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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무사 Oct 23. 2020

일 잘하는 직장인

5가지의 노력형 역량모형

  '일'이라는 행위를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업으로 삼는 것이 필자의 '일'이다 보니 '일' 자체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화두가 하나 있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일을 잘하면 인사평가를 잘 받을 수 있고 높은 연봉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며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런 실익을 차치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순수하게 일을 잘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장인으로서 일을 하면서도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일 외의 것에서 의미를 찾는 분들도 계신다.)


  필자가 종사하는 직종과 직무의 특성상 다양한 직장인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그 직장인들은 때로는 나의 동료이자 상급자 또는 하급자였고, 때로는 나의 경쟁자였고, 때로는 협력자이자 조력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일 처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일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의 명제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일을 잘 하는 직장인들은 이러한 특성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라고 하는 나름의 역량모형을 구축하게 됐고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일 잘 하는 직장인은 목적을 명확히 인식한다.


  일은 항상 다르다. 어떤 일은 엉성하더라도 빠르게 처리되어야 하는 반면, 어떤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밀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어떤 일은 늘 하던대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반면, 어떤 일은 늘 하던대로 했다가는 망한다. 또 어떤 일은 면피를 해가며 해야 하는 반면, 어떤 일은 책임을 지더라도 과감하게 밀어부쳐야 한다. 이렇게 일이 항상 다른 이유는 그 일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물을 짜야되는 일의 목적이 물에 빠진 가로*세로의 길이가 20cm인 상자를 건져내기 위한 것이라면 아주 촘촘한 그물을 짤 필요가 없다. 조금 엉성하더라도 그물망 사이가 18cm정도인 그물을 짜서 상자속 물건이 상하기 전에 빨리 건져내는게 중요하다.

  일을 잘하는 직장인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위해 그물을 짜는지, 즉 '일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을 고민한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 목적이 앞서 말한 사례처럼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도 일 잘하는 직장인은 불분명한 목적을 나름대로 구체화하고 자신이 취해야 할 일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일을 시작한다. 간혹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있더라도 목적을 확정하는데 투입하는 시간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일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상으로 많은 직장인이 목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거나 목적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파편화된 작업에 집중한다. 하지만 아무런 의식 없이 한 번 한 번의 붓터치에 최고의 집중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명화를 그려낼 수 없다.


  둘째, 일 잘 하는 직장인은 관련 규정과 규칙을 명확히 알고 움직인다.


  우리에게는 일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인사노무 업무를 기준으로 이야기 하면 노동관계법령을 준수해야 하고, 단체협약을 준수해야 하고, 취업규칙을 준수해야 하고, 노동관행도 고려해야 하며, 근로계약서도 지켜야 한다. 규범력을 갖고 있는 규정만 준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이라는 조직에는 어겨서는 안되는 비규범적 규칙들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비규범적 규칙들이 규범력 있는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일을 잘하는 직장인은 일을 하면서 준수해야 할 규정과 규칙을 명확히 알고 움직인다. 바꿔 말하면 필자의 다른글의 제목처럼 게임의 룰에 해박하다. 내가 해도 되는 것이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면 오히려 유연해진다. 초고압 전기 철조망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그 안에서 나의 모든 움직임이  더뎌지는 것은 아니다. 철조망이 설치된 범위만 명확히 인식한다면 적어도 그 범위내에서는 달려도 되고 누워도 되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나마 고압전류가 약하게 흘러서 뚫고 나가도 생명에 지장 없이 잠깐 따끔할 뿐인 구역이 있다면 잠시 고통을 참고 밖을 넘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일 잘 하는 직장인은 인적자원을 잘 활용한다.


  아무리 뛰어난 엔지니어도 거대한 항공모함을 혼자 건조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한명의 사람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보유할 수 없다. 일을 잘하는 직장인은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데 능하다. 내가 처리해야 할 일과 위임해야 할 일에 대한 구분도 잘 해낸다. 일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일의 일부를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인적자원의 활용 없이 모든 역할을 혼자서 수행하려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주변의 인적자원을 활용한다는 것은 일의 주체를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장하는 것이고, 이는 일을 하는데 쓸 수 있는 시간과 데이터 처리 역량을 현격하게 늘리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는 똑똑한 개인이 보통 사람의 집단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판단'과 '실행'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라면 개인은 절대 집단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은 판단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넷째, 일 잘 하는 직장인은 의심이 많고 소심하다.


  어떤 사람의 성격을 평할 때 의심이 많고 소심하다고 하면 명백히 욕이다. 신뢰와 대범함이 미덕인 사회에서 의심이 많고 소심하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을 함에 있어서는 미덕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일을 잘하는 직장인은 의심이 많고 소심하다. 일을 하면서 확인해야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오해하거나 잘못 해석한 것은 없는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체크한다.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조차도 믿지 못해 타인의 크로스 체킹을 일삼는다.

  공기업 재직 당시 있었던 일이다. 어느 기업이나 인사평가와 승진은 중요하겠지만 공기업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 확보를 통해 수용성 있는 승진 인사를 함으로써 조직 구성원의 모티베이션과 조직몰입을 강화하기 위해...라기 보다는 각종 상급기관 감사의 단골 주제이기 때문이다. 함께 일했던 직속 상급자는 의심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승진자 명부가 완성된 뒤 명부 작성이 정확한지 끊임없이 의심했고, 승진자 명부 작성의 근간이 되는 기본 데이터를 인사위원회 상정 직전까지 필자와 교대로 검토했다. 이후 감사원 감사, 기재부 감사, 주무부처 감사 등 수 차례의 감사를 받았지만 지적 사항은 없었다.


  다섯째, 일 잘 하는 직장인은 지적 과식을 한다.


  돌을 깎아 사람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딱 사람만큼의 돌만 있어서는 안된다. 사람만큼의 돌만으로 사람을 조각하려다가는 사람이 아닌 조각품이 나올 것이다. 사람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깎아서 없애도 되는 여유 부분이 필요하다. 일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일의 결과물을 당초 목적에 맞게 내놓기 위해서는 일의 결과물에 해당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 

  일을 잘하는 직장인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정보과 지식을 습득할 때 과식을 한다. 해당 영역 뿐만 아니라 인접 영역의 정보와 지식까지 수집해 학습하고 때로는 전혀 무관한 영역으로 보이는 것들까지 관심을 갖는다. 풍부하고 여유로운 재료가 있으니 풍요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고, 남은 재료는 또 다른 일을 하는데 활용되어 상승효과가 나타난다. 일을 할 수록 재료는 더해진다. 즉, 일을 하면서 성장한다.


  직장인의 일은 슬프게도 평가를 동반한다. 비공식적으로는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을 형성하고, 공식적으로는 인사평가를 통해 등급 또는 점수화 된다. 평판과 평가에 연연해 일의 기준을 모두 외부에 맡길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좋은 평가를 끌어내는 것이 이득이다.

  앞서 언급한 5가지로 구성된 역량 모형은 타고난 자질(예컨대, 1시간에 1000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능력, IQ 200)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갖출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일 잘하는 직장인이 될 것인지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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