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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Jan 20. 2022

2화. 이 길이 맞다니까 <우기기 리더>

존경받는 리더의 흔한 실수 <2화>

 폭포수 소리가 멀리 들렸다. P 부장은 다소 주춤거리는 J 부사장을 보좌하며 조심스레 발을 뗐다. 폭포로 가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작은 등성이를 하나 돌아 넘어 너구내 협곡 길로 가는 것과, 험하지만 돌산을 바로 넘어가는 지름길이 그것이다. 


 영하 30도로 꽁꽁 언 오늘 같은 날씨에는 아무래도 돌아가는 너구내 길이 좋을 듯하였다. 게다가 눈까지 푸슬푸슬 내리고 있지 않은가. P 부장은 돌산 지름길이 다소 위험할 수 있으니 오늘은 돌아가자고 J 부사장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한참 생각하던 J 부사장은 중요한 저녁 약속이 프랜턴 호텔에서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냥 돌산을 넘어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돌산 지름길은 지난 수십 년간 다녀봤기 때문에 눈감고도 갈 수 있다고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P 부장은 폭포 길이 초행길이다. P 부장은 잠시 자신의 등산화를 바라보았다. 겨울 산행용 아이젠도 아닌, 수십 년간 신어온 낡은 등산화가 눈에 들어온다. 등산화 상태가 안 좋다고 J 부사장에게 이야기할까 망설이다가 P 부장은 그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J 부사장은 한 번 결정하면 그대로 이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돌산 어귀를 기어오르던 P 부장의 머릿속에 돌연 J 부사장이 의사결정을 내린 최근 합병 건이 떠올랐다. 유명한 글로벌 보안업체의 CEO였던 J 부사장이, 보안이라는 이름은 같았지만, 업태 자체가 다른 현재의 IT 보안업체로 스카우트된 것은 작년 초였다. 


 기존의 회사 직원들이 격투기나 경호학을 전공한 물리적 파워를 지닌 보안 요원들이었다고 한다면, 지금 회사의 직원들은 AI 알고리즘으로 기업이나 국가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소프트 파워 역량의 보안 요원들이어서 당연히 조직 분위기나 문화가 달랐다. 


 하지만, J 부사장은 회의 때마다 자신의 옛 성공 기억을 일일이 소환해가며, 현 회사의 영업 마케팅이나 HR의 주요 정책을 비판하고 자기 의견을 주도적으로 펼쳐나갔다. IT 보안업만의 특성이 있다고 주변 스태프들이 용기를 내어 의견을 올리면, 자신은 1조짜리 회사를 운영했던 사람이라고 하면서 우기며 묵살하곤 해서, 최근에는 임직원들도 더 이상의 의견을 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모회사로부터 100억짜리 M&A 검토 건이 내려왔는데, J 부사장은 제대로 실사도 하지 않은 채 특유의 직감과 확신을 바탕으로 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회사에서 2천억짜리 M&A를 성공리에 체결했다는 경험담을 당당하게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전문가로서 IT 업계를 잘 아는 P 부장은 금번 합병 건이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IT 업은 개발자 역량이 매우 중요한데 M&A 대상 회사는 핵심 개발자들이 점차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 매물 가격 자체가 매우 높았다. 자칫 잘못하면 회사의 단기자금 유동성의 문제까지 거론될 수도 있어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임에도, J 부사장의 우기기 지시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였다. 


 자신을 포함하여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는 임직원들의 모습이 넷플릭스 썸네일 영상처럼 떠올라, 추적추적 겨울비까지 내리는 돌산을 기어오르는 P 부장을 계속 괴롭혔다.  


 P 부장은 심신이 피곤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비탈진 나무에 잠시 몸을 기대었다. 그때, 갑자기 우르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 한 무더기가 돌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앗 하는 순간, 큰 돌멩이 하나가 J 부사장과 부딪힌 뒤 P 부장 쪽을 덮쳤다. 


 아… 이래서 너구내 협곡 길로 가자니까… 쓰러진 P 부장은 힘없이 중얼거리며 이미 의식을 잃은 J 부사장 쪽을 바라보았다.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미국 웨스턴 미시간대 교수인 피터 노스 하우스는 신뢰, 사교성, 지능, 정직함과 더불어 결단력과 자신감을 꼽았다. 여기서 결단력은 일을 완성하겠다는 욕망이며 장애에 직면하여도 굽힐 줄 모르고 도전하는 능력을 말한다. 


 저명한 리더십 학자인 제임스 쿠제스와 배리 포스너 역시 추진력을 효과적인 리더십의 특성으로 꼽았다. 이러한 결단력, 자신감, 추진력, 추동력 등은 리더의 주도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리더십과 관련된 덕목들 중 가장 공격적이고 단단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라. 검푸른 밤하늘 아래 한 무리의 사막 유목민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거침없이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한 사람을…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총총한 눈매와 당당한 그의 행보는 나머지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것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렇듯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리더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아니, 길이 없어도 길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현명한 리더는 무작정 뚜벅뚜벅 나아가지 않는다.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나아간다. 근거가 없으면 근거를 만든다. 보아라, 북극성이 저기에 빛나지 않는가…라든지, 들어보라, 신의 계시가 어젯밤에 있었다… 하거나, 보라, 저 신성한 설산에 반짝이는 그 무엇을…등등. 


 그리고 무리에게 그 근거를 제시하며 토의하고 설득해낸다. 결정적인 반증이 제시되어 기존의 근거가 깨지면, 다시 다른 근거들을 바탕으로 합의해서 최종 결단을 내린다. 이것이 현명한 리더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그렇지 못한 리더들이 있다. 소위 우기기 리더이다. 상황 문의 J 부사장은 전형적인 우기기 리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보도록 하자.


 그룹 감사실장 H 상무는 지난 정기 감사 시즌에 마케팅팀의 비리를 적발했다. 요지는 회사의 허락 없이 마케팅 팀장이 외부 특강을 하였다는 것. 또한, 활용된 특강 자료가 회사에서 이미 교육으로 진행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하여 회사 비밀유지 조항도 위배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마케팅 팀장이 실제 특강 자료로 활용한 것은 개인적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연구하였던 기업용 가상화폐 활용에 관한 것으로 사실상 감사실장이 판단하기 곤란한, 꽤 전문 분야의 새로운 내용이었다. 적극적 소명에도 불구하고, 감사실장은 사내 교육과정에서 제목이 똑같은 것이 있다고 우기면서 CEO에게 보고하며 징계를 의뢰하였다. 


 위 사례에서 H 상무의 우기기 심리에는 아마도 두 가지 기제가 숨어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확신이고 다른 하나는 우월감이다. 아마도 H 상무는 자기가 과거에 수강했던 교육과정의 내용 중 비슷한 단어들을 외부 특강 자료에서 발견하면서 나름 확신하였을 것이고, 그룹의 칼잡이 역할인 감사실장으로서 실무 조직장에 대한 우월감이 합쳐지면서 소명을 묵살하고 그냥 우기고 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추론, 그로 인한 미래의 기대가 한데 어우러지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만든다. 게다가 다른 근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굳어지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된다.


 다시 말해서, 자기 확증 편향이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실과 근거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편향을 말한다. 이것을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16세기의 경험론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한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어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라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추론과 미래의 기대는 정상적인 뇌 활동 프로세스이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 즉 기억이라는 것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다. 최근 학자들에 따르면, 잘못된 기억(false memory)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인 중 하나는 인지 부하(cognitive load)인데, 쉽게 말하자면 기억에 몰입할 때 헷갈리게 만드는 외부 자극이 있게 되면 기억의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기억, 학습할 당시 자극이나 사건이 뇌 속에 직접 입력되기보다는 과거의 지식이나 스키마에 따라 기록되며, 다시 기억을 꺼낼 때(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출이라 한다) 개인의 추론까지 개입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자. 옛 TV 오락 프로그램 중에 ‘말 전달하기 게임’이 있었다. 2~3줄로 구성된 문장을 한 명에게 제시하면 그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말로 전달하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었다. 필자는 이것을 커뮤니케이션 교육 과정에 도입했었는데, 결과는 가관이었다. 


 즉, ‘우주공간에서는 우주인의 소변도 재활용되어 식수로 사용한다’는 문장을 제시했더니, 참가자 5명 중 맨 마지막 전달자 왈, “선장의 괄약근이 끊어졌다”로 엉뚱한 문장으로 발표되는 바람에 교육장이 웃음의 도가니로 변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렇듯 간단한 기억 실험에서조차 오 기억이 난무하는데 수개월 또는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기억의 편린이 과연 얼마만큼 정확할까? 그래서 ‘기억보다는 기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기록은 증거(evidence)로서 사실(fact)을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학습하고 기억해 온 모든 것들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되는 것처럼 뇌 속에 얌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을 구성할 당시에 부정적 정서로 떡칠이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리더의 확신은 오히려 팔로워들의 검증을 꼭 필요로 하는 것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조직 내외의 전쟁과 전투를 경험한 리더의 뇌 속에는 생산성을 위하여 두 가지의 허들을 갖고 있다. 첫 번째가 ‘납기’이고, 두 번째가 ‘질(Quality’이다. 특히 이 중‘납기’는 리더의 성과지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리더는 프로젝트 납기 준수를 위해서 늘 촉각을 다투게 된다. 그래서 웬만한 사안들은 빠르게 결정하기 위하여 자신의 과거 성공에 기초한 경험의 패턴들을 참고하게 되고, 이 패턴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1화에서 제시된 대표성 휴리스틱인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표성 휴리스틱이 리더의 확증 편향을 끄집어내는 마중물일 수도 있다. 툭하고 생각난 것(대표성 휴리스틱)에 덕지덕지 자기만의 근거와 정보가 덧붙여지면 자기 확증 편향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직관형 리더의 경우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의사결정 장면에서 이러한 대표성 휴리스틱이 툭하고 떠오르면 ‘즉각 지시’보다는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도록 제언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이 확실하게 맞는 것인지 성찰해 보도록 하자. 또, 팔로워들에게도 검증을 부탁해보자.



조직내 우기기 리더들이여,  
그대들의 기억은 위대한 업적으로 철철 넘친다. 하지만 팔로워들의 기억도 같을까?  ‘기억’보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하라! 
또한, 자신이 맞다고 확신하는 것일수록 의심하라! 맹목적 확신은 편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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