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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러너 May 01. 2024

감사일기를 쓰다가 그만둔 이유

 달리기를 시작한 지 7개월이 될 무렵 SNS를 시작했다. 40대인 내가 사진 하나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에 겁 없이 발을 들여놓은 계기는 운동기록을 남겨보려는 이유였다. 개인적인 용도로 운동기록을 남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러너로 성장하는 모습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마음만 컸지 나를 드러낼 용기는 없었다.


 한창 코로나 19가 유행하던 시기라 마스크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마스크는 그럴듯한 성형 도구였다. 멋진 모습만 SNS에 보여주고 싶었다. 마스크를 쓰면 나이와 외모를 알기 어려웠다.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마기꾼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마기꾼이 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 마스크를 쓴 러닝 셀카를 처음 올려봤는데, 어라? 아주 작은 용기가 생겼다.     

 

 그 작은 용기에 힘입어 나는 곧 전신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양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높게 점프하는 사진, 공원에 서 있는 조각상을 포옹하는 사진을 찍었다. 양팔 손 하트로 내 계정을 찾아오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이른 새벽 레깅스 복장으로 러닝화를 신고 호수공원을 달리며 그날의 셀카 놀이 주제를 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복면 러너의 이중생활’처럼 셀카는 새벽의 은밀한 놀이가 되었다.     


 SNS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새벽 러닝 후 셀카 인증은 평소 억눌렀던 감정과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시간이었다. 일상에 갇혀있던 나에게 러닝 인증은 숨 쉴 틈을 주었다. 생애 처음 진짜 자유를 느꼈다. 세상을 향해 다리를 높이 들고 역동적으로 달리는 모습, 달린 후 몸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가로등 불빛 아래 실루엣, 공원에 서 있던 남자다운 다비드상과 똑같은 자세로 찍은 사진. 모두 잠든 새벽에 타이머를 맞추고 다양한 모습으로 셀카를 찍었다. 그 순간 나는 온전히 내 삶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온라인 러닝크루의 신규 기수 모집 글을 보았다. 해병대처럼 기수 제로 운영되는 러닝크루였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예쁘고 멋진 젊은 러너들이 선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생 갱생에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홍보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이미 달리기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며칠 동안 고심하며 지원서를 제출했다. 얼마 후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합격’이었다. 기수 미션을 모두 마친 후 나는 당당하게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SNS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얼굴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진짜 내가 아닌 마스크를 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딱 한 번 두려움을 넘어서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이 작은 경험을 통해 또 깨달았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매일의 운동기록을 SNS에 인증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동기록만 인증하지 말고 이 공간을 좀 더 잘 쓸 방법은 없을까?”

 SNS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한 일을 적었다. 처음에는 공개된 곳에 감사일기를 적느라 손발이 오글거렸다. 하지만 역시나 눈 딱 감고 몇 차례 해보니 곧 적응이 됐다. 운동기록과 함께 감사일기를 적는 것은 어느 새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매일 새벽 달리면서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생각하고 출근길에 SNS에 올렸다.      


 하루에 세 개씩 쓰겠다고 공개 선언하고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쓰다 보니 매일 겹치지 않게 감사한 일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공개적인 SNS에 올리는 감사일기라서 가식적으로 쓰기도 하고, 억지로 감사한 일을 생각해낼 때도 있었다. 스스로 정한 하루 3개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별로 감사하지 않은 일도 감사한 일로 만들 때도 있었다. 어쨌든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자신을 속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평소 서로 응원하던 랜선친구와 메시지로 서로 궁금한 점을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평소 몸을 아끼지 않고 달리기에 과몰입하는 그가 걱정되어 말을 걸었다. 그에게 달리기 시작 후 첫 부상 때 도움이 된 책 내용을 소개해주었다. 그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기분 나쁘실지 모르지만,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매일 감사하면 힘들지 않나요? 그것도 강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것인지 안 우러나올 때도 감사한지 궁금해요.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잠시 당황해하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습관이 돼서 일상에서도 계속 감사한 일을 찾고 있어요. 아무리 망한 날도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가 다시 물었다.

“망한 날에는 ‘아! 망했다!’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럴 때도 무조건 감사함을 찾는다는 게 사실 솔직한 자신의 감정에 반하는 행동이잖아요. 그래서 그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감사가 좋다는 건 아는데 사실 잘 안되니까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다시 진지하게 말한다.

“물론 감사하다 보면 행복한 일도 생기겠죠. 그런데 왜 저는 맨날 사람들이 감사 감사하는데 왜 그게 가식으로 보일까요? 계속 보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실제 모습과 다른 가상공간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요즘 그런 고민이 있거든요.”

 나도 열린 마음으로 대답한다.

“맞아요. 가식이 필요해요. 처음에는 가식으로 시작해도 결국 진심을 담아야 계속할 수 있어요. 감사할 수 없는 것에 감사한다는 건 그런 의미에요. 이성적으로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조차 감사하다고 느끼는 연습이에요. 사실 가식이 맞아요.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불평하기 좋아하는 자신을 속이는 방법이 감사예요. ‘쓰는 대로 기적이 된다.’라는 책을 보다가 언제부턴가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남몰래 쓰려고 했는데, 하루 이틀 해보니 게을러져서 하지 않게 됐어요. 고민하다가 어차피 달리기 인증은 매일 하니까 거기 감사일기를 붙여서 쓰면 습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게 벌써 몇 개월째에요.”

 그도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승우님의 매일 감사하시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억지로 감사할 일을 찾고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실제 모습은 시기, 질투, 물질 만능주의 그 자체라서 너무 이질감이 느껴져서 감사하는 모습 자체가 보기 싫어졌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오해가 풀리네요.”


 그와의 대화가 끝나자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SNS에서 멋진 나로 사는 것과 공개적으로 감사일기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익명의 삶이 아닌 러너 정승우로 살기 시작했다. 그 대신 책의 한 구절을 SNS에 옮겨 적고 운동기록 밑에 그날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적었다. 명상하듯 책의 글귀를 따라 쓰면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었다.     


 오늘도 SNS를 걷다가 나를 만난다. 관계의 어려움과 내 안에 있는 아픈 부분도 바라본다. 달리면서 생긴 용기와 도전하는 삶의 이야기를 SNS에 쓰면서 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아픈 이야기를 올린 날이면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DM으로 보내오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SNS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다시 힘차게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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