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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Mar 15. 2024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아이가 14개월이 되던 무렵에 복직을 했습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고 1년 3개월 만에 출근하던 날,

새벽같이 일어나 울먹이는 아이를 뒤로하고 출근할 때 걱정되고 미안하면서도 솔직히 설레기도 했습니다.


산후우울증 때문에 몸도 불편한 상황에서 종일 육아를 전담해야 했던 휴직 기간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다시 일을 하지 못할 거 같다는 두려움도 컸던 거 같습니다.

분명 일할 때는 스트레스가 심했었는데,

휴직 기간에는 아침마다 아이를 안고 창 밖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부러워했습니다.


육아휴직을 연이어 쓰기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준 남편 덕에 마음 놓고 출근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그것도 아이 없이 혼자서.

홀가분했던 그 순간의 감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되어버렸지만.


복직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저는 다시 일에 잠식되었습니다. 어쩌면 일이 아이보다 우선이었습니다.

육아보다는 일이 쉽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육아휴직 중인 남편에게 아이를 온전히 맡기고 일에만 몰두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소홀함에 대한 질책이었는지 단풍을 보러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가을날,

아이가 원인 모를 고열로 한동안 크게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아이는 달라졌습니다.


새벽녘 응급실에서 경련을 일으키던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 놓고 다시 회사로 나가던 날 아침,

모든 짐을 남편에게 떠넘기듯 급하게 나갔던 그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아픈 아이를 남겨두고 오는 건 아니었는데.


회사에 간 사이 또 한 번의 경련이 일어났고, 대학병원에서 일주일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뇌파 검사 상으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새 두 번이나 경련을 일으킨 아이는 퇴원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잘 웃던 표정도, 다정했던 눈 맞춤도, 재잘대던 옹알이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입을 꾹 다문 채 무표정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끝이 안 보이는 긴 터널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크게 아팠으니 그런 거라고. 몸이 회복되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과

고열로 뇌가 손상되었거나 자폐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제 자신을 농락하듯이 반복되었습니다. 당연히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고 상사들의 질책과 실망 어린 눈초리를 느낄 때마다 자괴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터놓지 못한 채 무슨 정신으로 회사를 다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근길에도 울고 잠들기 전에도 우는 생활은 반복되었지만,

복직한 남편과 함께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퇴근 후에는 치료 센터로 아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자폐 성향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조금 늦은 아이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을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간절했던 마음은 무색하게도,

아이가 두 돌을  지나고 기다림 끝에 받을 수 있었던 대학병원 검사에서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결과를 받았습니다.


유명한 교수님의 무미건조한 검사 결과 피드백이 이어졌고

질문이 있냐는 물음에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남편이 원인을 물었습니다.

열 경련 때문이었는지 양육 방식이 잘못된 건지.

여전히 무미건조하게 선천적인 거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고 자폐 성향은 유전자의 조합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다고.

저희 아이처럼 18개월을 전후로 퇴행하듯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센터 치료 열심히 다니라는 의미 없는 조언을 듣고

긴 대기줄을 기다려 검사결과지를 복사하고는

정신없이 병원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꽤 비싼 검사비와 진료비 영수증 그리고 결과지.

반년 넘게 마음 졸인 대가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교수님이 아이를 제대로 관찰한 건 5분도 안되었으니까.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 지시 수행이 거의 안되었으니까.

센터에서도 아직 섣불리 결론 내리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일찍 개입할수록 나아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내가 잘못 키운 거라면 나를 탓하고

이제부터라도 잘못을 고치면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선천적이라는 말에는 아무것도 탓할 수 없고

쉽게 해결할 수도 없었습니다.


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이겠지만, 여전히 저는 매일 생각합니다.

내가 임신했을 때 무리해서 일한게 문제였을까.

유난히 예민했던 아이를 우울감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게 문제였을까.

육아휴직이 끝나서 아직 너무 어린아이를 두고 다시 일한 게 문제였을까.

회사 눈치를 보느라 아픈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게 문제였을까.


곱씹을수록 나는 참 못난 엄마였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긴긴 터널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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