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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Mar 07. 2019

아직 오픈도 못했는데 한 달치 월세가 순삭..


상가 계약을 완료한 시점부터 월세 시계는 돌아간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해서 하루라도 빨리 오픈을 하는 게 돈을 아끼는 일이다.

아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매달려서 오픈 준비에 매진했을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보통의 사람이긴 한데, 보통의 엄마사람이었다.


내가 오픈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하원 하기까지 '하루 7시간' 뿐이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고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올스톱이다. 주말에도 오픈 준비는 거의 쉬어간다.

그마저도 여러 가지 오프라인 강의를 듣느냐고 평일 5일 중 이틀을 할애하고 나면, 일주일 중에 고작 20시간 정도만 오픈 준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우선 책을 거래할 총판과 계약을 하고, 서점을 채울 책의 목록을 정리해서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고 나서는 내가 주문한 대로 제대로 왔는지 확인하고, 책장에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하며 정리했다.

이렇게 글로 쓰면 너무 간단한 일 같아 보이는데, 나는 초보서점사장인 티가 나기 시작했다.


한 번에 900여 권의 책이 서점으로 들어오자, 이 책이 주문한 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하는데만 수일이 걸렸다.

서점 오픈 때 첫 책 주문은 아무래도 수량이 많다 보니, 총판에서도 종종 실수를 하기도 한다더라.

나는 책이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주문하지 않은 책이 더 오고, 주문금액도 맞지 않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담당자에게 알리고 금방 바로 잡았지만, 더 늦게 알았거나 아예 몰랐으면 어땠을까 조금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처음 책장에 책을 진열해보고 혼자 뿌듯해서 찍어본 사진.. 이제 보니 참 썰렁하다


누군가 말했다. 서점 일은 알고 보면 노가다라고..

900여 권의 책을 박스에서 꺼내서, 기준에 따라 정리하고, 그걸 또 책장으로 옮기고..

정말 오랜만에 맛본 육체노동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뒤늦게 책을 쉽게 옮길 수 있는 이동식 트롤리를 구입해서 그때부터는 좀 수월했다. 역시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

그렇게 힘들게 책장에 꽂아놓은 책들을 또 포스기에 등록하겠다고 다시 꺼내서 일일이 입력하고..

단순노동에 드는 시간도 꽤 많이 필요했다.




서점 이름을 확정한 것도 상가 계약을 마친 이후였다. 진짜 100개가 넘는 이름을 지었던 것 같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작명을 잘하시는 시아버님의 도움을 받아 서점 이름을 확정했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로고와 폰트는 미적센스 있는 남편과 미술 전공자인 시누이의 콜라보로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글로 쓰면 가족의 힘으로 그저 아름답게 잘 진행된 것 같지만, 다들 자기 일이 있는지라 시간을 쪼개어하다 보니 아무래도 모든 게 더딜 수밖에 없었다.


비 오던 어느 날, 드디어 간판을 달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가 계약 전에 이런 부분들을 다 결정해 놓고, 상가를 인수받자마자 간판부터 교체하고 오픈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야 광고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2주가 지나서야 겨우 간판을 달 수 있었다. 느림보가 따로 없다.




어쩌면 그냥 서점만 했다면, 더 빨리 오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카페도 같이 하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커피를 모른다는 것이다.

평소에 커피를 많이 즐기지도 않고, 믹스커피 말고는 커피 타는 방법도 몰랐다.


카페 집기를 넘겨주신 이전 사장님이 처음으로 나에게 커피를 비롯한 카페 메뉴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장님이 옆에 계셨을 때는 말이다.

이제 사장님은 떠나시고 나 홀로 커피머신 앞에 서서 하려니 왜 이리 잘 안되는지..

그 이후 카페 경력이 오래된 친구, 현재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친오빠, 원두 납품처의 바리스타 분 등등에게 알음알음 커피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카페 메뉴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으로.. 커피 종류는 줄이고, 그 외에는 차나 음료로 채웠다.


사실 오픈하기 전까지, 아니 오픈하고 난 이후에도 나를 가장 긴장하게 만드는 부분은 책보다는 커피였다.

그만큼 커피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없었던 거다. (다행히 지금은 커피가 맛있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처음처럼 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라테아트는 포기함..)




그렇게 모자란 시간에 초보사장 티 내는 느린 진행속도로 아직 오픈도 못했는데 첫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 왔다.

아깝지만 실전으로 부딪힌 첫 창업의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첫 월세를 내고 일주일 뒤에 서점을 오픈했다.

그리고 여전히 월세 내는 날은 참 빨리도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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