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간에 의지가 생기면 그에 뒤따라 예기치 못한 문제도 생기는 법이다.
포세이돈 동상으로 장식된 분수대 앞에 푸르른 정원과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다니는 길에 깔린 간접등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서 통화를 다 끝낸 세르히오는 걱정반 설렘반의 마음으로 다시 거대 저택 안으로 들어가 2층에 있는 회의실로 곧장 들어갔다.
“보스. 조금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말해봐.” 회장석에 앉은 머리숱이 별로 없는 흰머리의 70대 노인이 시가를 빼 손에 쥐고 대답했다.
“그 아이만 빼고 다 죽었답니다. 저한테 연락준 한 명 제외하고요. 아, 어린애 한 명 또 제하고요.”
“뭐? 왜? 다른 마피아놈들이 한국에라도 갔단거냐?”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죽인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 애가 9살이라고 했던가?”
“네.”
“네 머리통에 총구멍나고 싶어서 그 따위 괴상한 소리를 하는거냐?”
“그럼 보스말대로 우리 적들이 한국까지 갔다고요? 굳이? 보스. 그 아이를 평범한 코찔찔이로 생각하면 안돼요. 제사에 바쳐지고도 살아남은 아이에요.”
노인은 시가를 재떨이 위에 걸쳐놓고 세르히오를 빤히 쳐다봤다.
“그렇게 무서운 아이라면, 그 아이가 정말 다 죽인게 맞다면 우리에게 원한이 있는거 아니냐?”
“아이의 아빠가 세비야에 있어요.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죠? 그 자에게 딸을 몇 년간 맡겨두죠. 나중에 봐서 안되겠으면 그때 가서 죽이면 되죠.”
세르히오는 일어나서 노인 옆에 가서 고개를 숙여 자세한 계획을 이야기했다.
“악마에 빙의된 가장 강력한 증거는...”
“등에 문양이 생겼답니다. 뱀의 형상을 한 문양이요.”
“저절로요?”
“네. 하와를 타락시킨 그 뱀, 그 악마가 다미에게 씌인거죠.”
“어째서...”
“악마는 우리가 가장 안심하는 곳에,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을 파고드는 법이죠.”
아담은 자신의 머리칼을 세게 쥐며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악마에 대한 분노를 삭혔다. 벤치에 앉아있는 아담 옆에 서있는 큰 가로등 옆에 선 세르히오가 아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글라라수녀님과 현석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답니다. 시간이 급해요. 우리가 빨리 한국으로 가야해요.”
“제가 뭘 하면 되죠?”
“조용한 시골 마을에 집을 마련해 드릴게요. 성당도 지을겁니다. 한국의 교구에서는 모르는 특수비밀성당입니다. 그곳에 지내면서 다미의 악마가 쫓기도록 구마를 하세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10년을 못채우고... 8년째인데요.”
아담이 차렷 자세로 앉아 세르히오를 바라봤다.
“할 수 있습니다. 다미의 아버지시잖아요. 그 사랑의 힘까지 같이 해서 그 악마와 맞서는 겁니다.” 세르히오가 아담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미에게 당신이 친아빠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원래 구마는 가족끼리 하는게 아닙니다. 이번 경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서 아빠인 당신에게 맡기는거지만요.”
“현석이라고 했었나요? 그 정아씨 아들.”
“그 아이도 같이 키워주세요. 수녀님이 전화로 상태를 말해줬는데 모두가 죽은 날 실신했다가 깨어난 이후로 기억을 잘 못하고 있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돈은 교황청에서 매달 충분히 지급될겁니다.”
“현석이를요...”
“다미는 그 마을에서만 생활해야해요. 알아놓은 마을은 아주 적은 사람들만 살고 있고 근처에 학교도 없습니다. 다미도 친구 하나즈음 있어야 정서적으로 안정될테니까요. 아, 그냥 친구가 아니죠. 남매라고 해야겠죠.”
“남매요?”
“네. 현석? 아무튼 그 남자 아이는 출생 신고가 되어있으니 아예 아버지 역할을 해주세요. 친아버지가 있다고해야 그 아이도 빨리 정신적 회복이 될 것 같아요. 따님은 입양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요. 근데 앞으로 지낼 마을에서나 밖에서나 둘 다 입양아라고 하는게 사람들 의심을 안사기에 좋을 겁니다. 그 아이 호적문제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돈이면 다 되거든요.”
“원장님.”
“네, 형제님.”
“제가 악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담은 전투의 각오를 다지며 마음에 입력해놓을 그 말을 어서 듣겠다는 표정으로 세르히오를 바라보았다.
“분명 당신이 이깁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거니깐요.”
세르히오는 그 말과 함께 아담의 얼굴에 그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려도 믿어야 합니다.”
현석과 다미는 놀이방에서 퍼즐을 하고 있었다. 다미가 현석의 손에 퍼즐조각을 쥐어준 다음 현석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다미가 그 손을 이끌고 퍼즐판 위에 올려놓아주고 있었다. 다미는 현석을 안쓰럽게, 또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도 인내심있게 현석을 챙겨주었지만 현석은 몸만 챙김을 받았지 정신은 이미 스스로도 소유하고 있지 못했다. 그 때에 혼자 남은 악마숭배자–수녀복을 안입기 시작한지 오래된-가 놀이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는 한 명의 소리가 아니었다. 다미는 용인형을 갈라서 넣어놓은 총을 꺼내기 위해 용인형에 손을 댔다.
“현석아. 아빠 왔다. 친아빠가 널 찾으러 왔어.”
다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나는 쪽을 쳐다봤다. 죽이려고 벼르던 원장은 커녕 어쨌든 현재 보호자인 성인 여자와 처음 보는 사내가 들어왔다. 현석은 친아빠라는 말에 일어나 아담에게 뛰어가 안겨 울었다. 아담은 그런 현석을 들어올려 안고는 다미를 보았다. 8년만에 본 딸은 옛날의 작은 아기가 아니었다. 많이 커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아기의 눈망울과 표정을 간직해주고 있었다. 아담의 딸 조다미라는 정체를 담은 겉모습을 어디 버려두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담은 다미를 볼 수 있다는 감격과 다미가 악마에 씌였다는 연민과 미안함에 이미 울고 있는 상태였다. 누가봐도 감격스러운 부자상봉이였다.
여자신도는 불편한 표정으로 다미에게 가서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미야. 저 현석이 아빠께서 너를 입양하시겠대. 너의 아빠가 되어주시겠다고 하셨어.”
“저를요? 처음 보는 날?”
다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쌀쌀맞은 표정으로 신도에게 조용히 물었다. “원장은요?”
“그게...” 알려준 대답을 하려고 하던 그 때에 아담이 다미에게 다가갔다. 아담은 다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입을 히죽거리며 곧 울 것처럼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미야. 이 아빠를 기억하니?’
“예쁜 아이구나.”
‘이제 이 아빠가 지켜주마. 다시는 널 두고 떠나지 않을거야.’
“널 돌봐주는 부모님이 계셨을텐데... 이제 내가 아빠가 되어주마.”
그 말과 함께 아담은 다미를 껴안았다. 눈물과 콧물이 줄줄 새어나왔지만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포근함 속에 담긴 사랑 속에 거짓은 전혀 없었다. 부드럽게 전해지는 거짓없는 사랑을 다미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인지 몰랐던 이 느낌은 어떤 의심도 없이 다미의 가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