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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Mar 11. 2022

이곳에 있고 그곳에는 없는 것

마드리드에 살고 싶은 이유의 재발견

마드리드에 살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이 되묻는다. "왜 마드리드에요?"

그냥 스페인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면 받지 않았을 질문이다. 최근 급상승한 포르투갈의 인기로 살짝 밀리기는 했지만 스페인은 여행지로든 이민지로든 늘 한국인들의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나라였다. 특히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에서 자라 조심성 많은 한국인에게 뜨거운 태양, 열정과 자유가 넘치는 스페인 사람들의 이미지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가우디의 건축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 플라멩코와 지중해의 먹거리로 유명한 안달루시아 지방,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어지는 북부 스페인까지 큰 나라답게 지방색도 각각이다. 그런데 마드리드는 한 나라의 수도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살짝 관심이 덜 가는 도시다. '레알 마드리드'에 열광하는 축구팬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3년 전 마드리드에서 한달살이를 할 때도 마드리드에 살고 싶은 이유를 끄적인 적이 있다. 마드릴레뇨(마드리드 사람)들의 열린 시선, 스페인 여러 지방의 문화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짐, 문화예술적 불거리가 풍부하고 옛것과 모던함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도시라는 점이 내가 찾은 가장 큰 이유다.

그때 마드리드에 있는 볼거리들을 하나라도 놓칠까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프라도 박물관,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소로야 박물관, 마드리드레알 궁, 산 미구엘 마켓, 마요르 광장은 물론 내가 살던 동네의 숨은 문화예술공간 마따데로 등등 매일 오후 어학원이 끝나는 대로 둘러봤다. 취재하듯 다양한 정보를 알아보고 메모도 해두었다. 비싼 레스토랑은 못 갔지만 마드리드에 사는 친구 덕분에 텔레비전 여행 프로에 나왔던 마요르광장 옆 버섯구이도 맛봤다.  


그런데 요즘 내가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나 내가 느끼는 도시의 공기, 내 마음이 흐르는 방향은 지난 번과 좀 다르다. 뭐랄까, 마드리드에서 한 달이 아니라 한 1년은 산 느낌, 현지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페인 뉴스를 보며 아침을 먹고, 요가를 하고, 샤워를 하고 학원에 다녀와 점심을 먹고 글을 쓰고 슈퍼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하고, 밤에는 마호 맥주 캔에 감자칩을 먹으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 잠드는 평범한 일상의 그림을 그린다. 집밖을 나서며 들이마시는 공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입고 나간 겨울자켓을 벗고 테라스에 마냥 앉아 있고 싶었던 어제 오후도, 오늘처럼 구름이 많이 끼고 쌀쌀한 아침도 오래 전부터 나의 어제이고 오늘이었던 것만 같다.


물론 프라도 박물관도, 산 미구엘 마켓도 다시 가고 싶고 마요르 광장의 버섯구이도 다시 먹고 싶다. 하지만 내 삶이 마드리드에 있다면 꼭 지금 가지 않아도 괜찮다.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으니까. 요즘은 집에 가는 길에 맥주 한잔 하기 좋은 값싼 선술집, 매일 아침 신선한 재료로 십여 가지 종류의 비건 도넛을 구워내는 입소문난 도넛가게, 글루텐 프리의 자연발효빵을 주문해서 살 수 있는 베이커리 등등 요즘은 내가 사는 동네에 더 마음이 머문다. 아침마다 아파트 현관과 계단을 청소하시는 미화원 아주머니와 '브에노스 디아스' 하며 인사를 나누는 일상에 더 행복을 느낀다.


어쩌면 마드리드는 더블린에 비해 내가 나고 자란 서울과 비슷한 점이 많다. 대도시라 복잡하지만 그만큼 동네마다 특색이 다양하고, 나처럼 적당한 소음과 함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갈 만한 장소가 많다. 새로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혼자든 여럿이든 심심하지 않다. 스페인이라고 모든 지역이 늘 날씨가 좋은 건 아니다. 사실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나 바스크 지방은 춥고 비가 많이 오기로 악명이 높다. 마드리드도 날씨로 치면 살기에 이상적인 지역은 아니다. 봄은 비가 잦고 여름은 꽤 무더우며 눈은 드물지만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갈 정도로 추운데, 이런 날씨의 변화도 한국과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마드리드라는 도시에 마음이 갔던 이유 중 이런 익숙함과 편안함도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한국과 다른 문화, 다른 환경에서 느끼는 새로움과 자유로움, 동시에 외국살이의 외로움을 덜어줄 익숙함이 공존하는 도시, 그곳이 나에게는 마드리드였을지도.

한국은 어젯밤 발표된 20 대통령 선거 결과로 떠들썩하고,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응과 그곳에서 빠져나온 난민들을 수용하는 문제로 떠들썩하다. 들려오는 뉴스로 덩달아 수선스러워진 마음을 잠시 식히며  글을 쓴다.  바로 앞에 있는 동네 카페에서 리오하 와인 한잔. 저녁 6시반인데 아직 사위가 환하다. 일주일 사이 해가 많이 길어진 듯하다. 봄이 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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