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시간(인트로)
집사라면 다 알지 않을까? 야옹이들을 위해 집사의 마음을 잔뜩 담아 마련한 아이템 따위는 언제든지 외면당하거나 전혀 다른 쓰임으로 사용된다는 사실 말이다. 야옹이들이 대구로 전입신고를 하면서 부랴부랴 마련하게 된 아이템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원형 스크래처였다. 두 야옹이 모두 발톱을 잘 갈아주기를 바랐지만 탐이는 원형 스크래처를 무서워해 아예 들어가지를 않았고, 호시는 안에서 그냥 잠이 들고 말았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본래 용도로 사용되긴 했지만...
야옹이와 함께하는 삶에는 집사의 의도가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도 실망할 겨를이 없다. 호시가 처음 스크래처 안에 들어가서 모로 드러누웠던 순간. '처음'을 기록하고 무척 좋았던 장면. '(연작) 고양이의 시간'의 탄생이다.
평소 '문명과 문명의 충돌', '문화와 문화의 갈등', '시간(선)과 시간(선)의 겹침'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더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다르게 풀어보자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 새로운 세계(영역)를 배워나가기, 이종 간의 연결이다.
숫자, 계량화로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간-표현에 관심이 많은 집사는 스크래처에 처음 들어간 호시의 모습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연작) 고양이의 시간은 5년간 여러 사정이 있었던 까닭에 원형 스크래처에 들어가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기도 하고 잠깐 스크래처가 없이 지낸 기간도 있었지만, 호시가 처음 집사와 함께 살게 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간에 관한 기록'이다. 위의 사진들은 최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차례대로 간추린 약식-모음이다. 첫 시작이 호시인 까닭에 'ver. 호시'가 오리지널이라고 보면 된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다음 '지속적인 기록'을 한다. 기록들이 어느 정도 쌓이기 시작하면 새롭게 배열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기록자 앞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앞서 언급했던 '시간(선)과 시간(선)의 겹침'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며, 배열 방식에 따라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시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간 표현이 가능해진다.
보자마자 안에 들어가 모로 누워버린 호시와는 달리 매우 신중하고 의심 많은 성격인 탐탐이는 원형 스크래처 안에 들어가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호시만큼 스크래처를 좋아하지 않고, 자주 들어가지도 않았으므로 상대적으로 사진이 적다.
"탐아. 너는 어쩜 이리 예쁘니?"
"태어날 때부터 예뻤다옹!"
기록의 수로 보면 'ver. 탐탐'보다도 더 적은 고양이의 시간 외전의 외전 격인 'ver. 호시탐탐'이다. 원형 스크래처가 좁은 탓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장면들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똑같은 야옹이들이다. 진짜 맞다.
(연작) 고양이의 시간은 '호시'의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순환하는 시간의 흐름처럼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또한 상황이 허락할 때마다 아주 가끔 '탐탐'이나 '호시+탐탐'을 함께 담았고, 타임라인과 배경의 변화에 몇 차례 변곡점이 있었다. 모든 '고양이의 시간' 사진은 집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특별함으로 다가오지만 지금 보여주는 15장의 사진들은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난 장면들인 까닭에 무척 아끼는 사진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인식하는가?" 라는 질문은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사진을 꾸준히 하는 이유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계의 숫자로 측정되는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간을 감지하고 인식하려는 연습 방법 가운데 하나다. 작은 범위에서는 색온도나 냄새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고, 큰 범위에서는 나와 다른 존재의 생활주기나 고유의 특성을 관찰하는 과정이 그러하다.
(아주 추상적인 동시에 구체적으로) 야옹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호시와 탐탐이를 꾸준하게 기록하는 건 집사로서 나의 작은 의무다. 여러 기록 가운데 <고양이의 시간>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후에 사진들을 조금 더 크게, 혹은 다른 배열로 풀어볼 날이 있을 것이기에 오늘은 소개 글 정도로 마무리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