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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님 Nov 15. 2023

나는 당신을 미워한 적 없다 | 연극 <우리>

균형이 무너진 세상에서 중립을 외치다


"이 사람, 페미니스트래요?"


지난해 들은 말 중 가장, 가장 기가 막혔던 말 1위 되시겠다. 문제의 발언은 40대 남성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그는 공통 지인을 통해 내게 일자리를 제안한 회사의 대표다. 이 남성은 마찬가지로 지인을 통해 전달된 나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지인에게 저렇게 물었다. 


나는 글을 쓴다. 연예매체 기자로 시작해 종합지에 잠깐 몸 담았고, 지금은 브랜드 에디터로 일한다. 그동안 성별과 무관하게 많은 연예계 종사자를 만나 인터뷰했고 그들의 작품을 취재했고, 또한 사회적으로 꾸준히 문제 제기된 사안들, 이를 테면 갑질, 아동학대, 동물학대, 저체중 강박(다이어트 중독), 불법촬영 등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지금은 여성 웰니스를 다루는 브랜드 에디터로서 국내외 다양한 펨테크 기업과 제품을 발굴하며, 건강하고 평등한(비단 성별만 아니라 인종, 민족, 국가, 장애, 나이 등으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性) 문화가 정착하도록 돕는 가이드를 제작한다. 40대 남성이 30대 여성을 고용하기에 앞서 그가 페미니스트인지 여부를 확인하게 만든 포트폴리오에는 이런 콘텐츠가 들어 있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페미니스트로 '오해' 받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에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해선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운동이 페미니즘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페미니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했던 이유는,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파악하고자 페미니스트 여부를 확인할 때, 그 남자가 사용하는 '페미니스트'란 단어에 담긴 깔린 의도와 인식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남자가 포트폴리오를 받아본 뒤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마주한 자리에선 페미니스트의 ㅍ도 꺼내지 않아 나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대답할 기회를 빼앗겼던 것까지 매우 불쾌하고 억울했다. 


도대체 당신은 페미니즘이 뭐라고, 페미니스트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극단 고래가 만든 연극 <우리>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지 제공 극단 고래

지난 5월, 극단 고래의 초대로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를 보고 왔다. 대체로 재미있게-'재미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봤다. 공연이 끝난 후 함께 간 지인과 치킨집에 마주 앉아 <굴뚝을 기다리며>에 등장한 언어유희 속 숨은 뜻을 유추하느라 막차를 놓쳤을 정도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인간을 대신해 청소하는 로봇의 외양은 왜 여성으로 그려지는가, 왜 그 로봇은 여성용 메이드복을 입었나, 왜 입술을 빨갛게 칠했나, 왜 메이드복을 입고 입술을 빨갛게 칠한 배우는 남성이고, 관객들은 왜 그가 무대에 오르자 웃음을 터뜨렸나. 혹시 연출의 분명한 의도가 있는 설정인데 '불편함'에 눈이 가려져 미처 알아채지 못했나 싶어 리뷰에도 적었다(누누, 나나, 그리고 나 |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작품에 참여한 누구라도 읽는다면 언젠가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지난달 말일 메일함에서 극단 고래의 신작 <우리>에 초대한다는 메일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거기서 작품의 기획의도를 확인했을 때 반가웠다. 극단 고래에서 설명한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다.


기획의도

이해성 연출가는, 스스로 페미니즘의 가치를 학습하고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연극과 삶이 페미니스트들과 잘 소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연극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페미니스트와의 소통 부재를 감각하여 문제 제기를 해보고자 이 공연을 구상했습니다. 이에 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검열에 저항하는 행동이었던 ‘블랙텐트’에서 함께 투쟁했던 동지이자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대표이자 연출가인 홍예원을 공동연출로 캐스팅해 이번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우리>는 메타 연극이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연극에 담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극단 상어의 대표 이예성 연출가는 2030 젊은 여성이 남성, 특히 중장년 남성과 소통을 거부하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페미니스트 홍해원 연출가를 초빙하여 '젠더 연극'을 기획한다. 두 연출가와 조연출, 드라마투르그, 그리고 '젠더 연극'에 출연하고자 하는 극단 상어 소속 배우들은 약 1년간 페미니즘 스터디와 회의를 거듭한다. 동시에 극단 상어에서는 조연출이 연출을 맡고 소속 배우들이 출연하는 '양자역학 연극' 워크숍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리>에는 여러 모양의 갈등이 등장한다. '젠더 연극'을 이끄는 두 연출가의 젠더와 세대 갈등, '양자역학 연극'을 진행하는 단원들 사이의 계급, 세대 갈등. 110분의 러닝 타임이 피곤하게 느껴질 만큼 등장인물들은 내내 부딪친다. 종국에는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그러다 누군가는 연극을 포기하고 이탈한다. 모든 장면이 종료된 후 무대 벽에는 '우리는 왜 미워하는가?'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우리>는 난무하는 갈등 상황에서 엄격히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혐오와 비난이 난무하는 작금의 시대를 한 극단의 상황에 빗대어 그린 다음 "아니, 그러니까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 거야?"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질문을 받았으니 답하자면, 나는 누구도 미워한 적 없다.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보고 '이 사람,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40대 남성을 미워한 적 없다. 어리고 경력 없는 막내 여자 기자란 이유로 내가 쓴 기사에 자기 이름을 붙여 신문에 낸 30대 남자 선배들도 미워한 적 없다. 텅텅 빈 지하철 안에서 굳이 옆자리에 앉아 휴대폰 카메라를 내 다리로 들이밀던 20대 남성을 미워한 적도 없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이란 단어로 퉁쳐지는 이 나라, 이 사회의 무수한 갈등을 '서로 미워해서 생긴 일'이라고 말한다면, 힘이 빠진다. 비단 나 개인의 역사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돌아봐도 같다. 언제나 이유 없이 먼저 미움받아온 대상은, 분명하고 유일하다.


그래서 <우리>를 보는 일이 불편했다. <우리>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의 설정에도 균형을 맞춘다. 중장년 남성을 대변하는 캐릭터 이예성은 곧 죽어도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번번이 홍해원이라는 캐릭터에게 발언권을 빼앗기며 동정심을 산다.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을 대변하는 캐릭터 홍해원은 마치 걸어 다니는 페미니즘 사전처럼 관객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극 중에서는 이예성을 몰아붙이는 언행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또 다른 남자 배우 캐릭터는 20대 여자 페미니스트를 묘사하며 숏컷을 강조하고, 여자 배우 캐릭터는 페미니즘을 알고 실천하는 남자는 없다고 단정한다. 남자 단원들만 힘쓰는 일을 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남자 막내 캐릭터와 무대 일을 하고 싶은데 여자라고 시켜주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는 여자 막내 캐릭터는 시종일관 티격 대다 선배 배우들의 권위를 지적하면서 MZ세대라는 한 편이 된다. 클리셰도 이런 클리셰가 없다. 언뜻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들은, 철저히 특정 집단의 고정관념으로 설계된 클리셰 덩어리에 불과하다. 

현실은 균형적이지 않다. 페미니즘이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건,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서서히 또는 급격히 무너진 세상의 균형으로 이제 어느 한쪽의 권리는 저 지하까지 내려가 버렸다는 걸,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깊은 지하 세계에도 존중받아야 할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걸 소리 내어 외치는 것이 페미니즘인데, 그에 관해 이야기하겠다는 연극이 균형을 유지하고 중립을 지키고자 하니, 이보다 아이러니일 수 없다.


물론 그 아이러니까지 <우리>가 의도한 비틂이라면, 차라리 그렇기를 바란다. 그 고차원의 비틂을 이해하는 관객이 얼마나 될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우리>를 보던 날,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객석에서 터져 나오던 어른들의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극 말미 그 남성이 여성의 태도를 지적하며 자기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데서 들리던 웃음소리도. 그 속에서 나는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공연 정보

러닝 타임 | 110분
공연 기간 | 2023. 11. 9~19.
극장 | 연우소극장
출연진 |  정나진(이예성 외), 박윤선(홍해원 외), 안소진(동지수 외), 손아진, 한아름, 구한나, 사현명, 박형욱
예매 | 네이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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