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 시간에 여기는 왠 일이니?”
“아주머니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감이 생긴 현석은 월요일 밤 다미가 구마를 받을 시간에 영은의 집에 찾아갔다.
“매일 슬기누나네 집에 가서 밥 해주신다면서요?”
“정말 매일은 아니지만... 대충 거의 그렇지.”
“슬기누나네 아빠 어디가셨는지 누나가 이야기한적 있어요?”
“물어봤는데 멀리 출장갔다고만 하더라.”
“이상하지 않아요? 농사일을 놔두고 대체 출장을 어디로 가서 언제 돌아온다는 거에요?”
영은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뜸들이다 물었다.
“본론을 말해줄래?”
“아주머니가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큰 도움이 될거에요.”
“무슨 일인데?” 영은이 한숨쉬며 물었다. 현석은 그 한숨이 적어도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한숨은 아닐거라 믿었다. 다행히 그것은 얼추 사실이었다.
“이번주 금요일에 다미가 슬기누나한테 어떤 쪽지를 줄거에요. 그 쪽지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알아야해요.”
영은은 다미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리 속에 지렁이들이 뇌를 파고들어 정수리로 향해 가는 느낌이었다. 다미를 안본지 오래되어 일상생활에 적응이 되고 있던 그녀였는데 다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자신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 깨닫게 되었다.
“현석아.”
“네.”
“마을 사람들이 죽고 사라지고... 다미가 한 짓이니?”
“네.”
“너가 봤어?”
“확실해요.”
“확실하다...”
어떻게 확신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지난 자신의 치부, 남편의 죽음, 잔잔히 생기는 비극들을 안고 사는 마을, 그리고 악마처럼 떠오르는 다미의 얼굴이 그녀를 또 괴롭혔다. 특히 마지막 것은 다른 것들을 압도하는 심리적 학대였다.
‘사람들은 모든게 다 자신 마음의 문제라고 떠들지만... 그 아이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래...’
“아주머니. 도와주세요.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야해요.”
“쪽지만 찾으면 되니?”
“네. 가능하시겠어요?”
둘 사이에 있는 옛날식 붉은 작은 상 위에 놓인 과일들은 아까부터 만지는 사람이 없었다. 영은이 이제서야 먼저 귤을 들어 껍질을 까서 귤을 하나씩 떼서 먹었다. 현석이 보기에 영은의 눈이 굉장히 또렷하게 무언가를 보고있는 것 같은데 실제 영은의 머리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 아버지가 나한테 세례를 받으라고 했었어.”
현석은 대답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받을까 생각도 했었지. 그런데 알아보니 몇 개월 걸리더구나. 난 그럴 자신이 없어. 신이 있을거란 확신도 없고.”
현석은 저 말을 왜 하는지, 뭐라고 대꾸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계속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냥 영은만 쳐다봤다. 영은 눈에 현석은 다 필요없고 쪽지만 구해달라는 압박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런 어려운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저희 아빤 6년 동안 매일 다미에게 씌인 악마와 싸우고 있어요.”
“뭐? 아빠가? 어떻게?”
“구마의식이라고 악마를 내쫓는 기도로 매일 다미에게 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엄청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해가 바뀔때마다 그렇게 얼굴이 삭았구나.”
그 말에 현석은 크게 웃었다. 그덕에 긴장도 좀 풀렸는데 웃는 현석을 보고 영은도 피식 웃었다.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진짜 안타까워서 한 말인데.’
“저희 아빠 좀 도와주세요.”
영은은 예전에 자신의 남편이 정환의 부모에게 사과한답시고 성당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그 때에 아담과 다미가 각각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를 다시 복습했다.
“그래. 한 번 해볼게.”
한편 아담은 구마기도를 마치고 다미의 손목과 발목에 밧줄을 풀고 있었다. 오늘은 얌전히 누워있는 다미였다. 구마를 전혀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날도 꽤 많았지만 그 역시 아담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니였다. 악마를 끌어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미가 상체만 일으킨채 제단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아담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어제 루시퍼가 한 말은 생각해보셨어요?”
아담이 하던 기도를 마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다미는 나갈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자세로 앉아 아담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빠서 깜빡 잊어버렸구나.”
“거짓말하지마요.”
“이제 나가자꾸나.”
아담이 다미를 지나가 문을 열었다. 다미도 내려와 아담을 따라나섰다.
“아저씨는 무당놀음이 아들보다 소중한가보죠.”
“하느님께서 현석이를 지켜주실거야.”
“현석이가 들으면 실망할걸요.”
그 말에 아담이 뒤돌아 다미를 째려보았다.
“현석이에게 말할거야?”
다미는 티나지 않게, 하지만 아담이 알아볼 수 있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현석이 엄마는 그러지 않았어요. 아들을 살리려고 남을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아저씨는 영 반대네요.”
“다미야. 난 현석이도 너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 둘 다 내가 지킬거야.”
아담은 진실된 표정으로 호소하듯 다미에게 말했다. 다미는 갸우뚱한 표정으로 미소만 지었고 아담은 다시 불안감에 다미의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현석이에게는 말하지마렴.”
“알았어요.”
둘은 각자의 방을 향해 헤어졌고 아담은 샤워를 준비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며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았다. 습기 때문에 잘 안보이는 것을 손에 비누칠을 하여 거울을 문댄다음 정확히 자신의 얼굴을 직시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실거야. 현석에게 신의 가호를 비는 축복의 기도를 빌면 되잖아.’
아담은 자신의 얼굴을 돌린 다음 이번에는 욕조 위에 타일을 보았다. 왠지 그 타일에 옛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저 옛아내일뿐만 아니라 자신이기도 했다.
‘현석이는 친아들도 아니잖아. 내 친딸을 먼저 생각하는건 당연한거야. 하느님의 규칙으로는 안될 일이지만 인간이라 어쩔 수 없어.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실거야.’
화요일 저녁 세 명은 식사 전 기도를 드리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무릇 가정이란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분위기를 갖는 법이다. 하지만 조손가족이든 핵가족이든 무엇이든 가족의 형태와 가정분위기는 그 연관성에 있어 법칙이 따로 없다. 그런데 아담의 가족은 그 분위기가 자주 변모하고는 했다.
현석이 맛있다며 계란 프라이를 밥에 올려서 입에 넣는걸 보던 다미가 물었다.
“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요새?”
다미가 말을 거는 것이 별로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닌 현석이였지만 신의 관용을 본받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 넌 안좋냐?”
“뭐 기분 좋을 일이 있나.”
“없어도 기분 좋은 상태로 있으면 되지.”
“너 여자친구 생겼지?”
다미의 말에 현석이 콜록거리고 내뱉은 밥알을 주워 먹으며 말했다.
“아니야.”
“맞는데 분명.”
“아니라고.”
“진짜 아니야?” 아담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평범하게 물었다.
“네.” 현석은 왠지 아빠가 자신이 여자친구같은게 있을리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긴, 너같이 소심한 애한테 여자친구는 무슨...”
“야, 내가 뭐 어때서!”
“뭐야? 왜? 여자친구 앞에선 안소심한가봐?”
“아씨. 밥이나 먹어.”
다미가 웃고 아담도 마저 웃었다. 현석은 이게 왜 웃긴지 이해되지도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가정의 웃음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언제 불행한 일이 생길지 몰라 더더욱 그 웃음이 비극의 서막처럼 불안히 들려왔다.
“근데 너 진짜 요새 기분 좋아 보여.”
다미가 밥그릇을 보며 밥을 숟가락으로 긁으면서 말했다.
“그냥 좋다고. 늘 기분 좋게 살기로 했어.”
“좋은 말이다.” 아담이 거들었다. “최고의 선물은 성격의 명람함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구절도 있지.”
“인생론의 구절이네요.” 다미가 말했다.
“너도 아는구나.”
“무슨 일이 생겼는지와 상관없이 명랑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늘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좋은 말이네. 앞으로 그렇게 되려고.” 현석이 다소 편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그래?”
“응.”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렇다니까.”
“근데 아빠가 널 죽게 내버려두겠다고 그러던데?”
순간 정적이 흘렀다. 현석은 들을 필요도 가치도 없는 말이길 바랬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모른 척 할 인내가 부족했다.
“무슨 말이야?”
“그저께 악마가 나한테 말했어. 구마를 멈추지 않으면 널 죽이겠대. 그래서 내가 아저씨한테 말했는데도 구마를 계속하시더라. 너가 죽어도 아무 상관없나봐?”
아담이 중간에 소리를 쳤지만 다미는 본인이 말을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야? 또 왜 그래, 너.’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인은 안 할 수가 없었다. 확인을 왜 하는지 그 동기를 현석 본인도 알지는 못했다.
“아빠, 진짜에요?”
아담은 현석이 그걸 왜 묻는지 생각하느라 대답이 늦어졌다.
“왜 대답이 없어요? 진짜에요?” 그 말을 듣고서야 아담은 대답했다.
“현석아. 이따가 둘이서 이야기하자.”
“네.”
현석은 짧은 대답을 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남은 밥을 마저 다 먹고 있었다. 현석은 자신이 기분이 나쁜지 슬픈지 아무렇지 않은지 그 느낌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이 슬퍼해야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적어도 긍정적이진 않았다. 다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현석에게 말했다.
“네 여자친구한테 말해. 너도 네 여자친구가 제일 좋잖아 지금?”
다미는 주방에서 나가고 아담은 눈 앞에 남의 자식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현석아.”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이 오히려 현석의 슬픔을 앞당겼다. 괜찮아야한다는 생각과 그 말이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 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현석은 눈에 최대한 힘을 주며 숨을 강하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색과 눈동자색이 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악마는 거짓말쟁이야. 우리가 그 거짓말에 속으면 악마에게 지는거야.” 아담의 변명은 이번에는 현석의 감정을 분노로 이끌었다.
“어떤 말이 거짓말이고 어떤 말이 참말인지 어떻게 구분하죠?”
“그게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영적인 싸움에서 그런 일은 허다해.”
“그래서 내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거에요?”
“도박이 아니야. 하느님의 인도 아래 불확할신한건 없어!”
아담도 흥분감에 소리가 높아졌고 현석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담의 흥분은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고 현석의 눈물은 슬픔에서 기인한 것이였다.
“고민은 해봤어요? 구마를 멈출지 말지?”
아담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현석의 대답까지 예상하며 머리 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다가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널 죽게 내버려두겠니? 난 너희 둘 다 절대 포기하지 않아.” 불행히도 아담이 고민 끝에 한 말이라는 것을 대답하기 전의 과정부터 지금의 말투까지 모든게 증명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현석은 이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고는 야속하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주먹을 입 앞에 갖다대고 울음을 참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아담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현석의 고통에 대한 공감보다는 주로 다가올 앞일에 대한 염려였다.
“내가 친아들이잖아요. 다미는 입양아고. 사실 입양 신고도 안됐다면서요. 그리고 다미도 아빠를 아저씨라고 부르고.. 근데 내 목숨을 도박으로 걸고 다미를 위한 기도는 계속 하는거에요?”
“야, 이 자식아...”
아담은 현석에게 한시간 일을 한 사람이나 더 많이 일을 한 사람이나 똑같은 몫을 준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어떤 논리로 풀릴 상황같지가 않았다.
“현석아, 넌 절대 안죽어. 내가 널 지켜주마.”
현석은 아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다미에 씌인 악마가 이 마을에서 벌인 짓 하나도 막지 못했잖아요.”
현석이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아담은 원래 자신의 몫이 아니었던 설거지를 해야했다.
욕실에 가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로션을 바르고 나니 얼굴 상태가 그래도 좀 괜찮아져있었다. 현석은 방에 있는 십자고상을 보고 아담의 얼굴을 상상했다.
‘나는 토요일에 혹시 모를 사건을 대비하고 있는데 아빠는 대체 나에게 관심이 있기는 한거야? 기가 막혀. 나같은건 죽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야? 5년 넘게 한 그놈의 엑소시즘 효과도 없는거 며칠 안해도 되잖아. 나부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는거 아니냐고. 나부터 살 수 있는 환경? 그게 뭐지? 날 베드로대성당에 보내놓는거? 다미에 씌인 악마를 지옥에 보내는게 가장 안전한거겠지. 그럼 그것까지 생각해서 결정하신건가? 최고의 공격은 최고의 수비라고...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그럼 왜 그렇다고 말을 못해? 출생신고도 안되있는 다미 그냥 죽여버리면 되잖아. 저번에 죽여버리겠다고 하더니 그것도 결국 안하고 있고...’
현석은 예전에 다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나를 딸이다, 악마에서 구해준다고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면 흑심을 품을 걸.’
현석은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서 입양아인 다미를 이렇게 꾸준히... 아니야. 그랬다면 저번에 그렇게 두들겨 팼을리가 없어. 그 때 아빠는 정말 화가 많이 나있었어. 다미를 여자로... 아니야, 그건 아니야. 이런 생각이야말로 악마의 농간이야. 악마의 농간? 어디까지가 악마의 농간이지?’
그 때 핸드폰에 문자 알람소리가 났고 현석이 열어보니 여자친구에게 와있었다. 인생에는 한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현석은 원래 걷던 길이 보이지 않는 반대편 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