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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성 Sep 10. 2020

(4) 테마형 로컬, 종로 : 익선동을 중심으로

Theme Park Locality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길, 돈화문로 인근 익선동 도시한옥지역은 소비의 자극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초현실적인 테마파크 같다. 여기는 다양하게 해석된 공간들과 창의적 컨텐츠가 손짓한다  (한재성 제공)

도시재생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는 요즘이다. 단어 자체만 본다면, 못쓰는 것을 가공해서 다시 쓴다는 ‘재생’이 ‘도시’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뉘앙스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의미가 정확히 인지되는 단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단어는 도시재개발의 반대쪽에 있는 개념처럼 쓰이는 듯 하다. ‘재생’은 현재의 보존가치를 인정하다는 점에서 섬세하고 따스한 느낌인데, ‘재개발’은 새로운 환경을 계산적이고 냉철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 차갑게 느껴지곤 한다. 이런 감각의 차이는 방법론과 결과물까지 이어진다.

근데, 간혹 도시재생 이면에 꿈틀대는 자본의 치밀함을 마주하면 재개발보다 더 섬뜩하곤 하다. 뒤통수 맞는 것 처럼 말이다.

오늘은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잘 작동되고 있는 종로구 익선동을 걸어볼까 한다. 운현궁과 종묘 사이에 있는 익선동 말이다. 여기 익선동은 100년전 쯤 서울(당시, 경성)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주택이 부족하던 때 소형택지(60평이 이내)에 전기, 수도가 공급되는 도시 한옥을 다닥다닥 ‘개발’한 곳이다.

그렇게 ‘개발’된 부촌 익선동이 현대사의 시간을 넘어 팔순쯤 된 때(2004년)에 주상복합을 위한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된다. 하지만 도시정비구역이 해지된 2015년까지 세월의 흔적만 깊어졌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10년의 멈춘 세월이 지금의 익선동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 이전 90여년간 신도시, 부촌의 자부심이 지금의 익선동을 만들었을까?

익선동을 걷다보면 뉴트로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도시한옥이라는 공간 자산의 구조를 보존하며(혹은 재생하며) 프랑스 가정식, 경양식, 카페 등 국내외 현대적인 컨텐츠들이 익선동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익선동을 얘기하며 빠뜨릴 수 없는 스타트업은 <익선다다> 아닐까? 재개발지구가 해지된 익선동에 실험적 컨텐츠들을 들고 들어온 이가 <익선다다>다. 스테이, 식당, 카페, 편집샾 등 다양한 컨텐츠들을 도시한옥구조에 스며들리며 핫 플레이스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길, 돈화문로 인근 익선동 도시한옥지역은 소비의 자극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초현실적인 테마파크 같다. 여기는 다양하게 해석된 공간들과 창의적 컨텐츠가 손짓한다  (한재성 제공)

이들의 노력과 결과를 필자가 감히 평가할 수 없지만, 아쉬운 결말-젠트리피케이션의 한계는 반면교사 삼기 위해 로컬과 함께 짚고 넘어가려 한다. 혹시라도 필자의 이런 지점을 이미 감각적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누군가가 있길 바랄 뿐이다.

2016년 <익선다다>는 29억에 건물을 매입하며 처음으로 익선동에 행위를 시작했는데, 2018년 이 건물을 42억에 판다. 2018년 4.1억에 매입한 본사도 2년뒤 6.8억에 매각한다. 팔고, 떠난 후 익선동 주체는 <익선다다>에서 <네오벨류>로 바뀐다.

주체가 바뀌고,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재생에서 투자로 바뀐다면 여기의 로컬리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결말은 재생과 재개발의 기준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하다. <익선다다>가 떠나면서 만든 결과는 도시재생보단 재생도시로 재개발한 것이라 생각될 뿐이다.

내가 3년전 걸었던 익선동의 감각과 낭만이 모두 없어진 건 아닐까? 단지 껍데기만 비슷하게 남아 추억을 그리워하는, 재개발된 곳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고향 없는 이들처럼 말이다.

요즘 일련의 기사들을 보면 로컬크리에이터는 도시재생의 주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 하다.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로컬크리에이터도 도시재생도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지역관광을 통해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이 도시재생이고, 그것이 로컬크리에이터의 일일까 싶다.

골목길, 건축자산, 크리에이터, 로컬컨텐츠 다 좋다. 낭만적이고 매일 즐겨도 사실 지겹지 않다. 로컬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의 ‘터’, 부동자산인 토지, 건축자산을 상품처럼 잘 가꿔서 높은 값에 팔려고 하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도 같은 현상처럼 들어나는 것이 너무많이 아주많이 안타깝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로컬크리에이터들이 허름한 건물을 선택하는 이유가 숨겨진 공간자산을 발견해서 일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공간에 구애 받지 않는 낭만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곳을 가꾸고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땀과 시간, 함께한 이들과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기에 로컬이 성립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값에 내 공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내 추억과 땀의 감각을 ‘나누는’ 장소가 로컬 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본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이겨낸 진짜 로컬크리에이터라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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