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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로지 Jul 05. 2018

칸트 이야기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트랜젠덴탈

형이상학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칸트는 1786년 <자연 과학의 형이상학적 시원>을 내놓았다. 여기서 그는 물리학의 선험적인 원칙의 영역을 <순수 이성 비판>에서 논의되고 있는 범위 이상으로 학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새로운 관점이 그 머리말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 머리말은 형이상학이 어떠한 전제 아래에서 학문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주제로 삼고 있다. 칸트의 견해에 의하면,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은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의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실재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운명을 같이한다. 칸트는 형이상학은 논리학, 수학, 자연 과학과 비교해 볼 때 아직 학문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학문의 ‘확실한 진보’는 (a) 늘 다시금 새로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b) 학문의 개척자들 사이에 우리가 따라야하는 방법에 대한 일치점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는 논리학은 그 정초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이미 학문의 위치에 도달했으며, 심지어 모든 점에서 이미 완결되었다고 보고 있다. 칸트는 이 점에서는 그의 시대의 해석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칸트가 과거의 논리학의 성과에 대해서 하고 있는 설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성과란 이성은 단지 그 자신의 고유한 능력, 즉 올바른 사유의 기본 형식에 관계하며, 따라서 이성 외적인 대상 영역은 기껏해야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학문적 수학의 발견, 특히 그리스의 공리적인 기하학의 발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물리학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는데, 칸트는 물리학의 실험적 방법과 단순한 경험적 지식을 동등하게 다룰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물리학자는 다른 자연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일정한 가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며, 그의 실험은 의도적로 구성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전해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칸트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암시한다. “ 이성은 자연에 있어서도 단지 스스로 자신의 계획에 따라 지니고 있는 것만을 통찰한다.” 이러한 해석은 실제의 학문적 인식에 있어서 이성의 자발성에 주도적이며 독점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은 칸트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첨예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는 그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과 비교하고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으로서의 이행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서는 이러한 첨예화를 필요로 했다.


형이상학도 그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려고 한다면 이성이 갖고 있는 자발적인 능력의 궤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 당시까지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식은 대상에 따라서 방향 지워져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대상이 우리 인식에 따라서 방향 지워져야 한다는 전제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그럼 점에서 코페르니쿠스도 천체 운동을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 천체가 관찰자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가설을 천체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관찰자가 돌고 있다는 전제로 대체했다. 칸트는 이 관계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확실한 믿음인 천동설은 쿠페니쿠스 이후 무너진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나 혹성과 같은 항성의 가시적인 운동이 부분적으로는 가상적인 운동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동물 대의 기호를 통하여 나타나는 항성의 일주 운동이나 태양의 주기 운동은 단지 지구의 자전 운동과 천체계 위에서 태양을 도는 지구의 회전 운동의 반영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상 세계의 구성은 단지 우리의 인식 능력 안에 있는 대상 인식의 원리들의 모사일 뿐이다.


물론 쿠페르니쿠스는 모든 천체의 운동이 가상적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은 운동이 가상적 운동과 본래의 운동을 구분하여 정확하게 규정해야 할 임무를 갖고 있다. 칸트도 마찬가지로 경험적인 대상의 모든 속성이 우리 파악 형식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이상학자는 경험의 대상에 있어서 인간의 경험 대상이 되는 한에서만 속성 면에서 그 대상에 부가되는 것을 규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에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경험의 대상이기 때문에 비로소 갖게 되는 속성들의 총체 영역이 규정됨으로써,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도 실재와 대상에 관계하는 참된 언표를 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에 대한 소박한 인간 중심적인 관점을 해체하기 위한 진일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코프르니쿠스가 더 이상 주도적인 위치는 아니지만 인간을 실재 세계 속으로 옮겨 놓았다고 할 때, 칸트는 이제 그 인간을 세계로부터 완전히 끌어내어 단순한 현상 세계의 중심에다가 세워 놓은 것이다.




Transzendental

 

트란첸덴탈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초월적’이 된다. 어원상으로 볼 때, 독일어 낱말 ‘트란첸덴달(transzendental)’과 동근어 ‘트란첸덴트(transzendent)’는 각각 ‘초월하다’ 혹은 ‘넘어가(서)다’의 뜻을 갖는 라틴어 동사 ‘트란첸데레’에서 유래한 중세 라틴어 형용사 ‘트란첸델탈리스(transcendentalis)(초월한, 초월적)’와 분사 ‘트란첸덴스(transcendens)(초월하는, 초월해 있는)의 독일어 형태이다.


칸트는 ‘초월적(transzendental)’이 한낱 “(경험의) 한계를 넘어 간다”(KrV, A296=B353)라는 의미를 갖는 ‘초험적(transzendent)’과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KrV, A296=b352)라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칸트는 우선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방식을 이것이 선험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는 한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모든 인식을 초월적이라 부른다.”(KrV, B25) 이때 ‘초월적’은 “결코 우리가 인식한 사물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단지 인식능력과의 관계만을 의미”(Prol, A71=IV293)한다. 그러니까 초월적 인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대상 인식이 아니라,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정초적 이식, 곧 표상이나 개념 또는 원리를 말한다. 칸트는 이를 좀 더 일반화하여 『형이상학 서설』의 부록을 통해 초월철학에서 ‘초월적’의 충전한 의미를 밝힌다.


낱말 ‘초월적’은 ... 모든 경험을 넘어가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에 선행하면서도(즉 선험적이면서도), 오직 경험인식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에만 쓰이도록 정해져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초월적(transzendental)’은 통상 ‘모든 경험을 넘어가는 어떤 것’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러나 칸트에서는 ① ‘모든 경험에 앞서는’, 즉 ‘비경험적’이고 ‘선험적(a priori)’이면서, 동시에 ② 한낱 ‘경험을 넘어’가 버리는 것(초경험적)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요컨대(①+②), ‘선험적으로 경험인식을 규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간 의식이 초월성을 갖는다함은 인간 의식은 본래 선험적 요소 내지 기능을 갖는데, 이러한 요소가 한낱 주관적임을 뛰어넘어 경험인식의 정초적 기능, 곧 객관적 타당성 내지 경험적 실재성을 갖는다 함을 말한다.


의식 스스로가 산출해낸, 따라서 주관적이며 그런 한에서 선험적인 표상들인 공간·시간이라는 순수 직관과 상상력의 종합작용, 순수 지성개념인 범주들, 통각의 통일작용 등이 그 틀(형식)로서 기능함으로써 경험인식은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경험적 인식이 성립할 때에만, 그 인식 중에서 인식되는 것 즉 대상(존재자)이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나는 대상(존재자)를 칸트는 문자의 엄밀한 의미에서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내용을 칸트 초월철학의 핵심적 명제는, “경험 일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은 동시에 그 경험의 대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KrV, A158=B197)이라고 표현한다. 바로 이 ‘조건들’이 초월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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