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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Mar 08. 2020

11. 낀 세대는 누가 이해해주나요.

       최근까지도 화제가 되었던 책 <90년대생이 온다>가 여러 기업에서 마치 필독서처럼 지정되었던 때가 있었다. 언론에서는 이 책을 앞으로 사회의 주류가 될 90년대생을 이해해 회사가 건설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했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임원들은 한 권씩 이 책을 구비해놓았다. 90년대생 사원들과 기존 팀원 간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팀 내에서도 이 책은 거의 반 강제 필독서가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기존 세대만 90년대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책의 논리가 다소 일방적이라고 느꼈다. 기존 선배들이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듯이, 90년대생도 기존 세대들을 이해하고 절충할 부분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90년 대생들을 바라보는 개인의 생각은 다양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90년대생은 기존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경험에서도 그 사실은 확실히 드러난다.

 

     웃긴 사실은  90년대생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 역시 90년대생과 몇 년 차이 나지 않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몇 년 차이로 조직에 먼저 들어와서 기존 세대의 가치관에 동화되고 힘들었더라도 조직의 속성을 받아들여 달라진, 90년대생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내 또래의 세대를 요새는 젊은 꼰대 다른 말로는 낀세대라고 부른다. 원조 꼰대라고 불리던 무자비한 기성세대와 회사 생활보다는 개인의 삶이 무조건 우선돼야 한다고 선언하는 90년생을 필두로 한 새로운 세대 사이에 끼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양쪽 모두에게 이해와 수용만을 강요당하는 낀세대 말이다.


       90년대생 후배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건 4년 정도 되었다. 직무 특성상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모두 만나보게 되는데 4년여 전부터 입사한 사원들은 전반적으로 기존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조직 생활의 기본적인 선에 반기를 들며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했다. 물론 나와 비슷한 나이 때 그리고 그 위의 선배 세대에서도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많이 봐왔지만 일반화의 오류라기엔 많은 수가 그랬다.

       90년대생 후배한테 학을 떼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들과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90년대생이 온다>가 출판되기 훨씬 전, 이미 조직 내에서 90년 대생들은 다르다는 의식이 팽배해질 무렵이었다. 첫 번째로 받은 직속 후배였던 90년대생 후배는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던 은혜를 뒤통수치기로 갚은 배은망덕의 아이콘이었다. 이 후배는 성향은 게을러보였지만 똑똑한 편이었고 학교 선배라는 책임감에 나 역시 베이비 시팅이라고 이제 와서 자조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가정교사처럼 가르쳤었다. 어느 정도 따라오는 것 같고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싶으면 예전보다 더 나쁜 상태로 돌아가서 도돌이표 같이 굴던 이 후배는 처음부터 90년대생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심어줬다.  이 후배는 가장 큰 문제는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업무에 몰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또는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는 게 문제였다. 회사 일은 개인적인 삶을 위해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수단일 뿐, 몰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 후배의 마인드 같았다. 당장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는데도 퇴근 시간을 넘기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퇴근이 우선이었다. 1년에 몇 번 고정적인 시즌에 업무상 무조건 할 수밖에 없는 주말 근무도 한두 달전에 미리 고지해도 3년 내내 매년 약속이 있다며 하기 싫은 내색을 비쳤다. 억지로 주말 근무하는 날에는 뾰로통한 얼굴로 출근하더니 일이 늦어질수록 얼굴에 불만을 가득 품어서 선배들이 되려 본인 눈치를 보게 만들기도 했고, 아예 안 나오는 날에는 선배들의 분노 발작 버튼이 되기도 했다. 핑계는 송년회부터 친구 결혼식까지 다양했는데,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지인 결혼식을 불참하거나 송년회를 미룬 나와 같은 사람들은 미련한 바보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3년을 일했던 이 후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가 본인에게 거는 기대는 커져가는데, 언제나 개인적인 일을 방패처럼 내세웠다. 본인이 적당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일만 하고 책임을 지거나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후배는 결국 필요한 돈만 모으고 유학을 이유로 퇴사해버렸다.

        두 번째로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되었던 후배는 말만 번지르르한 타입이었다. 첫 번째 후배가 말로도 포장을 못하고 이기적인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이었다면, 두 번째 후배는 첫 번째 후배보다 더 영악한 사람이었다. 겉과 속이 달랐고 사람을 봐가면서 태도가 바뀌었다. 두 번째 후배는 팀장이나 임원급 앞에서는 조직 생활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다가도 실무를 같이 하는 선배 앞에서는 역시 일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우선으로 내세우는 본색을 숨기지 못했고 태도가 묘하게 바뀌었다.

 번째 후배가 본인 업무상 필참 해야 하는 주말 근무일에 동기 혼식 날이라 못하겠다고 당당하게 내게 말했던 날, 나는 그동안 그 후배가 보여준 무책임한 업무 태도를 모두 질책했다. 팀장과 임원 앞에서는 간이라도 내줄 듯이 맞춰주던 후배가 내게 그럼 자기가 뭐라고 말해야 했었냐고 되려 따져 묻는 상황에서 나는 기가 막혔다. 더 무서운 건 당사자인 내게는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팀장 앞에서는 본인이 내게 대든 게 잘못이라며 반성의 고해성사를 읊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타고난 성향이나 가정환경의 산물로 만들어지는 게 개인의 성향이니 위의 두 명을 가지고 90년대생 전체의 특성이라고 말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90년대생이어도 좋은 평을 들으면서 회사 생활을 잘해나가는 후배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대표적으로 언급한 위의 두 명 외에도 타 팀에서 일을 시작한 신입사원의 많은 수가 저 두 명과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면 분명히 90년 대생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수가 의무는 배제한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워라밸 더 나아가 워라하 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 치여 개인적인 삶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 분명 일보다는 개인의 삶이 우선이고 일 때문에 개인적인 삶의 희생을 강요하는 조직 구조는 옳은 건 아니다. 하지만 계약을 맺고 대가를 얻는 상황이라면 해야 하고 감수해야 할 의무인 일과 조직생활의 범위는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는 게 잘못되었듯이, 월급을 받으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고 누려야 할 권리만을 외치는 90년대생의 태도는 명백히 잘못되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런 행동을 제대로 보여준 내가 만난 후배들이 본인들이 내게 한 잘못을 그대로 돌려받고 뼈저리게 후회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90년대생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주는 또 다른 문제는 이 독특한 90년 대생들을 대하는 기성세대, 이른바 원조 꼰대의 어줍지 않은 관용이다. 아예 90년대생이라고 못 박은 책이 나온 탓인지 기성세대는 특이하게 90년 대생들에게는 예외라는 특별한 아량을 베푼다. 마치 90년대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구세대 취급을 받는다는 강박이 있는지 낀세대가 아무리 어려움을 토로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중간에서 해결을 못해서 상사에게 말하면 후배 흉보는 못난 선배 취급을 당할 뿐이다. 한 번은 팀장에게 후배들의 만행을 털어놓으며 회사 생활이 어려우니 조치 좀 취해달라고 속을 터놓았다가 오히려 내 태도가 잘못되었다며 못하겠으면 그만두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90년 대생들에게 베푸는 관용을 낀세대인 내 또래에게 베푸는 건 또 아니다. 나와 같은 낀 세대들에게는 기존 세대가 갖고 있는 관습과 가치관을 따르고 지키기를 강요하면서 90년대생의 개인적인 삶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은 책에서 일러준 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심지어 팀장이나 임원은 본인들이 원조 꼰대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나와 같은 낀세대를 젊은 꼰대라고 놀리기까지 한다. 진짜 꼰대는 본인이 꼰대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더니, 본인들이 낀세대들에게 하는 행동은 망각한 채 후배들의 태도를 문제 삼는 나를 꼰대라며 우스갯소리로 전락시키는 상사들을 보면서 정말 억울해 미칠 지경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슬픈 건 내 또래의 낀 세대가 어느 곳에서도 위로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기존 세대는 늘 그래 왔듯이 낀 세대에게 본인들이 원하는 서포트를 얻고 있고, 90년대생은 아이러니하게 기존 세대에게 이해를 받고 있다. 기존 세대와 90년대생 사이에서 모두의 눈치를 보면서 어렵사리 현재를 유지해나가고 있는 낀 세대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이해와 지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90년대생이 오는 대신에 <낀 세대가 간다>라는 책이라도 누군가가 집필해줘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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