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리더라는 것은 없다. 누구든 좋은 리더가 되어갈 뿐"
얼마 전 리더십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이라는 교육을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 다녀왔다. 올해 성과들을 인정받아 부사장님이 지명해 줘서 참석할 수 있었는데, 가기 전부터 워낙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기대를 잔뜩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내 교육은 많이 받아봤고 강연자로 교육을 해본 적도 있기 때문에 대충 어느 정도의 예상치가 있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은 이 기대치를 한참 뛰어넘었다.
오늘은 그 교육 과정 중 인상 깊었던 내용들과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리더십 원칙들을 몇 가지 적어볼까 한다. 실제 내가 받았던 교육은 롤플레이, 시뮬레이션, 팀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과정들이 일주일 안에 꽉꽉 채워져 있었다. 임원들이 세션마다 참석해 본인들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고 같이 롤플레이를 한 후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이번 교육은 단순히 팀장으로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닌 보다 더 큰 조직을 맡는 리더들의 리더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1.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당신을 여기에 있게 한 것은 당신을 거기에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직장인은 본인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하는 스타일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방식을 통하여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인정을 받는다면 본인만의 길을 만들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자리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답일 수 있겠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에는 옳지 않은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내가 정말 일을 잘하는 에이스라고 가정해 보자. 예시: 나는 누구보다 정확하고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완벽주의자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보고서가 필요하면 윗 상사들은 나만 찾는다. 이런 업무 방식을 인정받아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했고 높은 연봉을 받는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팀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똑똑한 친구들이었지만 내 기준에는 미치지 않는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처음에는 나도 가르쳐보려고 노력했지만 진전이 없는 것 같아 중요한 보고서의 경우 내가 직접 써주기도 한다 (예시 끝).
흔히 말하는 에이스들이 팀장이 되고 자주 마주하게 되는 문제점이다. 물론 팀원의 숫자가 많지 않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적용가능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이 방식은 내 체력과 시간을 거덜낼 것이기 때문에 팀 크기가 커질수록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개인 기여자 (Individual contributor)에서 팀원들을 통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피플 매니저 (People manager)가 된다면 기존 본인만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서야 한다. 마찬가지로 본인 팀원들만 담당하면 되는 매니저와 여러 레이어 (본인이 팀원이 다른 누군가를 담당하는 경우)를 매니징 하는 리더들의 리더는 다른 방식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모든 것들을 내 기준으로 맞추려고 하는 마이크로매니저가 될 수도 있고 본인의 팀원들이 리더가 되는 기회를 빼앗아갈 수도 있다. 또한 "내가 일할 때는..."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아쉬운 소리를 토로하며 자연스럽게 꼰대 클럽에 가입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기준에 맞추려 하면 안 된다. 되려 팀원들의 기준을 파악하고 이들의 기준을 스스로 올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2. Empowerment is about delivering with unknown.
여기서 Empowerment란 파워를 준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회사라는 공간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리더가 팀원들에게 업무에 관한 결정권과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리더에게는 많은 역할이 주어진다. 본인 부서가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정립하고, 그 비전에 다다르기 위하여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며, 그 목표를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팀원들을 관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리더는 또 다른 리더를 성장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어려서부터 티브이 드라마를 보면 능력 있는 후배에게 본인 자리를 위협받는 캐릭터들을 봐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괜찮은 것인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리더들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리더를 양성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오히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똑똑한 팀원을 얻는 것만큼 운 좋은 일은 없다. 만약 우리 팀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경험이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들어온다면 우리 팀 자체가 데이터를 관리하고 활용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평소에 관리하는 Key Performance Indicator (KPI)에 잦은 변화가 있을 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경험이 있는 친구는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 배우고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 있는 팀원이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 업무를 조금씩 넘기며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누군가는 "팀원들이 내 모든 업무를 넘기면 나는 잉여자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임원진이 바라보는 당신의 이미지는 오히려 팀이 자동으로 운영되도록 구축해 놓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 그리고 그 신뢰가 쌓이다 보면 현재 담당하는 영역보다 더 넓은 분야를 담당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사람의 경우 부서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관여하려고 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을 것이다. 윗사람의 질문에 내가 답을 하지 못하고 팀원이 대신 답변한다면 내가 능력 없는 리더로 보일까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리더들의 리더가 되면 나는 모든 디테일을 알 수 없는 정도의 업무 범위를 맡게 된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 한 부분을 깊게 파고들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하지만, 부서에서 이뤄지는 모든 디테일을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팀원들을 리더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때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있더라도 팀원들을 믿고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얼마 전 연말보고를 했다. 회의 중 부사장님은 한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했고, 그 부분을 담당하는 팀원에게 네가 마음껏 답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약 10분 동안 그 친구는 부사장의 질문을 침착하게 답변했고 부사장 역시 꽤나 만족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 팀원의 경우 올해 가장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던 친구였는데 열심히 일한 만큼 마무리도 잘한 것 같아서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연말보고가 끝났고 그 친구는 바로 피드백을 받고 싶다고 했다. 대화를 해보니 이 친구는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였다 (긍정적으로). 잘한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해줬고 조금 과한 내용을 말한 부분에 있어서는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줬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려고 하니 그 팀원은 나에게 대신 답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고마워할 건 나일 것 같은데. 나는 그 질문에 너처럼 자세히 답하지 못했을 거야"라며 답변해 줬다.
3. Ask a question and sit back.
본인의 팀원들을 좋은 리더로 성장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 팀에 들어온 지 어느덧 8개월 정도 된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가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을 하였기에 프로젝트 중 중요한 부분을 조금씩 맡기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친구의 습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여러 번 나를 찾아와 본인이 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업데이트를 해줬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모든 디테일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몇 번이나 "이 부분은 네가 주인이니 모든 내용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거나 문제에 부딪히면 나를 찾아와 줘. 혹시라도 내가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직접 찾아갈게"라고 설명해 줬다. 그러자 그는 찾아오는 빈도를 줄였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을 나에게 찾아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을 가서 임원들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내용이 질문을 하라는 것이었다. 방향을 알려주는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때론 질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벌써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예전 같았다면 어려운 부분은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라며 간단한 해결책을 내줬지만, 이제는 "네 생각은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먼저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처럼 질문을 하기 시작하자 확실한 효과가 조금씩 보였다. 먼저 내가 질문을 시작하자 팀원은 본인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며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의 생각에서 내 결정보다 더 좋은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팀원이 스스로 좋은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와 결정을 내려달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 직접 결정을 내린 다음 매주마다 만나는 1:1 회의에서 나에게 간략하게 업데이트를 해줬다.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과다. 그리고 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how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만의 how를 찾을 수 있는 자율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기다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리더가 직접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기다릴 수 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문하는 것을 습관화하기 시작한다면 팀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피드백을 줌으로써 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리더로 성장시킬 수 있다.
우리 팀 전무에게 레이 달리오의 Principles이라는 책을 추천받은 적 있었다. 레이 달리오가 설명하는 원칙들을 읽으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본인만의 원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원칙들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교육을 통해서 나만의 리더십 원칙을 하나씩 정립하기 시작했다. 오늘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멋진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만간 2부를 작성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