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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Oct 29. 2024

3부 21화)이용당하는 여러 방식

금요일 오후 죄를 고백하러 온 사람과 죄를 용서해 주려는 사람은 첫 고백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서로의 세계에 그들을 초대했다. 규호는 네 번째하는 이 고해성사가 즐거웠다. 그 이유는 죄책감이 사라지는 기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담에게 한 약속과 다르게 그는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다미도 그것을 허락했고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도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다미가 만들어준 이 체스판에서 퀸으로서 적진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희열감에 빠져있었다. 체스의 말은 손가락에 이끌려 움직여질 뿐이지만 자신에게 이 무대는 스스로의 생각과 말, 그리고 적진에서 느끼는 쾌감이 있었다. 다미가 아니었다면 평생 못 느낄 이 중독성 있는 성취감에 그는 감사하고 있었다.


“형제님. 제가 하는 기도를 따라 하도록 하세요.”

“예, 신부님.”

“자비로우신 하느님. 지난날의 저의 잘못을 뉘우치오니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니 용서해 주세요.”

“저를 사탄의 영에서 구원하시어 하느님의 자녀로 이끌어주시옵소서.”

“저를 사탄한테서 구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이끌어주세요 주옵소서.”

“광야의 유혹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힘을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광장... 아니 광.. 어디라고요?”

“광야의 유혹을 이긴 그리스도의 힘을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광야의 유혹을 이긴 크리스도의 힘을 저한테도 주세요 주옵소서.”

“형제님.”

“형제님.”

“아니, 제가 부르고 있는 겁니다.”



“아, 예.” 규호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형제님은 하느님을 믿습니까?”

“네. 믿기로 했습니다.”

“그럼 악마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악마는 어떤 존재일 것 같습니까?”

“머리에 뿔 달리고 검은색에... 혀 낼름거리고 삼지창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 으깨고 다니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요?”

“악마는 때로는 빛나는 천사의 모습을 하기도 합니다.”

“아... 사기꾼처럼요?” 규호는 재밌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가장 악마답지 않은 것이 사실 악마일 수도 있는 것이죠.”

“참 간사하네요.”

“형제님. 형제님에게 혹시 악마가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습니까?” 아담은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지만 닦지 않았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저희 집사람이 좀 하는 짓이 마녀 같기는 한데...”

“아니...”

 예전 같으면 웃고 넘어갔을 말을 아담은 예민하게 짜증 내며 말을 이었다. 

“근래에 새롭게 형제님에게 접근한 사람이 있거나 그런 걸 물어보는 겁니다.”

“아니요, 그러진 않습니다.”

“없다고요...”

“네. 왜요?”


“혹시 어린 여자 아이가 접근했다거나 하는 일은...”

“어린 여자 아이요? 어리다고 하면 얼마나?”

“중학생 정도의...” 

아담은 땀에 적셔진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고 규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규호는 다미에게서 절대 자신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는 지시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적은 없는데요. 왜요? 요즘 그런 악마가 우리 마을을 돌아다닙니까?”

아담은 머뭇거리다가 아니라고 하기도 뭐해서 교구에서 내려온 악마주의 공지사항이 있다고 둘러댔다.

“어이구 무서워라. 막 소름이 돋네요.”


‘일은 정말 그만둔 걸까? 악마가 이 사람에게 무언가에 홀리게 만들었거나 무슨 악행을 하게 만들었다거나 그런 일은... 알아내야 해.’

“형제님, 요즘 다른 고민은 없으십니까?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겁니다.”

“고민이요?”

“네.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여기에 들어오면 그런 것도 합니까?”

“... 네.”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은데 신부님이 붙잡고 있는 게 고민인데요.”

이 말을 하고 규호는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아담은 화가 났지만 규호에 대해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다미에 대한 굴욕감 때문이었다. 




규호는 성당을 나와 집까지 가면서 아까 있었던 상황들을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웃기를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고해성사 뒤에는 항상 다미가 기다리고 있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길을 걸으며 다시 고해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복기를 했다. 중독은 내면의 수용과 만나면 그 힘이 더욱 강해지는 법이었다. 규호는 숨을 고르며 내일은 또 무슨 즐거운 일이 있으려나 집으로 들어갔다. 전용 공간에 들어서니 그제야 아내가 생각났고 이 기쁨을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성당 다니는 동안 혼자서 일했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아주 조금 생겨났다. 

그리고 아내의 칼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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