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마을
고향은 언젠가 떠날 곳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돌아갈 곳이기도 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김태리 분)은 양파 ‘아주심기’를 위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도시로 떠났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축복이다. 그곳에서라면 뭐든 해볼 수 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행안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은 결국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돌아갈 곳’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라고 볼 수도 있다. 그곳이 반드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2022년 행안부 청년마을인 경남 하동의 ‘오히려 하동’ 이강희 대표는 아주심기를 위해 고향으로 U턴한 청년이다. 대신 양파를 심는 게 아니라 로컬브랜딩이란 씨앗을 지역에 심어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게임 개발자로 살아가던 이강희 대표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지방소멸은 언론에서나 떠도는 말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고향 땅에서 바로 그 ‘소멸’을 체감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고향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탐색했다. 그 후 이대표는 도시의 삶을 떠나 고향 하동으로 돌아와 로컬 블랜딩 스타트업 (주)다른파도를 창업했다.
“평범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회사 업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았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나의 능력을 펼치고 싶었습니다.”(‘오히려 하동’ 이강희 대표)
창업하자마자 이대표는 하동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카페와 베이커리를 오픈했다. 하동 농산물을 1차적으로 소비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로컬 문화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응이 좋아 1인가구를 위한 소규모 카레집까지 론칭하게 되자 로컬 브랜딩 컨설팅이나 공간 디자인 영역까지 사업이 확장됐다. 이런 과정은 청년마을 사업 공모 첫 도전에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현재 ‘오히려 하동’은 청년 지역살이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동료들과 스타트업 문화를 배우면서 하동시장을 주제로 로컬브랜딩 작업을 해나간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원한다면 하동에 머물면서 자신만의 로컬브랜드 아이템을 발굴해 팝업스토어를 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처럼 하동에 모인 청년들은 하동 지역을 탐색하면서 지역 자원을 개발하거나 IT기술이나 디자인을 활용해 지역문제를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향후에는 인근의 구례, 산청 등 지리산권 옆 동네 청년과 연계해 활동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오히려 하동’은 지역주민의 지지와 지자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동읍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서당마을 회관을 제공받아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지역에서 시민단체와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온 이대표의 부모를 비롯해 지역네트워크도 청년마을 조성을 위해 적극 도움을 줬다고 한다. 앞으로 하동이 로컬브랜드 스타트업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도시가 아니라 오히려 하동이기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