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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Jan 18. 2022

1화. 그 친구가 전문가야 <번뜩이 리더>

- 존경받는 리더의 흔한 실수들 

갑자기 CEO로부터 전갈이 왔다. 현재 추진 중인 제주 부티크 호텔 프로젝트의 TFT 담당 임원을 당장 교체하라는 지시였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HR 사무실 내부에서는 오만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실무진들은 발 빠르게 발령 안 작성을 해서 나에게 보고하였다. 지금까지 TFT를 이끌었던 H 임원은 경기도 광주의 한 사업장으로 전보 발령을 내고, 울산에서 재건축 사업에 투입되었던 K 임원이 CEO의 명령에 따라 그 자리를 채우는 품의 보고서였다. 일단 지시대로 드래프트를 작성했지만, HR 실장인 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H 임원은 늘 계획보다 공정이 밀리긴 했지만,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면서 끈기 있게 TFT를 성공리에 이끌어왔던 덕장 스타일의 리더였던 반면, K 임원은 직원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대로만 일을 진척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CEO에게 보고하면서 급작스런 발령 지시의 배경에 대해 물어봤지만 별다른 정보를 들을 수가 없었다. CEO는 그저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신사업이잖아… 예정된 공정대로 진행이 잘 안 되었고, 그때 갑자기 K 임원이 떠오르더라구. 지난번 프로젝트 때 보여주었던 추진력 있잖아. 정말 땡크 같았거든.”  득의만면하게 미소를 짓던 CEO는 자신의 번뜩이는 직감이 이번 TFT에도 맞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품의서에 멋지게 사인을 하였다. 나는 다시 한번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이번 TFT에 독단적인 리더십 스타일의 K 임원이 과연 적합한 인물인가 의문을 가슴에 품은 채 CEO실에서 우울하게 나왔다.  




 우리는 곤란한 상황이나 어려운 판단을 요구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면 느닷없이 영감이나 대안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뒷받침되거나 논리적이고 이성적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누구는 이것을 직감이라고 이야기하고, 누구는 직관, 또 아무개는 신의 계시라고까지 말하는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예를 한 번 더 들어보자. 수빈이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익히 알다시피 사회학도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와 왜 그렇게 사는지를 현재의 사회 상황과 연관 지어서 연구하는 학생들을 말하며, 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을 설명하는 학문을 연구한다. 그래서인지 수빈이는 학교 시절에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도시 빈민 투쟁과 노동 운동에 대하여 깊이 심취했었다. 그녀는 IQ가 150이 넘는 수재였으며, 특히 언어 관련 능력이 뛰어나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당당하고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으로 학교 내에서도 유명하였다. 


 자, 수빈이가 대학 졸업 후 얻게 된 직업을 맞춰보자.  ① 
페미니스트,  ② 은행원,  ③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 여러분들의 선택은?


 린다의 문제(Linda Problem)로 알려진 이 문제의 실제 예측 결과는  ① 페미니스트,  ③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 ② 은행원의 순이었다.(응답자의 85% 수준)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응답자들의 예측 결과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수빈이의 ' ③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일 확률은 '페미니스트'이거나 '은행원'일 확률의 교집합에 속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이나 보다 더 클 수가 없다. 이러한 현상을 ‘집합 오류(conjunction fallacy)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나라 직업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직업이 있는가? 아마 페미니즘을 공식적으로 표방한 사회운동가 정도일 터인데, 기껏해야 5천만 인구의 0.1%인 5천 명도 안될 것이다. 그에 비하여 국민, 신한 등 5대 은행에 재직하는 은행원은 늘 5만 명이 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은 카카오 뱅크 등 핀테크의 영향으로 은행원 수가 많이 줄고 있다) 이를 양적 확률로 추론하게 되면 은행원이 페미니스트의 10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빈이의 성향과 교내 활동에 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일 먼저  ①번 페미니스트를 머리에 떠올린다. 이렇게 어떤 집합에 속하는 임의의 한 특징이 그 집합의 특성을 대표한다고 간주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방법을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이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대표성 휴리스틱은 우리의 뇌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판단 기제이다. 생각해보라. 모든 의사결정에 대하여 수집된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가치를 매기고 비교 분석한다면 얼마만큼의 뇌 활동이 필요할 것인가? 아마도 엄청난 과부하로 인하여 조기 번아웃(burn-Out)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효율적 뇌 활용에 대하여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하였다. 1984년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수잔 피스크 교수와 UCLA의 셸리 테일러 교수가 이야기한 것으로 사람들은 최대한 간단하고 뇌의 에너지를 적게 쓰는 과정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한다는 이론이다. 


 대표성 휴리스틱 현상도 이러한 인지적 구두쇠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간의 신체적 에너지에 대한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대표성 휴리스틱은 긍정적인 기제일 수 있다. 다만, 판단하여야 할 이슈나 문제가 조직과 사회에 영향이 큰 것이라면 주의하여야 한다.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여 형성된 대표성 휴리스틱은 한 사람의 관점과 패턴일 뿐인데, 조직과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만의 대표성 휴리스틱으로 집단의 문제를 해결할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 내 번뜩이 리더들은 자신만의 대표성 휴리스틱에 기대어 의사결정을 하는데 특히 직책이 올라갈수록 이러한 현상이 많이 목격된다. 특히 번뜩이 리더가 권위형 리더십과 결합하게 되는 경우 부하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순간순간 지시사항이 변경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하들의 의견은 거의 청취하지 않고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리더도 한계가 있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말이다. 


  스스로 직관형 의사결정자라고 생각되는 리더들은 늘 팔로워에게 자신의 의견이 타당한지 물어보고 검증토록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리더들은 이러한 것에 익숙지 않을뿐더러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팔로워들은 자기들에게 의견을 평가해달라는 리더에게 더 신뢰를 표시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정하며 의사결정 그룹에 참여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이며, 팔로워들도 그 사안에 대해 한 발 들여놓은 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 번뜩이 리더들이여, 그대들의 직관적 영감과 아이디어는 정말 훌륭하다. 하지만 팔로워들은 그대들보다 더 번뜩이는 영감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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