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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Dec 13. 2024

5부 2화)중복

십자가 모양으로 누워있는 다미의 손목과 발목을 묶는 것이 아담에게는 매우 불편했다. 어제 때렸던 것이 매우 미안했고 더 끔찍한 것은 딸을 죽여야겠다는 못된 마음을 먹은 것이 자꾸 가슴 속 양심을 찌르고 있었다. 헤어진 아내가 지금 방에 들어와 자신을 바라볼 것을 상상하니 매우 죄스러울 것만 같았다.

아담은 다미를 등지고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악마와 싸우는 저를 보호하여 주시고 성모마리아께서 그리스도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저도 본받게 하소서. 카인도 용서하셨던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게 하시고 사랑의 힘과 성령의 힘으로 다미를 악마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다미를 내려보았다. 다미는 늘 구마를 받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기쁨도 슬픔도 지루함도 생각도 철학도 없어 보이면서도 뭔가 즐기는 듯한 표정. 참 즐겁네요라고 알려주진 않지만 그 마음을 딱히 감추지도 않는 짓궂은 소녀의 표정. 6년의 시간 동안 늙어가고 지쳐가던 자신과 다르게 꾸준한 다미의 모습은 정말 사람이 소유한 정신과 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담은 다미의 눈을 정확히 보지 못한채 그녀의 몸 전체에 성호를 긋고 의자에 앉아 다미의 목을 보며 말했다.

“다미야, 어제는 미안했다.”

“괜찮아요.” 

다미는 천장을 보며 늘 짓던 미소로 대답했다. 

“덕분에 어제는 구마를 안받았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뭐.”

“구마 의식이 싫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아담이 눈을 감고 묵주를 만지며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제 왜 아저씨가 절 때린줄 아세요?”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

“아저씨가 악마에 씌인거에요.”

아담의 기도문이 멈췄다. 

“그렇지 않고서야 6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폭행을, 그것도 그렇게 심하게 했겠어요?”

‘아니야. 그럴리 없어. 내가 악마에 씌인다고?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싸워온 나인데... 나는 특수임무를 맡은 사제인걸. 게다가 어제 분명 나는 이성을 잃기는 했지만 그래도 분명 내 생각으로 행동했어.’

“아저씨. 어제 날 죽이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진정이 되니까 그 생각을 거두고.. 맞죠?”

아담은 다미의 말에 심정이 멎는 줄 알았다. ‘어떻게 안거야? 네가 내 마음을 알리가 없어.’

“내가 악마라서 아저씨 마음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담은 다미에게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본인도 느낄 수 있었다. 

“반대이지 않을까요? 악마가 아저씨에게 옮겨 갔고 나에게는 성령이 강림하신거죠.”

“그만해라.” 명백하게 기죽은 목소리였다.

“대체 아저씨는 뭘 믿고 확신하는거죠? 수년 동안 외워온 라틴어? 그깟 사어가 되버린 말에 집착하면 뭔가 더 성스러워진 것 같아요?”









아담은 벌떡 일어나 축지법같은 속도로 다미에게 다가가 다미의 목을 졸랐다. 다미는 켁켁 거리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렇게 만든 아담 역시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다미는 처음에 목을 졸리며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아담을 똑바로 보고 미소지었다. 아담은 그것을 보고 더 세게 목을 졸랐고 진짜로 숨통이 끊길 위기에 처한 다미가 고통스러워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아담은 다미를 밀지 못하고 정신이 돌아왔다. 아담은 손을 풀고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방금. 정말 악마의 짓인가? 하느님의 기도를 외우고 미카엘천사와 함께 싸운다는 나의 의지는 사실 허상이였단 말인가? 하느님도 성령도 악마도 내 입으로 나간 기도도 눈에 보이지 않아. 지금 나를 조종하는 것은 정녕 뭐인거야?’


다미의 숨 고르는 소리와 목 푸는 소리가 아담의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정돈하지 못하게 더 방해하더니 평소의 다미 목소리가 방에 나지막히 나왔다.

“아저씨. 방금 루시퍼가 저에게 말했어요. 분명히 들었어요.”

‘궁금해하지마. 들으면 안돼. 근데 왜 루시퍼는 저 애한테 말하지? 그럼 나한테 씌인게 아니잖아? 그래 난 악마에 씌이지 않았어. 이 상황 자체가 악마의 농단인거야. 하느님, 저를 외면하지 마소서.’

아담은 일어나 묵주의 십자가를 다미의 이마에 올려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루시퍼. 이 아이에게서 떠나라.”

“아저씨. 루시퍼가 말했어요.”

“거룩한 십자가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루시퍼. 지옥으로 돌아가라!”

아담의 목소리는 거칠고 격앙되었다.

“정확히 다음 주에 현석이를 죽여버리겠대요.”



“... 뭐?”

“구마를 멈추면 살려준대요. 뭔가 라틴어처럼 들렸는데 분명 그 뜻으로 한 말이에요. 느껴졌어요.”     








현석은 다미가 구마를 받고 있는 것이 계부의 입양딸 살인사건이 신문 기사에 오르지 않을것이라는 증거임을 알고 있었다. 피를 보지 않는다는 안심과 더불어 다미를 살려두는게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것이었고 더 중요한 문제 때문에 방에 서성거리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핸드폰소리가 작아서 연락을 못받아 그녀가 기분 나빠 사귀는 일은 없을거라고 할까봐 몇 번이고 책상 위 핸드폰에 연락이 왔는지, 볼륨은 잘 설정되어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느님. 제가 사랑하는 이 여인과 사귀게 해주세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으로 알고 제 목숨을 바쳐서 오직 이 여자만 사랑하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하면 저는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게 될 겁니다. 처음부터 그녀를 몰랐다면 몰라도 알게되버린 이상 제 영혼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제발 저의 사랑이 아름답게 피게 해주세요.”

그러기를 3시간 뒤에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자신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인생에 절대 없던 현석은 그녀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통화를 받기 전 이름을 확인해보니 분명 그녀의 이름이었다.

“여보세요.” 

마음을 좀 차분히하고 받을걸 후회하며 입모양으로 자신에게 욕을 했다.

“미안. 전화가 늦었지..”

“아니야, 괜찮아.”

“뭐하고 있었어?”

“어... 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 정말?” 

그녀의 목소리도 평소와 달리 기죽어있는 것만 같았다. 현석은 그 목소리가 거절의 미안함때문일 것만 같아 너무 고통스러웠다.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데이트하던 그 때로 돌아가 그 순간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응. 그치.”

“내 생각 뭐했어?”

“안받아주면 어떻게 자살할까 생각했어.” 

현석은 생각나는대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해놓고 또 후회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이런 말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행인지 무엇인지 그녀의 짧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하느님께서 화내신다.” 현석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응. 근데... 정말 너랑 못사귀면 난 죽어버릴지도 몰라. 솔직히 하느님보다 너가 더 좋아. 이런 말이 모독스러운 말이겠지만 근데 진짜 마음이 그런건 어쩔 수 없잖아. 너의 얼굴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새롭고 행복한 시간이야. 이제 널 못본다고 하면 하느님도 내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지 못할거야.”

현석은 자신의 능력 밖에 말이 줄줄 나왔다. 그것은 순전히 진실된 마음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안돼. 그런 말 하면.”

이 말에 현석은 또 절망스러웠다. 여차하면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옥이고 뭐고 그녀없는 세상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성당도 같이 다닐까?”

“어?”

“이제 남자친구 여자친구니까 성당도 같이 다니면 좋잖아.”

현석은 심장이 제위치에서 벗어나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입은 똑같이 얼굴에 붙어있었지만 말을 할 줄 몰랐고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하느님. 평생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둘은 청소년다운 사랑의 언약을 맺고 오늘부터 1일이라며 좋아했다. 

“현석아. 나랑 이번주 토요일에 어디 좀 갈래?”

“어디든 가지. 어딘데?” 

말해놓고보니 토요일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주 토요일은 다미가 선포한 기적의 날이었다. 다시 안된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어디를 가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아빠가 입원한 병원.”

“병원? 아빠 어디 아프셔?”

“응. 희귀병이 있으셨거든. 사실 그것 때문에 이혼한거야. 어떻게 약으로 버텨오셨는데 많이 안좋으셔.”

“아... 마음이 안좋겠다.”

현석의 말에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일요일에 수술 때문에 미국으로 출국하셔. 그러고나면 사실 또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대. 토요일에 너 소개시켜주고 싶어.”

“아... 그렇구나. 몇 시에?”

“왜? 다른 약속 있어?”

약속은 없다.

“아...니.”

“오후에 가서 아빠 잠들때까지는 같이 있고 싶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미안해. 사귀기로 한 첫 날에 너한테 이런 이야기부터 하게 되서.”

“아니야. 당연히 가지. 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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