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Kim Mar 29. 2024

지금 우리 아이는.

지금 우리 아이는 정확하게 어떤 상태일까.

고난도의 시험 문제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가 많습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도, 센터 치료사 선생님들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지금 우리 아이의 위치에 대해서요.


매일 밤 혼자 찾아보는 자폐와 관련된 수많은 글과 영상 속에는,

느리더라도 아이의 속도를 응원하다 보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가끔은 존재합니다.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속도보다는 방향을 생각하라는 말 같습니다.


저도 그 누구보다 간절히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정확하게 지금 우리 아이의 상태가 이 정도니

몇 년만 더 치료에 전념하면 정상 범주에 들어가서 괜찮아질 수 있다고.

아이가 별 탈없이 평범한 어른으로 잘 클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가 힘을 줘서 말해준다면 터널의 끝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사실 아이의 상태는 엄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늘 호전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부든 회사 생활이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더 좋은 결과를 얻었었는데

아이의 자폐 성향을 완화시키는 건 노력에 무조건 비례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세상에서 제일 기쁘게해주더니

다음 날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엄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니까요.

대각선은 아니더라도 우상향이든 계단식이든 나아지기만을 바라고

최소한 오늘이 어제보다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보지만

아이는 무심한 얼굴로 자주 엄마의 바람을 외면해 버립니다.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거의 매일 센터 치료를 다니고 있습니다.

1년 가까이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등 도움이 될만한 치료는 모두 받고 있습니다.

아무런 지원 없이 자비로 매달 만만치 않은 비용을 투자하고는 있지만

돈보다는 타이밍이 중요한 지금은 시간만되면 치료를 받습니다.


센터치료와 함께 집에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른 역할은 모두 뒤로하고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아이의 상태와 치료에 걸릴 시간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히 같이 울어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이끌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짧지 않은 시간동안 긴 터널을 사고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정도, 소리도, 눈 맞춤도 한순간에 사라졌던 1년 반 전에 비하면

지금은 한 발자국 아이가 나아간 게 느껴지니까요.


여전히 혼자 놀기를 좋아하지만 엄마의 말소리를 모방하기도 하고

자주 웃고 가끔은 다정한 눈길을 주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도 천천히 자라고 있고

주변 사람들의 진심이 아이에게도 전해진 덕분인 것 같습니다.


나무 밑에서 흙과 돌멩이를 만지작대는 아이를 보면서

지금 우리 아이는 이 계절의 꽃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도 쐬고 비도 맞고 햇볕도 쬐면서 꽃비를 흩날리는 봄을 준비하는 나무.


나무마다 꽃이 피는 순서도 제 각각이니까

언젠가는 우리 아이의 순서도 오는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지만

더 멋진 꽃을 피우느라 조금 더 걸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가 머지않아 화사한 꽃을 피워주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솔직히 말하자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