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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마존 팀장이 자주 하는 말 (2)

"You tell me"

by 김태강

지난주에 바르셀로나로 출장을 다녀왔다. 아마존에서는 1년에 두 번쯤 팀장들과 임원이 모여 유럽 각국에 흩어져 있는 팀원들을 평가하는 시기를 가진다. 각자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성장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무척이나 중요한 자리다. 특히 나는 평가와 관련된 출장을 다녀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다른 팀장들은 직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어떠한 성격이나 특성을 보여준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되는지도 알 수 있다는게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과정들 중에는 때론 "조금 편견"이 있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고, "생각보다 냉정하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성적으로 평가를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이 모든 과정이 또 하나의 배움으로 다가온다.


이번 출장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최근 바르셀로나에 창설된 팀이 있어서, 평가 일정에 맞춰 그곳 팀원들과도 시간을 보냈다. 그 곳의 팀원들은 우리에게 바르셀로나 워킹 투어를 해주기도 했고 영어권에서 흔히 말하는 Fireside Chat을 열어 직원들이 궁금한 것을 답해주는 시간도 가졌다. 그때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생각해보니 마침 브런치에서 비슷한 내용을 적고 있었던 터라 정말 반가운 질문이었다. 지난번 글에서는 Don’t Drop Any Penny라는 메시지를 이야기했는데, 이번에 떠오른 두 번째는 바로 이것이다. “You tell me.”


호텔방에서 보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단순 보고를 넘어, 방향을 말하라


“You tell me”는 말 그대로 “너가 말해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대답을 해라’라는 요구는 아니다. 내가 팀원들에게 보고를 받을 때 원하는 건 데이터만 던져주는 보고가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한 생각과 제안이다. 예를 들어, 흔히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달 활성 사용자 수는 10% 줄었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할까요?”


이건 나쁜 보고는 아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전달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팀장은 데이터를 다시 해석해야 하고, 추가 질문을 해야 하고, 결국 또다시 시간을 들여 결정을 끌어내야 한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방식이다.


“이번 달 활성 사용자 수가 10% 줄었습니다. 제가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신규 유입은 안정적이지만 기존 사용자 이탈률이 크게 증가한 게 원인입니다. 옵션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옵션 A: 리텐션 캠페인 강화 → 기존 사용자에게 쿠폰, 리마인더, 추천 상품을 강화. 단기적으로 효과는 빠르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

옵션 B: 온보딩 UX 개선 → 신규 사용자가 초기에 이탈하지 않도록 첫 7일 경험을 전면 개편. 비용은 적당하고 장기적 효과 크지만, 개발 리소스가 많이 든다.

옵션 C: 제품 카테고리 확장 → 최근 경쟁사들이 강화한 영역(예: 생필품)에 투자해 사용자 접점을 늘린다. 가장 전략적이지만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제 개인적인 추천은 옵션 B입니다. 이유는 지금 감소 원인이 ‘기존 사용자 이탈’이라는 점인데, 온보딩 개선이 중장기적으로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발 리소스는 현재 분기 계획과 일부 맞춰져 있어서 실행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된 보고는 팀장에게 단순히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해석 + 가능한 선택지 + 추천 방향까지 주는 것이다. 그러면 팀장은 “네 분석이 맞다, 옵션 B로 가자”라고 빠르게 결정할 수도 있고, 혹은 “좋은 제안인데 우리가 모르는 규제 이슈 때문에 B는 어렵다. 대신 A와 B를 조합해보자”라는 보완적 피드백을 줄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팀원들에게 자주 하는 조언은 세 가지다.

데이터는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단순히 숫자나 사실을 모아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의미를 뽑아내는 거다.

장단점을 균형 있게 나열하라. 방안을 정리할 때는 반드시 장점과 단점을 함께 말해야 한다. 리스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게 오히려 신뢰를 만든다.

레코멘데이션을 붙여라. “그래서 제 생각에는 두 번째 방안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이유는 실행은 다소 늦지만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인의 의견을 붙여야 한다. 최종 결정은 리더가 내리지만, 실무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결정은 더 단단해진다.


왜 중요한가


회사의 많은 의사결정은 실무자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리더는 큰 그림을 보지만, 세부 맥락과 현장의 감각은 실무자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 전달하는 팀원과,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해 방향성까지 제안하는 팀원의 차이는 평가 시즌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정말 많은 직원들이 데이터를 가져오는 일은 잘하지만 그 다음 extra step을 내딛어 본인의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덕트 중에는 B2B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절대 빠질 수 없는 제품이 있다. 특정 고객층은 이 제품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어야 아마존에서 거래를 이어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사업 전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세일즈 직군의 동료들은 거의 매일 같이 나에게 요청을 해온다. 자신이 담당하는 고객이나 셀러가 반드시 이 프로덕트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우선순위에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요청은 한 가지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 고객에게 필요하다”, “내 셀러가 요구한다”는 식의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만으로는 왜 내가 그 요청을 다른 수많은 요구보다 먼저 고려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결국 우선순위 논의는 늘 똑같은 자리에서 맴돌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부터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동료가 미팅을 청했다. 그가 가져온 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준비된 자료였다. 엑셀 파일을 열자 각 제품군별 매출, 주요 지표, 시장 영향력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내가 담당하는 고객을 위한 요청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네가 맡은 비즈니스 전체에 도움이 되는 리스트야. 매출 기여도와 핵심 메트릭을 기준으로 중요도를 다시 계산해봤어. 그래서 이 셀러들을 우선순위에 포함하면 내 고객에게도 유익하지만, 동시에 전체 P&L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같은 ‘요청’이라도 이렇게 데이터를 근거로, 사업 전체 관점에서, 그리고 상호 이익이 드러나도록 제시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단순히 “내 고객이 원한다”는 말은 협상으로 들리지만, “이 데이터가 말해주고, 그래서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제안이자 전략이 된다. “You tell me”라는 말은 결국 단순 보고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메시지다. 데이터를 가져오고, 해석하고, 방향까지 제안하는 경험은 단순 보고보다 훨씬 많은 학습과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팀원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훈련을 반복하게 되고, 회사는 더 단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치며


바르셀로나에서 받았던 질문 덕분에,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하는 이 말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리더에게 보고할 때 단순히 숫자나 요구사항만 들이밀지 말고, 데이타를 바탕으로 본인의 스토리를 함께 전하라. 그리고 장단점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네가 생각하는 길을 제안하라.


결국 리더가 듣고 싶은 건 데이터가 아니라 네 생각이다. 그게 바로 “You tell me”의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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