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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May 03. 2020

13. 상처를 치유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3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떠올리기만 해도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그 날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결심과는 다르게 그동안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괴로워서 그저 묻어두었던 상처를 낫게 하려면 쓰린 기억을 끄집어낼 용기가 필요했다.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순간들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아픈 기억이 되어버린 내 첫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열 살 무렵, 보통 또래 애들처럼 한창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던 나는 부모님께 반려견을 데려와달라고 한참을 칭얼댔는데 엄마와 아빠는 너무도 가볍고 단호하게 내 청을 거절했다. 애들 셋 키우기에도 벅찼을 당시의 부모님에게 반려견은 무리였을 것이다.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던 그때의 나 역시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어렸으니까 그때 서러웠던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몇 년이 더 흐르고 중학생이 된 나는 열 살 무렵에 나를 보는 듯이 한창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던 남동생과 함께 첫 반려견을 맞이했다. 아빠 지인의 강아지가 낳은 새끼 강아지들 중에 선택된 수컷 한 마리가 빨간 대야에 얌전히 앉아 눈이 소복이 쌓인 3월의 어느 날 밤 동화 속 한 페이지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일상은 즐겁고 활기찼지만 또 자주 버거웠고 속상할 일도 많았다. 어렸을 때는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입에 닿는 건 무엇이든 끝을 내버리고야 마는 장난꾸러기였다. 나무 의자부터 샌들까지 자라나는 이빨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공부에만 매달렸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내며 내 반려견도 활기찬 유년기를 지나 중년에 이르렀다. 애기 때 마냥 사고를 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발랄했던 우리 집 막내는 계속되는 변화를 겪으며 불안정했던 20대의 내 곁을 늘 그렇듯 묵묵히 지켜주었다. 막막하거나 힘들 때 곁에 앉아 온기가 담긴 위로를 건네주었던 건 순간들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무너질 것처럼 일렁거린다.     


시간은 꾸준히 그리고 무섭게 흘러갔고, 어느 날부터 우리 강아지는 아프기 시작했다. 이상이 느껴져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심장에 문제가 생긴 뒤였고 회복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했었다. 그 순간부터 도미노 마냥 모든 게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강아지의 시야에서 내가 서서히 사라져 갔고 다리는 제 기능을 잃어가서 가장 좋아하던 산책도 갈 수 없었다. 음식과 물도 입에 못 대는 날이 늘어갔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가족 모두 느꼈지만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다. 일 년 반 정도 미음을 끓여 챙겨 먹이고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입에 밀어 넣은 뒤 매일 밤을 안은 채로 부탁했다. 떠나야 할 때가 오면 꼭 내게 미리 알려달라고. 그렇게 이별을 준비했지만 막상 닥쳤을 때 준비 기간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내 강아지가 그렇게 아팠어도 내 인생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바쁘게 돌아갔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회사에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바쳤고, 주말에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 외의 시간은 최선을 다해 내 막내 동생 곁을 지켰지만 일상을 유지한다는 죄책감에 마음은 늘 무거웠다.     


결혼식 하루 전 그 날따라 오랜만에 우리 강아지 컨디션이 참 좋았었다. 아픈 기색 없이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잘 다녀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결혼 후에도 이틀에 한 번은 꼭 너를 보러 오겠노라고, 오늘처럼만 계속 곁에 있어달라는 내 속삭임에 화답하듯 곤히 잠이 든 강아지는 그 날 새벽부터 괴로워했다. 도저히 지켜보기 어려운 만큼 아파했다. 내 첫 반려견은 그렇게 아빠와 남동생의 배웅 속에 세상을 떠났다. 결혼 준비로 마지막 배웅도 하지 못했던 나는 그 날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강아지만 떠올리면 눈물이 흐른다. 용기를 냈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통에 힘들게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가끔은 떠나기 전날 보여준 우리 강아지 건강한 모습은 그 모습만 기억해주기 바란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건강했던 모습만 떠올리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은 평온한 곳에서 아프지 않고 마냥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 같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한달음에 달려와 예전처럼 내게 온기를 나눠주기를 그리고 너를 보내고 나서 내 마음에 생긴 상처도 이제는 아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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