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 마드리드 사람들
마드리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마드릴레뇨(남자) 또는 마드릴레냐(여자)라고 부른다. 꼭 마드리드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어린 시절부터 살았거나 이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도 포함하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진성 마드릴레뇨들 - 부모, 조부모, 고조부모 때부터 마드리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을 '가또(gato, 고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배타적이나 부정적인 의미의 별명은 아닌 듯하다. (나중에 내 가또 친구를 만나면 자세히 불어봐야겠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보다 유난히 내면이 강하고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 성향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내면이 여리며, 외로움을 잘 타고 겁도 많다. 친구들과 함께 재밌는 일을 도모하는 것을 좋아한다. 즉흥적인 여행이나 만남도 즐긴다.
마드리드에서 혼자 한달을 보내는 자유로움에 대해 있지만, 사실 이 도시에 정말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면 대뜸 마드리드에 살아보겠다고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가 마드리드를 꿈꾸기 전부터 마드리드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심어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의 마드리드 친구들이다.
1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내고 있는 로사는 내가 더블린에서 알게 된 마드리드 출신 친구다.
로사를 만난 건 2011년, 결혼 전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생으로 지낼 때였다. 반복적인 학원수업이 지겨워지고 학원에서 만나는 어린 친구들과의 짧고 가벼운 관계들에 회의감이 들 때쯤 로사가 우리 반에 왔다. 묻지는 않았지만 왠지 나와 비슷할 나이일 것 같았다. 문학, 영화, 연극을 좋아하는 취향도 비슷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학원 밖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공연장도 함께 가면서 우정을 쌓았다. 몇 개월 후 로사가 마드리드로 돌아가던 날, 참 많이 쓸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우리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언젠가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던 왓츠앱에서 그의 휴대폰 번호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로사가 휴대폰 번호를 바꾼 것 같은데 내 편에서는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너무나 속상했지만 잃어버린 친구라 체념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머리속에 전구가 켜졌다. 혹시 함께 다니던 어학원에 아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까? 바로 학교에 이메일을 보냈다. 바쁜 리셉션 직원이 나를 도와주려 할까? 최대한 간절한 느낌이 들도록 사연을 적었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로사는 아주 흔한 여자이름이라 같은 시기에 시스템에 뜨는 로사가 너무 많다고 했다. 성이나 나이를 아는지 물었지만 내가 아는 건 '로사'라는 이름과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친절한 리셉션 직원은 최대한 내 나이 근처로 범위를 좁혀 6명의 로사의 풀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메일로 보내왔다. '네 친구를 꼭 찾기 바란다. 굿 럭'이라는 격려 문구와 함께 말이다. 나는 6명의 로사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며칠 후 그 중 한 명에게 답메일을 받았다. 바로 내가 찾던 나의 로사였다! 자기도 내가 보고 싶었다고, 휴대폰을 잃어버려 모든 연락처를 잃어버렸다고, 이렇게 자기를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고, 우리는 매년 더블린에서 한번, 마드리드에서 한번 만난다. 로사가 있기 때문에 나의 마드리드는 늘 따뜻하다.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정란이는 더블린에서 알게 된 친한 동생이다. 더블린 어학원에서 알게 된 스페인 남자랑 연애를 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연락을 하는 것 같더니 어느날 스페인 마드리드로 살러 간다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 약속을 한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남편에게 딸린 다섯 살짜리 딸 아이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나라에서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남편의 어린 딸을 돌봐야 하는 생활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결국 남편과의 싸움이 잦아졌고, 둘은 1년 만에 결혼관계를 끝냈다. 하지만 이혼조정절차가 복잡한 스페인의 법 때문에 법적인 이혼에 이르기까지는 2년이 더 결렸다. 하지만 오히려 그 지연된 시간 덕분에 한국여행사에 취직해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이혼이 확정된 즈음 취업비자로 변경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후 새로운 스페인 남자친구도 사귀고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멋진 마드릴레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정란이를 만나러 매년 마드리드에 갔다. 첫 결혼생활을 하던 집에도 놀러가고, 남편과 헤어진 뒤에는 그애가 사는 쉐어하우스로 놀러갔다. 3년 전 한달살이를 할 때는 정란이가 친하게 지내는 한국친구들을 소개시켜 줘서 함께 한국음식도 먹으러 가고 그애가 매주 가는 독서모임에도 참여했다. 친한 한국인 동생이 마드리드가 있다는 사실은 가족이 있는 것 같은 심리적 가까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스페인 과외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 친해진 마드릴레냐 롤라가 있다. 더블린에서 세 명의 아이리시 아저씨와 함께 그룹과외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수업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후에도 둘이 따로 만남을 가지면서 친구가 되었다. 롤라는 아일랜드에 살고 있지만 가족을 만나러 종종 마드리드를 오간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와인 한잔이 고플 때, 혹은 사적인 대화가 고플 때 만나는 친구다. 물론 우리가 만날 때는 마드리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롤라는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마드리드의 동네 특성과 집값, 일자리 등 현실적인 정보들을 전해주곤 한다. 내가 아일랜드에 있을 때도 늘 마드리드와 연결되어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다.
마지막으로 정란이를 통해 알게된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릴 때 페루에서 이주해 지금까지 마드릴레냐로 살아온 요바나다. 정란이가 참 좋은 친구를 알게 되었다면 요바나 이야기를 종종 했기에 늘 궁금했는데 셋이 함께 만날 기회가 없었다. 3년 전 마드리드에 한 달 머물 때 정란이가 자기가 너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못낼 것 같으니 둘이라도 만나라고 해서, 요바나와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007미팅을 했다. 처음 그리고 딱 한번이었던 3년 전 그날. 우리는 신기하게도 바로 '친구'가 되었다. 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냈고 이번에 마드리드에 와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한국음식을 엄청 좋아한다길래 한국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다. 오래 알아온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했다. 바로 그주 주말에는 요바나의 차를 타고 요바나의 여동생이 사는 레온에 가서 하룻밤 자고 함께 레온을 여행했다. 그리고 오는 토요일 저녁, 함께 라티나극장에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할 때, 관계의 깊이가 꼭 알아온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이렇게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마드리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이 도시의 매력 때문은 아니었구나 싶다. 나의 사랑스러운 마드리레뇨스. 이들이 내가 마드리드에서 살아도 좋을 충분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