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Kim Sep 20. 2020

17.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회사 생활은 언제나 바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나는 평일 한가운데 연차휴가를 가진다. 연차휴가 소진을 권고하는 회사 분위기 덕에 몇 년 전부터 평일 하루는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쓰면서 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주말도 쉬는 시간이긴 하지만 주말이 한 주동안 치열하게 보내며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어 재중천을 하는 시간이라면, 평일 연차휴가는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연차휴가인 날은 쉬는 날이라 알람을 다 꺼놔도 몸이 기억하는 시간에 일찍 눈이 떠진다. 더 자고 싶기는 하지만 그만 일어나 하루를 길게 보내기로 한다. 정신없이 출근을 준비하고 집을 나서는 대신 이른 아침에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려본다. 공복에 뜨거운 기운이 온몸에 돌면 몸이 이완되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좋다.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면서는 창 밖을 내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거창하게 명상이나 요가를 하는 루틴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세상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다. 창 밖에 보이는 동네의 정경은 눈부실 정도로 선명해서 생경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동네 사람들, 트럭의 확성기 소리, 어린아이들 웃음소리, 햇살이 부서지는 나뭇잎들, 담벼락에 앉아 있는 길고양이, 간간이 들려오는 공사 소음, 잔잔하게 깔리는 새 울음소리까지. 모든 게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음이 편해진다. 


  먹을 음식을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 또한 평일 쉬는 날의 놓칠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다. 늦은 아침 또는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할 수 있는 쉬운 찬들을 하나씩 만들어 보고는 한다. 평일에는 회사 주변에서 자극적인 음식 위주로 사 먹거나 거르기도 하지만, 온전히 쉬는 날에는 직접 밥도 짓고 어설프게나마 보고 배운 대로 재료를 넣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막상 차려놓고 먹을 때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더 즐거운 걸 보면 식사는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게 아니라 지친 마음을 채우는 시간 같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집 안을 깨끗이 치우기 시작한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고 바닥을 닦고 나면 기분이 말끔해진다. 집안일 중에서는 빨래하는 게 제일 좋다. 묻은 때가 깨끗이 씻겨지고 나온 깨끗한 천과 옷감을 힘껏 털어 건조대에 걸 때는 대단한 일이라도 마친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햇볕과 바람에 빨래가 천천히 말라 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좋고, 다 마른빨래에서 나는 바삭거리는 햇볕 냄새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평일의 휴일은 특별한 일 없이 저물고, 나는 잠깐 동안 단 낮잠을 잔 것처럼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복귀하자마자 일과 사람에 치여 또다시 혼자 보내는 여유로운 일상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다음 달 연차휴가를 기약하며 달랜다. 어쩌면 치열하게 사는 오늘이 있기에 쉬는 날 평범한 일상을 만끽한 게 무엇보다 행복했던 게 아닐까. 한 달에 단 하루라도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시작되는 날들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보내기로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16. 부모가 될 준비가 되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