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정글의 세계에 산다. 특히 경기가 나쁜 요즘 같은 때에는 지구 온난화에 휩싸인 극심한 가뭄의 사바나 어디쯤에 표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조직을 나오면 다 해결될 것만 같던 문제들이 되려 잔뜩 부풀린 풍선껌처럼 커지며 언젠간 반드시 터질 것이라는 예언적 으름장까지 놓는다. 자존심으로 뻗대고 싶지만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장사 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최근엔 이런저런 외주를 많이 받으며 길을 걷고 있다가도 클라이언트의 지시가 떨어지면 바닥에 휴지를 깔고 일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엾이 여겨 주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어먹던 새까만 비둘기 밖에 없었다.
살면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가 - 생각을 쥐어짜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의 말처럼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심지만은 곧았던 내가 그 심지마저 휘청여짐이 느껴졌다. 쉽게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이토록 힘들었던 적은 또 처음이었다. 무엇이 정답일지 아니, 애초에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기나 했던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닥 많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감내하는 것. 그뿐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상황이 나아져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친구 송현진은 당시의 내 모습이 많이 싱숭생숭해 보였다고 한다. 평소 실없이 웃어대는 얼굴 근육들을 총 동원하여 나름 그 복잡한 심사를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알아왔던 짬바는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숨기지 않는 편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특히 나를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에겐 쓸데없는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그 과정이 선명할 정도로 뻔해서 억울하고 슬프긴 했지만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말만 이렇지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을 것이다. 덧붙여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일인 양 말을 해야 덜 부끄럽기 때문에 제삼자의 시선으로 거드름을 피워본다.)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또 내 영혼을 갉아먹는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신성림 옮김, 위즈덤하우스 중 일부 발췌
내가 아는 인류 중 가장 순수하다고 손꼽는 고흐를 떠올려 본다.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자화상을 보면 그가 당연히 중년은 넉넉히 뛰어넘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생을 등졌을 때 나이가 고작 37살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짧은 삶 동안 스스로 얼마나 많은 투쟁을 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남의 일기장을 몰래 읽어나가듯 마음 조리며 조심스레 눈과 마음으로 담았다. 그리고 당시 내가 고흐의 친구였다면 혹은 몇 다리 건너 알 수 있는 인연이 닿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나 또한 고흐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라는, 어쩐지 그에게 묻어가고 싶다는 동질적 상상과 함께.
나이에 비해 순수하다는 것은 여러 경우에서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많은 순간 내게 긍지가 된다. 조금 훌쩍거리게 될지언정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된다. 거듭되는 거절과 찰나의 조롱은, 그래서 오늘도 내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