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도서관에서 매년 선착순 이벤트가 있다. 밀리의 서재 무료구독권이다. 2년 전 나도 알람을 맞추고 번개처럼 신청해서 구독권을 받았다. 그때 주로 요조 님이 낭독한 오디오북 에세이를 들었다. 독서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을 때라 결국 뜸해졌지만 책을 귀로 듣는 즐거움은 기억으로 남았다.
25년 10월 내가 쓴 달리기 책이 요조 님 목소리로 오디오북이 되어 밀리의 서재에 올라가 있다. 가끔 용기가 필요할 때 달리면서 요조 님 목소리로 내 오디오북을 듣는다. 그럴 땐 오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이 신기한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5년 전 우연히 달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다.
아직도 도서관 사서 동기의 말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00야. 나 책 쓰고 있어."
"네가(당연히 자가출판이겠지)? 얼마나 찍게? 돈 많이 들 텐데..."
"투고로 출판사랑 계약했어."
"아니, 너 뭘 보고 출판사가? 무슨 내용인데?"
"달리기. 달리기 에세이."
"헉. 사람들이 책을 잘 안 보는데 그런 주제라니, 폭망각이네."
"(걱정하며) 진짜 사람들이 그런 책은 안 보니?"
"네가 무슨 하루키냐. 운동책, 그것도 에세이를 누가 보냐?"
"ㅠ. 그 정도인 줄 몰랐네. 조금 걱정이 된다."
"음... 내 예상에는 너 책 내면 딱 두 권 팔린다."
"왜 두 권이야?"
"한 권은 책 쓴 네가. 또 한 권은 불쌍해서 내가 사줄 테니까."
"으이그. 진짜 너무하네. 덕담을 해줘야지."
"그게 현실이야. 너무 기대하지 마."
그때가 24년 여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5년 3월 달리기 책을 냈다.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잠시였지만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기도 했고 종이책이 500권을 넘어 조금씩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전자책으로도 몇 백권, 25년 10월에 오픈한 오디오북은 조회수만 모으면 1,000권은 되니 종이책 2쇄는 못했지만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까지 다 모으면 2쇄는 되지 않을까?
종이책과 전자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했을 땐 그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오디오북을 제작한다는 소식에 눈이 커졌다. 얼마 후 낭독자로 뮤지션 요조 님을 모셨다는 말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듣고 있던 그가 조용히 말했다. "멋지네..." 그가 말한 2권이 2,000권이 된 기적 같은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무 때나 내 오디오북을 듣고 싶어서 핸드폰 요금제를 밀리의 서재 제휴로 바꿨다. 누군가의 서재에 오디오북이 담긴 숫자가 올라갈 땐 고맙고 감사하다. 밀리의 서재도 글을 쓰는 창작자들을 지원한다. 매달 주제를 정해서 글을 공개적으로 올릴 수 있게 하고 그중 몇 편을 선정해서 창작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내가 아는 크리에이터인 소위 작가님이 9월 단편소설 돈워리로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이 생겼다. 퇴근길에 밀리의 서재 광고에서 11월 주제는 '에세이'이고 11월 말까지 3편 이상 업로드하면 응모조건이 된다는 걸 알았다. 이제 겨우 4일 남았는데, 이제 올린다고 뭐가 될까 하는 목소리가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무조건 작가 되기'란 제목으로 썼던 30편의 에세이를 밀리로드에 올리기 시작했다. 밤 10시 30분에 시작한 작업이 새벽 3시가 넘어 끝났다. 3편을 남기고 27편을 한꺼번에 올렸다. 꾸준히 연재하신 분 중 인기 있는 에세이는 벌써 조회수가 몇천이고 밀어주기도 80회가 넘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언제 내가 누울 곳 보고 뛰었나?' 허공을 향해 발을 뻗듯 일단 지르기로 했다. 다 올릴까 하다가 말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올릴 생각에 몇 편을 남겼다.
사람의 일을 다할 뿐, 결과는 하늘이 안다. 나는 도전하고 즐겁게 기다리면 된다. 이게 안되면 죽는다 생각하면 그냥 죽을 수 있다. 이게 안되면 다른 걸 하면 되고, 다른 것도 안되면 또 새로운 걸 뚫으면 된다. 잘 닦여진 길을 달리다가 산을 만나면 트레일러닝으로 바꿔서 산을 달리면 된다.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메모장에 후기를 쓰면 될 일이다. 오늘부터 나도 밀리로드를 달리는 러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