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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RO Sep 06. 2020

핫펠트, 더 이상 변론하지 않는.

[1719]의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공공연히 알려졌던 사건에 대한 응어리를 토해내며 시작한다. 유년 시절의 추억과 악몽, 불안과 배신, 분노와 자괴가 담긴 음악과 앨범인 만큼 쉬이 다가서는 것조차 망설여질 수도 있다. 발매 초기에 앨범의 해설집이나 다름없는 동명의 책 '1719'의 내용을 본인이 내용 누설을 말아달라고 당부했었던 만큼, 이 앨범과 핫펠트를 이해하기 위한 허들은 언뜻 높아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높은 허들만큼, 자신을 쉬이 내보이지도 설득하지도 않으려는 그의 태도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719]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나온 작업물이 아니다. 청소년기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목과 이해관계 한가운데 던져졌고, 무수한 불안을 경험한 한 개인이 쓴 회고이고, 또 다짐이다. 그렇기에 청자들은 이 앨범과 곡들 앞에서 스스로의 태도를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단순한 작업물이 아닌, 핫펠트 본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첫 트랙인 'Life Sucks'부터 핫펠트는 사람들이 궁금해했을, 혹은 사람들이 껄끄러워할 만한 이야기와 감정을 곧바로 퍼붓는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터이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사운드적으로 분노와 절규로만 가득한 곡은 아니다. 비교적 여유로운 리듬감과 그루비한 현악 세션 가운데서 핫펠트의 보걸은 마치 체념하듯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픽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후렴구에서는 목소리를 짜내듯 힘겹게 변모하기도 한다. 이미 'Ain't Nobody'에서 파워풀한 가창력을 보여준 바 있는 그이다. 힘과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메세지의 곡일 수 있었으나 "Life sucks for everybody"라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갈구한다.


1번 트랙에서 기묘하게 공존하는 분노와 관조, 체념과 의지의 이중적 공존은 이후의 트랙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2번 트랙 '피어싱'에서는 상대방을 생각만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반복하다가도 마지막에는 깊이 의지했었다는 고백을 털어놓는다. 더블 타이틀 곡 'Satellite'와 'Sweet sensation'에서는 고통 가운데서도 빛날 자신에 대한 희망, 혹은 고통 가운데서조차 빛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 동시에 존재한다. 고통과 분노를 있는 대로 터뜨리지도, 혹은 희망을 향해 강하게 달려 나가지도 않고 그 어딘가에 서 있는 이 앨범은 어떤 청자들에게는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핫펠트가 미디어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었던 강인하고 굳건한 이미지를 앨범에서 찾고자 한 이들에게 [1719]는 기대에 부합하는 앨범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핫펠트 본인이 “가장 어둡고 지독했던 3년 동안의 일들”이라고 표현한 만큼, 이 앨범에서 어떠한 결의나 평면적인 감정의 발산을 기대했다면 그건 틀린 기대이다. 편집자나 공동 작업자들의 수정 권유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표현을 고집한 핫펠트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2017년부터 2019년의, 혹은 더욱 그 이전의 그가 겪은 혼란스러운 현실과 감정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1719]는 쉬이 이해할 수 없고 일관되지 않으며 깊음과 얕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핫펠트가 그저 분노와 슬픔을 발산했다면 그것은 카타르시스라는 어떠한 결말을 전달하며 혼란을 정리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핫펠트는 자신의 본명이자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인 '예은'을 뒤로했고,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전달할 있었을 언어인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일상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품고 있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더럽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핫펠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단지 어떤 단 한순간의 강렬한 원색의 감정이나 메세지가 아니라, 이중적이고 혼란스럽고 의지와 체념이 반복되는 삶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이입하기 좋게 사실보다 과장하거나 축소한다면 [1719]라는 앨범 혹은 박예은이라는 개인이 겪은 2017년부터 2019년의 삶은 그저 또 하나의 박제된 순간이자 편집의 산물이 되어 버린다.


핫펠트의 주체적인 이미지와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본 어떤 청자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그가 '효과적인' 곡과 앨범을 보여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 기대와는 달리 [1719]는 분명히 그런 식으로 '효과적인' 앨범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티스트가 청자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듯, 청자에게도 아티스트가 힘겹게 내보인 무거운 작업물을 얄팍한 공감이나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고통과 혼란의 끝에 끝내 우리에게 돌아온 이에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변론하고 증명하라"고 누구도 쉬이 말할 순 없는 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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