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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Apr 15. 2020

12. 인간관계 손절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려서부터 흔히 말하는 인간관계가 아주 원만한 편은 아니었다. 자존심은 세고 질투심은 강하면서 친화력은 부족했던 나는 냉정하게 말해 호감형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년 다가오는 봄학기 때는 새로운 용기를 내 다가가서 한 해를 함께 보낼 단짝을 찾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슬픈 건 그렇게 어렵게 사귄 친구들마저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사람을 사귀는 건 어려워하면서도 사람을 끊어내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던 내 객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나는 내가 정한 선을 넘어가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겨버리는 인간관계는 가차 없이 정리해왔다. 흔히들 말하는 인간관계 손절을 과감하게 진행했다. 먼저 연락을 끊거나 원래부터 연락이 뜸한 상대방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으면서 나름 가까웠던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났다. 그 결과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어졌고, 사회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던 또래 중에도 연락을 지속하는 경우도 많이 없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일상을 나누는 사람은 가족과 소수의 오래된 친구 아니면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한때는 인간관계를 손절하는 내 방식이 무척이나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 가치 없는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고 차라리 그 시간과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게 더 현명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0대에 접어들자 주변에 친구며 지인은 거의 없어졌다.


단출해진 인간관계에 분명 장점은 있다.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었고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는 고요한 지금이 평온할 때도 있다. 그러나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은 때때로 나를 슬프게 만든다. 휴대전화를 아무리 뒤져봐도 힘든데 연락할만한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초라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니까.     


요새는 가끔씩 끊어진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쉽게 끊어진 것으로 보면 내가 정리했다고 믿은 그 인연은 나 혼자 일방적으로 끊어낸 게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아니라 상대가 오히려 정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어쩌면 의미 있었던 관계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때 그 위기만 넘겼으면 더 단단해지고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사이도 있지 않았을까.


요새 들어 부쩍 후회할 때가 많은 걸 보면 쉽게 주변 관계를 정리했던 내 행동이 매번 정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손절해서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상황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떠올려보면 관계 종료의 원인이 내 자격지심이나 질투 또는 방어본능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던 때도 많았던 것 같으니 말이다.     


더 이상 새로운 봄학기는 없다 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고 싶다. 30대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르게 어른다운 성숙한 마음으로 제대로 된 관계 맺기를 해보고 싶다. 이제는 치기 어린 감정은 빼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할 준비가 되었으니까.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면 내 내면도 보다 더 안정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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