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에서는 분야와 장르를 막론하고 큰 획을 그은 이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영화, 그리고 배우들은 그들 스스로가 소재가 되곤 한다. K-POP, 그러니까 한국의 아이돌 팝 씬에서도 이러한 시도들 자체는 종종 있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타란티노의 <KILL BILL>의 스토리와 미장센, 사운드까지를 동명의 곡을 통해 재해석했고, 아이유는 'Modern Times'에서 찰리 채플린과 무성영화 시대의 음악에 대한 감상을 표현했다. 음악에서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오마주 대상의 형식과 이미지를 자신의 것에 더해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그런 맥락에서 [NEO ZONE], 더 정확히 '영웅 (英雄; Kick It)'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NCT 127은, 브루스 리라는 아이코닉한 인물을 곡과 퍼포먼스의 중심으로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위로 다른 무언가를 함께 불러내고 있다.
'영웅 (英雄; Kick It)'은 브루스 리가 활동했던 70년대의 사운드를 사용하거나, 랄로 쉬프린의 테마곡들을 차용하는 대신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전주를 채우는 거친 기타와 외치는 듯한 코러스, 래핑과 보컬 테마의 극단적인 대조는 는 초기 SMP의 가장 전통적인 형식이다. NCT 127은 '無限的我 (무한적아;Limitless)'와 'Cherry Bomb' 등의 곡들을 통해 SM의 클래식한 형식 위로 트렌디한 비트와 마크와 태용의 래핑, 탄탄한 보컬 레이어와 같이 새로운 사운드를 쌓으며 디스코그래피를 쌓아왔다. "브루스 리"를 반복적으로 호명하고 있는 곡과 마찬가지로, 뮤직 비디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브루스 리의 영화처럼 액션을 강조한 안무와 그래픽을 공격적으로 내세운다. 그렇지만 반짝이는 재질의 검은 의상이나 동작이 큰 안무 등은 브루스 리의 그것이 아닌, H.O.T와 같은 90년대 보이그룹들의 상징물이다. '영웅 (英雄; Kick It)'은 브루스 리라는 과거의 액션 아이콘과, 90년대 SMP라는 이질적인 요소와 한 데 묶여 '레트로'로서의 궤를 함께 한다.
소프트한 초반 수록곡들에서의 흐름을 전환하는 'Interlude: Neo Zone' 이후의 트랙들에서도 이런 경향성이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태용과 마크의 공격적인 래핑과 키치하고 공격적인 사운드의 '뿔 (MAD DOG)'과, 90년대 R&B적인 보컬 파트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듯하다가 긴장감을 터뜨리는 대조적 테마가 연속되는 이루어진 'Sit Down'는 서로 다른 디테일을 가지만 하나의 시퀀스를 이루며 앨범 흐름의 중심에 존재한다. 복잡한 비트와 드럼은 90년대의 올드 스쿨 힙합 혹은 전통적인 SMP와 거리가 있지만 곡의 곳곳에서 테마를 급격히 틀거나 서태지와 아이들 혹은 H.O.T 시절의 스타일링을 보여주며 과거를 비춘다. 부드럽지만 정교한 보컬 어레인지먼트와 사운드 레이어가 돋보이는 'Elevator (127F)'와 'Day Dream(白日夢)', '백야 (White Night)', 'Dreams Come True'와 같은 R&B 트랙도 중심 시퀀스의 주변부에서 앨범 전체의 질감을 풍부하게 포장하면서도 과거 음악에 대한 해체와 재해석을 마찬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Neo Zone]은 NCT 127의 (혹은 SM의) 기초에 충실하면서도, 독자적인 스타일의 웰메이드 팝 앨범으로까지의 발전을 가장 잘 보여준다. 특히 NCT 127이 추구하던 '네오함'의 기반이란 ('SUPERHUMAN'이 반영했던 SM의 근과거가 아니라 더욱 그 이전의) 과거의 것에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 앨범이기도 하다.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는 90년대 스트릿 스타일과 러프한 VCR 비디오, 픽셀 그래픽 게임의 색감과 질감, 클래식 사이버펑크 등 지난 세기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일련의 요소들을 불규칙하고 해체적으로 나열, 재구성하는 방식은 유영진을 대표로 하는 SM의 스태프들의 원래 특기이기도 하지만, NCT처럼 폭넓은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드물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은 그들이 다음에는 어떤 재료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할지 다시금 기대하도록 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브루스 리와 SM, 그리고 NCT 127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 다시 이 앨범에 불러냈는지와는 별개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 역시 있다. 그 모든 요소들을 '왜' 불러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Neo Zone]과 '영웅 (英雄; Kick It)'이 대상으로 한 소재들은 그저 무작위적인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액션 스타인 브루스 리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백인 악당들을 쓰러뜨린다. 90년대 보이그룹들은 어른들과 학교, 기득권을 상대로 힙합 중심의 거친 음악을 반항하듯 쏟아냈다. 좀 더 폭넓게 영역을 확대한다면 북미의 흑인들은 백인 중심의 사회와 길거리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무장했고, 그중 하나가 랩이었다. 일련의 요소들은 무언가 개인이 맞서기 어려운, 거대한 무언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다. 이런 맥락은, 이제 막 북미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소수 그룹이 된 그들에게 아시안 프라이드인 브루스 리는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였기에 내린 선택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팝 시장 내에서 마릴린 먼로나 마돈나와 마찬가지로 시각적으로 아이코닉한 상징(노란색의 트레이닝 복, 근육 같은 것들)을 오마주 하기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앨범 내에서 보이는 일련의 요소들은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하는데, 우리가 '남성성'으로 부르는 개념이다.
'남성성'이라 불리는 에디튜드의 강화는 NCT 127 뿐 아니라 최근의 보이그룹들이 급격히 따르고 있는 노선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아이돌 팝이 북미 시장의 수면 위로 떠오르며 이러한 경향성은 강해졌다. SM 역시 예외는 아니다. EXO는 'Kokobop'부터 노선을 틀어 본격적인 섹스어필과 남성성 과시로 나아갔고, SJ는 본래의 친근함과 펑키함을 내려놓고 성숙함을 강조했다. 이는 최근까지도 "게이 같다"는 총제적으로 선입견 짙은 표현을 현지 팬들이나 소비자들로부터 들어온 역사가 있는 만큼, 북미 특유의 스테레오적인 '남성성'을 어느 정도 수용하려는 시도였을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앨범과 컨셉은 철저히 현지 시장에 맞춘 전략적인 포지셔닝이었다고 설명하는 게 가장 적절할지 모르겠다.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은 많다. 그렇지만, 이것은 시티팝이나 뉴웨이브 등에서 소비자들이 과거의 여유로움이나 경쾌함을 느끼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레트로'이다. 이제는 50년이 되어가는 과거의 액션스타나, 20년 전의 보이그룹 스타일을 2020년의 무대 위로 다시금 불러내며 누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앨범의 마지막까지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이 요소들이 그저 트렌드가 불러낸 과거의 환영인 채로 있다가 사라지고 말 것인지, 혹은 그 목적과 실체를 가진 후에'네오함'이라고 명명되어 강한 흐름을 주도하게 될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Neo Zone] NCT 127의 다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