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은 오늘은 꼭 고백해야겠다며 사랑의 관계를 맺을 언약의 말을 다시 머리 속으로 복습하고 있었다. 그 때에 현석의 눈에 오늘도 여전히, 그리고 새롭고도 참신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그녀가 눈에 보였다. 현석은 들떴으면서도 최대한 차분한 척을 하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다가와 앉아 창문 밖을 보고는 현석에게 말했다.
“단풍이 벌써 많이 났어. 사람들 사진 찍는 것 좀 봐.”
“어어. 정말 예쁘다.”
“우리도 있다가 나가서 사진 찍을래?”
그녀는 고맙게도 무슨 말을 해야될지 잘 모르는 현석이 대충 대답만 하면 되게끔 그를 이끌어 주었다. 둘은 바로 나가서 단풍이 든 나무 옆에 다가갔다. 현석은 손으로 햇볕을 가리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이 행동은 누구 핸드폰으로 찍어야할지 말을 못 꺼내서 억지로 한 행동이었다.
“우와. 자세 좋아. 그러고 있어봐, 내가 밑에서 찍어줄게.”
그녀는 한 쪽 다리를 무릎 꿇고 앉아 핸드폰을 밑에 대고 현석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현석은 그녀가 입은 치마 때문에 혹시라도 자기가 보면 안될 것을 볼까봐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다른 지나가는 남자들이 볼까 그것이 더 신경쓰여 빨리 사진 찍기가 끝나기만을 바랬다. 어떻게 사진 찍는게 끝나고 보일 수가 없었다는걸 확인하기 위해 제대로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그녀도 서있었다.
“나도 찍어줄래?”
“응. 근데 내가 사진을 잘 못 찍는데.”
그녀는 현석에게 구도를 잡는 법을 자신의 핸드폰을 쥐어주며 알려주었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현석의 손가락에 닿았고 현석은 어떤 신경세포들은 얼어붙고 어떤 신경세포들은 기쁨의 춤을 추고 있음을 몸의 주인으로서 느끼고 있었다. 물론 정신에 문제가 있는 착각에 불과했다. 현석은 그가 할 수 있는 열정을 다해 점수를 따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엉거주춤서서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쁜 그녀와 비교할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그녀의 실물을 한 번 보고 카메라에 담긴 모습을 한 번 볼 때마다 황홀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였다. 이 핸드폰이 자신의 핸드폰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오늘 사귀게 되면 사진 달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현석의 촬영이 끝나고 핸드폰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 과정에서도 손이 닿았는데 현석은 속으로 또 좋아했다.
이제 영화관에 가자고 말하려고 할 때, 그녀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30대 같기도 하고 20대 같기도 한 여성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현석은 그녀에게 이끌려가 나무 앞에 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있을 때 그녀는 현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당황해하는 현석에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풋풋한 커플이었다. 현석은 고동치는 심장이 제발 그녀가 못듣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핸드폰을 받았다.
“남자친구가 너무 떤다. 얼마 안됐나봐. 여자친구가 더 적극적이네.”
여자들은 웃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현석은 자살하고 싶었다.
둘은 영화관에 가서 오락실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다시 시내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됐어. 이제 말해야 해. 근데 주변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하지?’
“오늘 찍은 사진들 집에 가서 보내줄게.”
“응.” 현석은 길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진을 받는 것보다 당장 어디에서 고백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시내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중간 중간 골목길에 사람이 없기는 했는데 골목길로 들어가자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골목길은 멋도 없고, 게다가 들어가자는 말 자체가 너무 이상해.’
현석은 다미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알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다미라면 애초에 떨지도 않았겠지.’ 곧 지하철역입구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고 현석은 더욱 초조해졌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도 또 심장이 주인의 명을 어기고 뛰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야속하게 발걸음이 멈추지 않다가 현석의 눈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카페가 보였다. ‘하느님께서 주신 기회야.’
“우리 카페에 잠깐 들어갈래?”
“응? 근데 이제 시간이 늦었는걸?”
‘할 말이 있다고 할까? 그럼 눈치챌거야.’
“왜 그래? 뭐 마시고 싶어?”
그녀의 천사같은 표정과 물음에 감격스러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현석에게 긴장도 덜면서 센스가 넘치는 대사가 떠올랐다.
“너한테 사귀자고 저기서 말하려고.”
“어?”
그녀는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고 현석은 다음 대사가 떠오르지 않아 자신이 센스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아... 들어갈까?” 그녀가 현석을 쳐다보았다. 현석은 머리가 굳어버렸다.
“어, 들어가.. 아니 굳이 그럴... 근데 좀 추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난처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동공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현석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한 말 진심이야?”
“어... 진심이야. 나 너 많이 좋아해.” 다행히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은 쉬웠고 일단 시작이 되니 아까보다는 진정이 된 상태였다.
“정말...? 나를?”
많이 떨리는 일이었지만 그녀의 이런 반응은 너무 난처했다.
‘뭐야. 왜 이런 반응이야? 날 좋아하는게 아니였어? 나와 데이트하고 문자로 연락 주고 받고 했던 일들 모두 나랑 사귈 마음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였냐고? 아니야, 절대 아니야. 오늘은 팔짱까지 꼈는데. 진짜 정말... 뭐라고 해야될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야되는거야 정말.’
아까의 염려와 달리 지나다니는 사람은 현석에게 신경쓸 사항이 아니었다. 갈 길 가며 돌아보는 사람은 있었어도 다행히 멈춰서서 보고 듣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응. 정말. 너랑 같이 서점 간 그 날 부터 머리 속에 너 밖에 없어. 다 없어도 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현석은 갑자기 말이 줄줄 나오는 자신이 신기했지만 참 다행이라고 여기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발 좋다고 해.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계속 좋지 않았다.
“생각 좀 해볼게. 문자로 대답해줘도 될까?”
현석은 절망과 불안, 자신의 외모와 말뽐새를 저주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을 지배하는 사랑과 한 켠의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