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녀는 [X X]에서 그들의 음악적 과도기를 끝내고 그들만의 음악적 설계와 다양한 여성들을 향한 임파워링 메세지를 전달하며, 팀만의 서사를 넘어 포괄적 현재성을 획득했다. 그 정교하면서도 웅장한 세계관을 이을 것 같았던 [ # ]은 이수만 프로듀서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소식과 함께,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팀을 끌고 나간다.
'So What'에는 최근의 걸그룹들이 쌓아온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인트로에서는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와 CL의 'Hello Bitches'를 연상시키는 브라스 사운드와 랩핑을 보여주다가 곡은 급격하게 레드벨벳의 'Hit That Drum'과 같이 화음을 강조한 코러스와 빠른 드럼의 조합으로 변환된다. "가시 돋친 게 So What"으로 시작되는 프리 코러스는 ITZY나 최근의 걸스 힙합 곡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지한 베이스와 밝고 경쾌한 보컬이 대비를 이루는 구조로 시작해 고조적이고 축제적인 코러스로 깔끔하게 이어진다.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 프로덕션이지만 많은 레퍼런스를 촘촘하게 시도했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참여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SM의 색이나 이달의 소녀 기존의 색을 이 곡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물론 전혀 다른 성격의 파트를 여러 개 짜 맞춰 곡을 만드는 것은 SM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작업 방식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NCT 127의 'Cherry Bomb' 커버를 보고 프로듀싱을 결심했다는 코멘트를 생각한다면, NCT나 레드벨벳의 컬트적인 하드코어함에 비하면 많이 트렌디하고 이달의 소녀가 지금까지 시도했던 일렉트로니카와 블랙뮤직 기반의 유연하고 세련된 사운드에 비하면 직선적이다. 모두의 예상 범위를 미묘하게 벗어나는 곡임에도, 'So What'은 곡의 폭발적인 지점까지 청자를 몰고 가며 -이끌어 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 폭발에 휩쓸리도록 한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비추며 축제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클라이막스로 에너지를 터뜨리는 뮤직비디오와 에고를 강조한 가사는 'Butterfly'와의 연결점을 만들어냈다. 'So What'은 팀이 내세우는 세계관을 그 어느 때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어필한다.
3번 트랙 'Number 1'부터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스타일로 돌아오는데, 공간감 있는 베이스와 비트 위로 신스와 보컬 레이어를 촘촘하게 쌓아둔 SM식 R&B 곡이다. 기존의 SM 스타일에 다인 멤버의 보컬 레이어가 겹쳐진 스타일은 EXO의 곡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이달의 소녀 멤버들 특유의 투명한 보컬이 곡의 깔끔한 믹싱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점은 큰 차이점이다. -SM 아이돌의 경우 특징적인 보컬을 좀 더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SM의 색은 이어지는 'Oh (Yes I Am)'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곡의 도입부부터 쌓아 올려진 샤이니와 f(x), 특히 샤이니가 주로 보여줬던 감각적이고 청량한 신스 사운드와 보컬 믹싱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지만, 오히려 레퍼런스가 뚜렷한 만큼, 기존의 스타일보다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흔적과 지금의 걸그룹들이 취한 음악적 태도가 더 도드라지는 이 앨범은 전작의 이달의 소녀를 기대했던 리스너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는 선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곡 각각의 완성도는 준수하고, 멤버들 역시 곡 안에서 (그리고 퍼포먼스 내에서) 달라진 스타일에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러운 소화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과도하게 많은 요소들을 담은 실험은 곡과 앨범 전체의 맥락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오히려 '#'과 'So What'만이 수록된 싱글이었다면 임팩트 있는 변신으로 강한 인상을 깔끔하게 남길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굳이 미니앨범이라는 형식을 취해, 한눈에 잡아낼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요소들이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뮤직비디오와 타이틀 곡의 가사 외에는 이달의 소녀 기존 세계관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물론 앨범 전체보다는 개별 음원을 중심으로 감상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시장에서 앨범 전체의 유기성은 점점 그 중요도가 하락하고 있긴 하지만, 전작에서 음악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정리를 마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기대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기대와는 다른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을 벗고, 이 앨범을 독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Burn Yourself"라는 선동적이고 묵직한 메세지를 내세우며 지금까지 주로 보이그룹들이 보여줬던 퍼포먼스나 곡 스타일들을 타이틀 곡뿐 아니라 앨범 전체에 걸쳐 보여준 [ # ]은, 2019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걸그룹이 당면한 변화의 현장을 담고 있다. 전작이 그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앨범은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를 택했다. AOA가 커버한 '너나 해(Egotistic)'나, (여자)아이들의 'Lion'과 같이, 걸그룹 씬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전략이 <퀸덤>과 같은 특수한 환경이 아닌 앨범 자체에서 시도된 경우는 아직까지도 많지 않다. 앨범 전체를 잡아두던 비트 위로 청아한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날아다녔던 'Butterfly'를 지나, 'So What'은 그 이후의 이야기로 나아갈 것을 밀어붙인다. 나비 같았던 신스와 보컬 레이어는 벌처럼 쏘는 듯한 형태가 되었고, 'Butterfly'의 뮤직비디오에서 푸르고 영롱했던 하늘에서는 불이 쏟아지고 있다. [ # ]은 거대하고 보편적인, 소녀들의 성장을 보여준 전작의 스타일을 반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앨범이다. 그 성장이나 변화라는 것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