의 피레네라고 표현하고 싶다.

계속 계속, 끊임없이, 그리고 가파르게 올라간다.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는 꽃동산이 황홀하게 펼쳐져 있다.

마치 봄 철쭉이 만개한 지리산 바래봉이 생각날 정도다.

장 회장님은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신다.

장 회장님은 젊은 시절 발을 다치셨기 때문이다.

왼발과 오른발의 길이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오르막길에서는 한 발이 자꾸 땅에 걸려 더 걷기 어려워진다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실제 오르막길에서는 많이 늦으셨다.

나는 몸상태가 좋지 않아 회장님을 앞서 보낼 요량으로 ‘라구나’ 마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먼저 출발하시길 청했다.

장 회장님은 이규석씨, 김홍경씨와 함께 앞서 길을 나섰다.

나는 카페에서 남아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여기서부터 갈리시아입니다 라는 갈리시아를 알리는 표지판(Punto de entrada a Galicia)이다.

오르막길은 정말 힘들었다.

두어시간을 올랐을까! 드디어 ‘라 라구나’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회장님이 보이지 않는다. 회장님께 메시지를 보내니 내 뒤에 계셨다.

알고 보니 이규석씨와 오르막길 도중에 있던 카페에서 점심을 드셨다고 한다.

그 카페에서 내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함께 갈 생각이셨는데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회장님이 이 마을로 올라오기까지 1시간 이상을 족히 기다렸던 것 같다.

나 역시 이 마을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마을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한참을 서성이니 알베르게 주인이 여기에서 머물 거냐며 말을 걸어온다.

나는 오세브레이로까지 가야 한다고 전하고, 지금 동료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 마을은 산 중턱 머리에 있는 마을이라 바람이 강하게 불고, 소똥냄새도 진하게 풍겨오는 장소다.

한동안 앉아 있으니 머리도 아프고, 추위로 인해 몸이 덜덜 떨렸다.

‘대체 언제 올라오시는 걸까!’

회장님이 미치도록 보고 싶은 상태다.

회장님이 내 눈에 보이는 순간에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다.

‘꾀를 내서 먼저 보냈더니, 되레 한방 먹은 기분이다.’

지금 나는 입술이 트고, 입술 위에 종기 같은 포진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피곤하거나 영양결핍,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한다.

‘이규석씨랑 점심 먹고 오느라 늦었네. 윤 국장 올라오는 것 보면 함께 가려고 기다렸는데 못 봤나 보네.’

엄청 짜증이 났었다.

‘화를 내면 무엇하리! 짜증 내면 무엇하리! 다 부질없는 것을!’

순례길을 걸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제는 그저 받아들일 뿐 짜증 내는 것도 싫어진다.

“회장님? 출발하시죠! 오 세브레이로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드디어 갈리시아 표지판이다.

표지판을 넘어 조금만 가면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한다.

오세브레이로는 프랑스길에서 갈리시아 지방에서 만나는 첫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기적의 성당으로 불리는 성모마리아성당(Iglesia de Santa Maria Real)이 있다.

이 마을에는 후안 산틴이라는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단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사를 거르지 않는 독실한 신자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이 성당의 주임신부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추위로 인해 거의 반 죽음 상태가 된 후안 산틴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신부는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단다.

“거센 눈보라와 피로를 무릅쓰고 왔나? 그놈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고 싶어서인가?”

그때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변하는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믿지 않는 그 신부를 하느님이 크게 꾸중하는 기적이 이 성당에서 일어난 것이다. 

‘성체의 기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옛날 이탈리아에 갔을 때, 교황님의 휴양지로 알려진 오르비에토에 간 적이 있다.

오르비에토 두오모(두오모는 주교좌성당을 뜻한다)은 교황님이 ‘성체성혈대축일’에 미사를 거행하는 성당이다.

1263년 보헤미아에서 온 한 사제가 오르비에토 남쪽 작은 마을인 볼세나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때의 사건이다.

그 사제는 성체 성혈의 신비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빵은 빵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이지 어떻게 이것이 살과 피가 되겠냐!’는 의심속에 항상 미사를 거행해 왔다.

이날도 이런 생각속에 성체성사 도중 포도주를 들어 올리자 성배에서 피가 흘러넘쳤다.

흘러넘친 피는 제대보를 흥건하게 적셨다고 한다.

그 피 묻은 제대보가 모셔져 있는 성당이 오르비에토 두오모이다.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성당의 내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

‘주님은 왜 나를 이 성당으로 인도하셨을까?’

오세브레이로 성모마리아 성당은 그때 무척 당황했었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주님이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주님!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성모마리아성당 모습. 9세기에 지어진 성당이란다. 외부 모습을 보면 정말 오래된 성당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오세브레이로를 둘러보면서, 마치 영화 로빈훗에 나왔던 요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민속촌 같은 느낌이다.

내일 먹을 음식을 구입하기 위해 갔던 마을 식료품점도 특이하게 생겼다.

점포로 내려가는 길도 오래된 나무계단을 빙빙 내려가는 형태다.

밧줄을 타고 다니면 좋을 것 같은 마을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무서운 곳이었기도 하다. 

저녁이 되자, 프레도와 함께 식사를 하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가자 최영화씨와 직업이 의사였던 멕시코에서 온 순례자분이 있었다.

4명이서 함께 자리한 후 순례자메뉴를 시켜 함께 나눠 먹었다.

최영화씨는 오늘 여기까지 걸어올라왔단다.

전쟁을 피해 피난 온 사람마냥 꼴이 말이 아니다. 

아무튼 맛있는 저녁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으니 좋았다. 

갈리시아의 첫 마을 ‘오세브레이로’가 남긴 인상은 ‘멋짐’이다.

민속촌 같은 오세브레이로. 이 모양의 건물은 갈리시아 전통가옥으로 파요사라는 이름이다. 파요사는 지붕을 밀짚으로 엮은 돌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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