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먹고 아담은 다미의 손을 잡고 다미가 홀로 쓰던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다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침대에 앉힌 뒤 다미에게 물었다.
“다미야.”
“네?”
“하느님 믿니?”
“네.”
“하느님을 사랑하니?”
“네.”
“하느님께서도 다미를 사랑하신단다.”
아담은 가방에서 십자고상과 성수가 담긴 병 세 개를 꺼내서 다미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그레고리아 성가를 재생시켰다. 그러더니 악마숭배자가 수녀복을 입고 나타났다.
“다미야. 널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좀 가질거야, 괜찮겠니?”
“무슨 기도요?”
다미의 표정에 의심이 드러섰다. 아담은 묵주를 감아 쥔 손으로 다미에게 성호를 긋고 묵주의 십자가를 다미 이마에 댄채 그녀를 관찰했다.
다미는 묵주와 아담의 눈빛을 번갈아 관찰하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한숨을 쉬었다.
‘구마 전에 가장 중요한건 악마 빙의인지 단순 심리적 혹은 정신적 문제인지 구분하는 것. 제발 다미에게 악마가 빙의되어 있지 않기를... 이 한숨은 뭐지? 악마의 비웃음인가?’
이어서 아담은 성수병에서 물을 자신의 엄지 손에 묻힌 다음 다미의 발등에 십자가를 그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미를 쳐다봤다. 어떤 현상이 발견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는데 특별한 변화가 없어서 아담은 마음 한켠에 안심의 휴식처를 만들어 자신의 영혼을 집어넣고 있었다.
“수녀님.”
“네.”
아담은 나름 다미에게 안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빙의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빙의되었었지만 악령이 떠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외부에서 한 번의 괴롭힘이었을 수도 있죠. 이 수녀원을 공격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말이죠.”
‘무슨 소리야? 이 괴물좀 어떻게 해보라고. 아니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이제 이 아빠가 알아서 할 일일테니까.’
여자는 근심을 최대한 떨궈내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곧 급하게 아담이 하려던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저 아이 등에 있는 문양이 사라져야하지 않을까요? 저게 가장 큰 증거일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다미야, 잠깐 등좀 볼 수 있을까?”
아담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다시 한 번 성호를 그었다. 성호를 긋는 이유는 악마의 증표를 직접 보는 것에 대하여 성령의 갑옷을 입고 성령의 칼로 혹시 모를 방해물을 무찌른다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다가오는 아담에게 다미가 갑자기 크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더니 눈과 코, 입을 들어올려 성난 짐승에게나 나올 법한 표정을 하고는 스페인어로 마구 소리쳤다. 아담은 또 한 번 다가온 인생의 반전의 순간에 몸이 굳어졌다. 각오의 효과도 예상 범위 안에서만 통하는 법이었다. 방금 전에 범위를 좁혀버린 아담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하며 수녀에게 말했다.
“저 말 스페인어 맞죠?”
스페인에서 감금생활 비슷하게 살아왔지만 8년의 시간은 적어도 스페인어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있는 아담이였다.
“예...”
“스페인어 할 줄 아세요? 뭐라고 한건지 아시겠어요?”
고개는 수녀에게 돌렸지만 계속 다미를 보는 아담이었고 그 아담을 다미는 악마의 표정으로 씩씩대며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딸로 삼아주겠다면서 왜 날 의심해.. 내 등의 문양은 저 자들이 새긴거라고.. 라고 했는데... 말할 수 없어. 말하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
“잘 모르겠어요.”
최대한 작게, 정성을 다해서 작게, 아담의 귀에만 들리게 말했다.
단체 침실이였던 넓은 방에서 혼자 자고 있던 악마숭배자는 침대에 누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심리는 내부에서, 또 외부에서 각각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살았나? 아니야. 세상에 선과 악은 없어. 인간들의 언어로 말하는 선과 악은 자기 편과 적의 편을 가르는 말일 뿐이야. 나는 나로서 옳게 살아왔어. 그리고 진짜 중요한건 계시야. 인간끼리의 철학이 아닌 신의 계시. 루시퍼의 계시로 내가 다시 태어나게 되었는데 무슨 다른 뜻을 생각하겠어? 인간들은 자기가 칠한 색깔이 세상의 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야. 더러운 본능은 솔직하게 밝혀졌을 때 아름다운 법이야. 루시퍼여, 날 지켜주소서. 나보다 강한 이 앞에서 떨고 있는 나에게 힘을 주소서.’
눈을 감고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는 그녀의 입이 중얼중얼 닫혔다 벌어졌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벌어진 틈에 정확히 총이 들어왔다. 워낙 깊숙이 들어와 목젖에 닿는 것만 같았고 그녀는 말할 수도 없었다. 놀란 심장은 여전히 뛰는 채로 눈을 떠보니 다미가 선채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날 배신해?”
배신이라니 뭘 두고 하는 말이야라고 말을 하기는 했는데 총을 문채로 어버버거리는 말이 다미의 귀에 들릴리 없었다. 다미는 그녀에게 펜과 종이를 주었다.
“저기에 현석이 아빠에 대해 당신이 알고있는걸 다 써.”
그녀는 답답한채로 부족한 숨을 생존을 위해 최대한 쉬며 뭘 써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루시퍼.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 괴물에게 굴복해야 하나요? 아니면 나에게 다른 지혜가 요구되나요?’
누워서 펜과 종이만 왼쪽 방향으로 곁눈질로 본채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지를 최대한 연구했다. 삶은 죽음 앞에서 더욱 하찮게 여겨지는 법인데 삶의 시간이 연장될 것 같은 경우에는 정반대였다. 삶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더 느낄 방도를 찾아야했다.
‘거짓말을 써서 들통나는 것도 문제이고 써야 할 내용을 빠뜨린 것을 다미가 알아채도 문제야. 그렇다고 저 아이를 자극할 진실을 말하는 것도 곤란해.’
가녀린 중년 여성은 머리 속에 대충 정리한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걸 쓰라는 것일까.’ 생각하고 다미를 잠깐 쳐다봤다. 다미를 관찰하고 싶던 시선은 이미 다미의 시선에 정복당하고 있었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특히 신부님인데 왜 아이가 있는건지 자세히 써.”
그녀는 최대한 다미에게도 세르히오에게도 뒷덜미 잡힐 것 같지 않은 내용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 곤란한 처지에서 그나마 나은 조건 하나는 서정아가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천주교 신부 출신.
서정아씨와 연애 후 현석을 임신
서정아씨는 당시 매춘부
신부 자격 박탈
구마사제로 특수임무를 맡은 비밀 신부로 다시 신부 자격 획득
구마 훈련을 위해 현석을 고아원에 맡겨두고 스페인에서 훈련
‘정아씨 미안. 이미 이 세상 아니니까 나 좀 도와줘.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절망 속에 살던 너를 우리들이 보살펴줬잖아. 아들도 특별대우 받고 있고.’
“내가 왜 이걸 써달라고 한 줄 알아?”
궁금하긴 했다. 이 순간 총이 목젖을 누르는 고통을 잊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신도는 다미에게 집중했다.
“평생 괴롭힐거야. 용서할 수 없어. 현석이 엄마도, 현석이 아빠도 똑같은 인간이야.”
‘아... 그랬구나. 그래, 그런 이유밖에 없겠어.’
“근데 내가 이걸 왜 당신에게 알려줬는지 알아?”
‘그건 또 무슨 이야기야? 아니야. 안돼. 죽고 싶지 않아. 너의 부하가 될게. 루시퍼를 버리고 너의 부하가 될게.’
“당신은 특별대우야. 다들 독으로 죽었는데 당신은 총으로 죽잖아?”
이렇게 또 한 명의 생명이 다미에 의해 끝장나버렸다. 다미는 총을 가지고 자신의 독방으로 천천히 걸어 돌아갔다.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발걸음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통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았다.
“아저씨는 더 특별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