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8A 첫 수술을 마무리하고 환자를 깨우고 있을 때 즈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내과 명지은(가명)라고 합니다. 환자 한 명 상의드리려고 전화했는데요."
들어본 적 있는 내과 교수님 성함이었다. 분명 혈액 쪽... 그러니까 혈액암이나 림프종 관련 환자를 주로 보셨던 것 같은데.
"아 네 선생님 어떤 환자분이신가요?"
명지은교수님은 환자의 병력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환자는 림프종을 앓고 있던 환자인데 가슴 쪽 임파선으로 전이가 되었고 그 암이 썩으면서 터져서 흉부 쪽에 고름이 고여있으며 식도와 기도가 염증이 심해지면서 기관지 식도루(bronchoesophageal fistula, 즉 식도와 기관지가 연결이 생겨버린 것)가 생겼다고 한다. 식도를 지나가는 침, 음식물, 심지어 역류된 소화액 등이 기관지를 통해 폐로 들어가면 심한 폐렴이 생겨 사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미 터진 암으로 인해 종격동염(mediastinitis)이 동반되어 있었다. 종격동염은 흔히들 사망률(mortality)이 50%라고 한다. 얘기를 들으면서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심상치 않은 환자다.
"그런데 이 환자가 최근에 출혈이 생겨서 봤더니 십이지장에 궤양이 있더라고요. 내시경으로 최대한 막아보았는데 CT를 보니 뱃속에도 피가 차있고 궤양이 터진 것 같아요."
"흠... 피는 아직도 나고 있나요?"
"피는 약 쓰면서 얼추 멎은 것 같습니다."
환자는 70대의 여성 환자였고 기저질환 문제가 심각했다. 피가 나는 십이지장 부위를 떼는 것은 환자에게 너무 크고 부담스러운 수술일 것이다. 피만 더 이상 나지 않는다면 천공을 막아주는 일차봉합술과 대망고정술(primary closure and omentopexy)을 하면 훨씬 회복이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십이지장 궤양만이 문제가 되었을 때고 지금 이 환자는 폐와 흉부 쪽 문제들이 매우 심각했다.
"환자가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위험도를 알고 계셔야 할 거 같고 보호자들도 심각성을 아셔야 할 것 같아요."
"그냥 duodenum(십이지장)을 떼버리는 거 아니었나요?"
아니... 십이지장 떼는 것을 무슨 담낭 떼듯이 말씀하시네...
"염증이 심한 상황에서 십이지장을 자른다는 게 쉬운 게 아니어서요... 췌장이 손상될 수도 있고 주변으로 혈관도 많고 특히 담도손상도 잘 생겨요. 근데 것보다 환자가 intubation(기관삽관, 마취할 때 호흡을 대신 쉬게 해주는 관을 삽입)하고 나서 extubation(기관발관, 마취에서 깨고 자발호흡을 할 수 있을 때 관을 제거)을 할 수 있을지... 수술 전에 연명치료의향서 등 관련해서 환자와 보호자들과 얘기를 나누어야 하고 수술 후 사망하거나 영원히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긴 해야 할 거 같아요."
"아..." 내과 교수님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을 못 하신 것 같다. "근데 어차피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중환자실 간다는 것과 연명치료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중환자실 가야 하니까 어차피 연명치료를 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 아마도 내과 입장에서는 intubation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연명치료의 범위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네? 수술 전에 수술 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설명해야죠... 보호자들이 마지막으로 환자와 대화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이것을 전부 설명했다는 기록이 없으면 어차피 마취과에서 마취를 안 해줄걸요?"
마취과는 과의 특성상 의료소송이나 수술 중 문제 생기는 것에 예민하다. 물론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긴 한데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입장인 우리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밸런스를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 수술은 언제 해요?"
내과 교수님은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빨리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수술하기 전에는 여러 절차가 있었다.
"저도 그건 모르겠어요. 마취과와 얘기를 해봐야 합니다."
어쨌거나 통화를 종료하고 수술방에서 나와 환자가 있는 병동으로 갔다. 누워있는 환자 곁에는 환자분의 아드님과 따님이 계셨다. 환자의 복부를 진찰하고 여러 가지 종합해 보았더니 십이지장 궤양은 아주 크게 터진 것은 아니다. 심지어 PPI라는 약을 쓰면서 구멍이 조금 아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였고 지금 상태에서 수술한다는 것이 절대 쉽게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아... 아까 내과선생님께서 십이지장을 떼야할 거라고 하셨는데"
충격받은 아들이 말을 꺼냈다.
"환자분은 오히려 그런 수술은 못 견디실 거예요. 일단 다시 터지지 않게 뱃속에 있는 내장지방을 거기에 붙여서 patch를 만드는 수술을 할 것이에요. 사실 십이지장 궤양도 있지만 식도 쪽 문제도 심각해서 앞으로 식사가 어려우실 텐데 영양이 들어갈 수 있도록 소장에 관을 넣어 거치해 두는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환자분을 마취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에요. 그건 다른 선생님들 의견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취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환자의 기저질환이 많을수록 그렇다.
예를 들어 당뇨, 부정맥, 뇌혈관종이 있는 환자의 경우는 내분비내과, 순환기내과, 신경과 선생님들의 "전신마취 가능합니다" 답변서를 받아야만 마취과에서 마취를 해준다. 외래 오는 환자들 중에 바로 수술해 주는 줄 알았는데 여러 과 진료를 돌고 돌아오느라 수술이 2-3주 밀리게 되는 경우가 있어 짜증 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 환자는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신장내과, 그리고 이비인후과의 확답을 받아야 수술이 가능했다.
내과 주치의와 우리 외과 스케줄 전공의가 함께 다양한 과들에 의뢰(consult)를 보냈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쯤 스케줄 전공의한테 전화를 걸었다.
스케줄 전공의란? https://brunch.co.kr/@emotipe3/13
"샘. 그 환자 언제쯤 수술 가능할까요?"
"아직 이비인후과 김예진(가명) 선생님 컨설트(의뢰) 회신이 아직 안 달려서요... 한 번 푸시해 보겠습니다."
푸시란 각 과의 교수님들께 직접 연락하여 빨리 답을 달아달라고 부탁애원하는 행위이다.
"아 예진이?? 내 친한 후배인데. 내가 직접 전화해 볼게요."
친한 동아리 후배였던 예진이는 이비인후과에서 가장 힘들다는 3D(death, death, death) 파트인 두경부종양파트를 전공했다. 귀엽고 순한 예진이가 그런 힘든 곳을 자진선택해서 가다니... 나와 친한 여자애들은 왜 모두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는지 모르겠다.
예진이한테 전화해서 환자 상태를 설명했더니 예진이가 환자 CT 사진을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머지않아 예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헉 언니... 이 환자 너무 심각한데요?"
나도 심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예진이는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 정도야?"
"식도가 완전 녹았고 흉부에 농이 가득해서... 게다가 TEF(기관지 식도루의 줄임말)까지... 배는 꼭 수술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음... 하면 좋기야 하지만 정 안 되면 혈관조영실에서 배액관을 삽입하고 PPI 약을 장기간 쓰면서 기다릴 수는 있어. 환자 복부를 진찰해 보니 완전 panperitonitis(전복막염)까지 온 것은 아니더라고."
"그럼 안 하시는 게 어떨지... 일단 식도 쪽이 심각해서 흉부외과 의견을 한 번 물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그래. 환자가 안정적이라 급하게 할 필요는 없어. 내가 흉부외과 송지안(가명)한테 한 번 물어볼게."
지안이는 같은 예과 동기 여자로 흉부외과를 선택했고 종종 함께 수술을 한다. 이쪽도 스불재... 나는 가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예진이한테 들은 내용을 설명했다. 지금은 환자가 안정적이니 너무 수술을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보호자들도 동의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내과 주치의한테 말했다.
"흉부외과 송지안선생님에게 컨설트를 하나 내주세요. 제가 따로 전화를 드려 설명해 둘게요."
라고하고 나는 지안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안뇽! 무슨 일이야?"
지안이는 항상 밝고 씩씩하고 명량했다. 그래서 대화하면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아 어떤 환자 때문인데---"
지안이에게 전화로 설명했다. 내과 환자인데 암으로 인해 식도가 녹았고 종격동염이 생겼다. 그쪽으로 농이 생겼고 환자는 십이지장 궤양으로 내게 연락이 왔다고.
"아... 식도가 그 정도로 녹아버리면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
지안이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 환자는 슬슬 호스피스(hospice,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치료보다는 증상 완화 목적으로 하는 의료)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구나... 일단 내가 그쪽 주치의보고 너한테 컨설트 쓰라고 했어. 이따 컨설트 오면 한 번 체크해 줘~"
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과 명지은 교수가 지안이한테 낸 컨설트는 지우고 훨씬 위에 있는 교수님에게 직접 컨설트를 썼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더 이상 이런 환자는 안 보셔서 (보통 응급환자는 젊은 교수가 본다) 결국엔 지안이 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시키셨다.
어차피 지안이가 할 거였는데 굳이 컨설트를 지우게 하고 왜 윗사람한테 낸 것인지...
"혹시... 내일 만약 흉부외과에서 수술한다면 같이 할래? 흉부에 찬 농을 수술장에서 좀 빼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Feeding jejunostomy (급양공장루, 입으로 식사하기 어려운 환자를 위해 장으로 바로 식사를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구멍)도 하면 좋을 거 같아서."
"아 그럼 그럼. 어차피 너네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하는 거면 마취된 김에 우리 쪽도 손보면 좋지!"
"좋아 그럼 내일 같이 협진 수술하자!"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