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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Nov 11. 2024

[암시리즈] 3 - 암의 말로

암이라는 병의 자연경과

"Natural Course" 또는 "자연경과"라는 것은 한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일컫는 표현이다.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세포를 종양이라고 부르는데 그중 악성 종양을 부르는 표현으로 종양들 중 성장 속도가 빠르고 주변 조직에 침윤하는 성격을 지녔으며 또한 전이를 할 수 있어 생명에 위협을 초래하는 종양을 악성이라고 한다.


암은 자라고 분열한다. 통제되지 않은 채 주변 정상 조직을 파괴하고 과격하게 그 자리를 뺏어 차지한다. 암이 자라면서 침범하거나 전이하는 부위에 따라 환자들의 증상과 예후가 달라진다. 복강 내 생긴 암은 흔하게 복막으로 전이되어 씨앗 뿌리듯이 다발성으로 자라나며 장을 막는다.


오늘 온 환자는 그렇게 난소암이 복막으로 전이되어서 장폐색이 된 환자였다. 40대 여성분이었는데 난소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했었다. 전이가 된 암도 암종별로 예후가 다른데 난소암은 4기로 진단되어도 cytoreductive surgery 또는 debulking surgery라고 부르는 종양감축수술과 항암 및 호르몬치료 통해 생존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렇게 수술을 하고 또 하면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뱃속에 암이 가득해 더 이상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 그 시점을 정하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인 경우도 있고 산부인과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외과의사에게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이 환자는 그동안 식이가 그래도 가능했는데 다시 또 장이 틀어막힌 것인지 더 이상 먹는 게 힘들어졌고 산부인과에서 다시 한번 수술이 가능할지 문의가 왔다.


환자는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말랐고 많이 지친 얼굴로 내 외래를 방문하였다. 눈빛은 간절함과 동시에 무심함이 함께 섞여있었다.


우리가 흔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이런 장기 암환자의 경우 우울과 수용 사이 "탈진"이라는 새로운 한 단계를 추가해야 한다. 우울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수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저 이 모든 고통에 지처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치료가 고통스러울수록 간혹 이 단계에서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이 환자의 경우엔 먹지 못 하는 증상이 생기니 그것은 너무 괴로워서 적극적인 치료를 시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단 수술이 가능할지 장담은 못 드려요...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봅시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나도 시도하겠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고 CT를 계속 위아래로 스크롤하면서 많은 고민 끝에 포기하듯이 내뱉은 말이었다. 환자도 그것을 느꼈는지 되레 내 눈치를 보면서 얘기했다.


"죄송해요... 자꾸 선생님께 폐만 끼치는 거 같네요..."


나는 깜짝 놀라 환자를 쳐다보았다. 이 상황에서 들을 말도 전혀 듣고 싶은 말도 아니었다. 나도 사람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무슨.. 그런 말씀 마세요 이게 왜 환자분 탓이에요. 환자분이 뭘 잘못했다고..."


"네..."


"환자분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이 병이 고약한 거예요. 암이 이렇게 사악한 거예요. 그냥 병이 나쁜 거예요."


환자는 살짝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환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학생 때 CPX라는 시험이 있었는데 모의 환자(연기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하는 롤플레이식 실기 시험이다. 그때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거기서 손을 잡고 휴지를 건네어야 하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래서 한 50%는 학습효과로, 나머지 50%는 그 상황에 휩쓸려서 하게 된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환자가 의욕이 없고 우울해있으면 나을 병도 안 낫는다. 환자의 의기를 살려주는 것도 치료의 일부였다.


"힘을 내시고! 안 되겠다. 이번 치료받으시려면 저랑 하나 약속해야 해요. 앞으로 절~대 죄송하다는 말 하지 않기. 알겠죠?"


환자는 계속 끄덕이면서 수줍은 듯이 웃었다. 그리고 줄 것이 있다며 내게 초콜릿을 주셨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나는 그녀가 준 초콜릿을 받았다.





이전에도 서술했지만 일하는데 막 감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드라이하게 해야 가장 심플한 법. 근데 말기 암 환자를 만날 때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지고 그렇게 치부하기가 참 쉽지 않다. 외과는 아무래도 말기 암 환자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말한 난소암과 달리 위암이나 췌장암의 경우는 전이가 된 순간 적극적인 수술을 하지 않는 암도 있다. 이 환자는 60대 남자 환자였고 우리 병원 교수님의 지인이셨는지 잘 부탁한다고까지 연락받은 사람이다. 근데 복강경으로 뱃속을 들여다보니 암이 너무 심했고 복막에도 전이가 되어있어서 암을 제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 후 보호자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할 때도 쉽지 않지만 환자 본인에게 그 얘기를 전달할 때는 그 마음이 배가 된다. 환자에게 수술장에서 본 소견을 설명했다. 직접 본 것이 아니니 와닿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가끔 복강경 화면을 사진 찍어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보고 싶은지를 우선 여쭤봐야 한다. 보겠다는 사람도 있고 안 보겠다는 사람도 있다. 이 환자는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기에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드렸다. 긴장은 했지만 의외로 무덤덤한 얼굴이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그럼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치료할 수 있나요? 간에 전이가 되어도 살았다는 사람도 있던데..."


"음... 4기 암에서 항암치료는 완치를 기대하며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목적으로 하는 것이에요. 약이 잘 들을 경우 생존율이 오를 수 있지만..."


보호자는 내 말의 의도를 알아들었지만 환자는 아직 부정 단계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항암 하시는 교수님을 소개해드렸다. 항암치료를 몇 차례 받고 난 후 복막전이로 인한 장폐색이 발생하여 수술적 치료 위해 다시 내 쪽으로 입원했다. 이때는 어느 정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수용한 상황이었다.


다시 수술장에 들어갔을 땐 다행히도 아주 심하지는 않아서 장루를 만드는 대신 폐색된 장을 우회하는 우회술을 시행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항암이 1주일 늦어졌는데 어서 수술부위가 아물고 식이가 가능해지면 다음 항암치료를 이어서 하셔야 했다. 함께 언제 퇴원하고 언제 다음 항암을 할지 의논하고 있을 때 환자가 말했다.


"사실 이번달 말에 우리 딸이 남해 여행을 예약했어요... 그전에 항암을 하고 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전에 항암을 하려면 외과적 치료를 좀 더 앞당기고 빨리 퇴원을 시켜야만 했다. 환자의 몸상태만을 생각했을 때는 무리해서 치료를 앞당기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일반 환자와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가끔 살아 숨 쉬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특히 이렇게 평소보다 마음을 쓰게 된 환자의 경우는 더욱더. 


환자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조금 서둘러 식이 진행을 시켰고 마음 같아선 더 지켜본 후에 퇴원시키고 싶었지만 퇴원을 약간 무리해서 앞당겼다.


"혹시라도 토하거나 가스(gas, 방귀)가 안 나오면 바로 응급실 오시고..."


불안한 마음에 다른 환자들보다 주의사항을 강조하며 당부했다.


"지속적인 복통... 고열이 생기셔도 바로 즉시 내원하시고..."


"네네. 괜찮을 것 같아요."


환자는 웃으며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찝찝한 마음이 남았던 나는 계속 고민하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명함 하나를 꺼내서 환자에게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박교수님 지인분이시기도 하니까... 여기 제 번호가 있으니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세요."



명함을 받은 환자는 놀라며 고마워했다. 원래 환자와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 환자는 다른 과 교수님의 지인이기도 했고...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연락처를 주었다.


그 후에 별 다른 연락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카톡이 와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ㅇㅇㅇ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집에서 농사를 조금 하는데 배 한 박스 보내드리려고요.^^ 혹시 주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런 것은 혹시라도 김영란 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어서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따님과 여행은 잘 가셨나요?]


[아 그게... 사실 지금 내과에 입원해 있습니다.]


[네??]


[여행 전 날 갑자기 피가 나서요... 내과에서 입원치료 중이고 32병동에 있습니다.^^]


나는 바로 달려가서 환자와 면담하였다. 피가 나서 응급실로 왔는데 외과 쪽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어서 외과에는 따로 연락이 안 갔고 혈액종양내과 쪽으로 입원해서 수혈 그리고 대증치료를 받고 있었다. 결국 여행은 좀 더 미루어졌다고 한다. 이번 치료가 잘 끝나면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조금은 자신 없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치료가 가능한 암환자만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그런 이유로 외과를 선택한 점도 있고 외과의로서 일하는 장점 중에 하나다. 그런데 장 수술을 하다 보면 이런 환자들도 마주하게 된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나약해지듯이 돌이킬 수 없는 암의 자연적인 결말 앞에서 나는 한 없이 무능해졌다.


그리고 환자는 한동안 내과에서 장기 입원하고 있었는데 내가 방문할 때마다 매우 반가워하며 나를 맞이하였다. 이런 환자들에게 의사란 삶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마지막 구원자와도 같다. 비록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서인지 많이 의존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도 반가워한다. 방문할 때마다 지금은 어떤 치료를 받고 계시는지, 내과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 식사는 괜찮은지 등을 질문하였다. 환자는 항상 나와 조금 더 오래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환자와는 달리 나는 점점 더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외과의사로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 환자를 만날 때마다 나의 무능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의 한 인생의 마지막을 보며 그 괴로운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지금은 내과에서 주된 치료를 하고 있으니 그렇게 자주 갈 필요는 없을 거야...'란 생각을 하며 나는 조금씩 방문이 뜸해졌다. 비겁하게도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 감정을 계속 받아내서 수용하기엔 내가 많이 미숙한 사람이었다.


문득 혈액종양내과 선생님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기암 환자를 매일 보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물론 각자 직업의 특성에 맞게 교육을 받고 성격도 변화하겠지.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로서 누군가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리 머리로 납득이 가도 마음은 항상 쓰라린 법이다.




암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자라나 주변 장기를 침범하여 먹어치운다. 그 끝은 결국 암을 포함한 모든 세포의 죽음뿐인데도 그 파괴적 행보를 멈추지 않는 광기의 포식자다. 종양외과의사에게는 암은 최초의 적이자 최후의 적인 샘이다. 비록 내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인류가 암을 진정으로 정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의사들의 염원이자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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