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며 새로운 꿈을 꾸다
마드리드에 머물며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당연히 '스페인어 실력 늘리기'였다. 혼자 하는 공부야 아일랜드에서도 할 수 있지만, 하루종일 스페인어로만 보고 듣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페인에 있는 동안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음식이든 공연이든 공부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드리드에 오기 전 3년 전에 다녔던 같은 어학원에 미리 등록했다. 시내에 있어 교통도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스페인어 학원에 간다. 2시간이 조금 못 되는 수업시간이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한달살이의 중요한 포인트다. 여행의 즉흥성을 넘어 규칙적인 일상의 법칙을 창조함으로써 그곳에 '산다'는 감각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나는 좀 뒤처지는 학생이다. 나에게 언어공부의 아킬레스건인 듣기는 여전히 어렵고, 이곳에서 살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현지에서 자주 쓰는 단어와 언어표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수업시간에 꽤 '발랄'하다. 틀려도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잘 웃고 반친구들한테 말도 잘 시키고 농담도 많이 한다. 다른 애들은 다 이해하고 나만 이해 못한 설명을 다시 해달라고 선생님께 부탁하는 것도 창피하지 않다. 심지어 반애들보다 두 배나 많은 내 나이도 까맣게 잊는다. 다시 20대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중요한 사실은, 반친구들에 비해서는 조금 뒤처져도 예전의 나에 비해서는 훨씬 앞서간다는 것이다. 마드리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어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 일상적인 대화부터 어느 정도 구체적 주제가 있는 대화까지 몇 시간도 이어나갈 수 있다. 스페인 친구를 만나 스페인어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순간 뭉클한 적도 있다. 더블린에 있는 스페인문화원에서 스페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들인 시간과 돈에 비해 늘지 않는 실력을 비관해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 하지만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스페인어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이뤘다.
스페인어 해서 뭐 할 건데? 한국에 가면 엄마한테 늘 듣는 질문이다. 솔직히 그런 질문을 받으면 조금 흔들리기도 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가거나 스페인어 필요한 직업을 구할 것도 아니고, 다른 직장인들처럼 그냥 '취미'로 하기에는 나의 형편이 어울리지 않았으니 그런 질문을 받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마음 한편에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내 삶에 꼭 필요한 자산이 될 거라는 확신. 2년여 전부터 존과 나는 스페인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만약 내가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면 이 바람을 구체화시킬 자신감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하면서부터 늘 꿈꿔온 남미 여행 역시 '자유로운 장기여행'의 풍성함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한달살이를 하면서 스페인에서 사는 삶에 대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스페인어'가 있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깨달은 것. 그 나라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심적인 안정감과 소속감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렵지만 마드리드에서는 한국어나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나는 스페인어를 통해 열릴 또 다른 꿈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그 첫 번째 관문은 올 여름 계획하고 있는 멕시코 여행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변수이긴 하지만, 그곳에 닿을 하늘길이 법적으로 열려 있다면 일단 떠나려 한다. 만약 정말 그곳에 닿는다면, 나는 분명 막연했던 꿈의 실마리를 보게 될 것이다. 왜 그토록 그 대륙을 꿈꿨는지,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내 비루한 스페인어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깨닫게 될 것이다. 아, 가슴 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