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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인의병 Mar 04. 2023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11

김호시의 수면 자세

<10+48주, 203, 특별출연: 식빵 굽는 등빡빡이 아디다스 모델 고탐탐>



네 발을 몸 안으로 접어 한껏 웅크린 채 엎드린 모습을 일컫는 '식빵 자세'는 고양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세다. 많은 집사가 "식빵을 굽는다."라고 표현한다.


햇살 좋은 날. 밖에서 식빵 굽는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길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가? 귀여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사실은 언제든지 달아날 것을 염두에 둔 자세라고 한다. 야생동물에게 잠은 가장 큰 휴식인 동시에 외부 위협에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인 까닭이다.


집고양이들은 어떨까? 집안은 바깥보다 비교적 안전한 환경이므로 길고양이만큼은 아니지만, 몸이 아프거나 불안한 상태일 때 식빵 굽는 자세를 취한다.




<(좌) 10+10주, 203 / (우) 10+222주, 302, 등이 닿는 곳이 곧 침대다옹>



여기 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야옹이가 있다.


등은 바닥에 붙어 있고 시선은 하늘을 향한 채 태연히 잠을 청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그도 여느 고양이처럼 식빵을 구웠고, 자면서도 철저하게 사주경계를 했다. 시간이 흘러 자기를 모시는 집사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 집에는 천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 배가 마땅히 닿아야 할 자리를 등에 내어주고 네 발은 바닥이 아니라 허공을 향했다.




<10+11주, 203, 레이디 호베스>



2017년 호시가 대구에 온 그해 여름. 집사는 대장님과 함께 영화 <레이디 멕베스>를 봤다.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푸른빛의 색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는 영화 포스터에 나온 '모든 금기 사항의 집합체'라는 문구를 패러디해 김호시 헌정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고양이 자세로 잠을 자던 탐탐이와는 달리 김호시는 일찍부터 바유분방한 수면 자세를 뽐냈다.




<10+111주, 203, 앞발은 다소곳이, 뒷발은 쩍벌-당당>



김호시의 시그니처 수면 자세다. 앞발은 다소곳이 모아 뻗어주고, 뒷발은 쩍벌-당당하게 펼친다. 유연한 골반을 자랑하는 김호시의 다양한 수면 자세는 이 자세에서 변형이 이루어진다.




<10+14주, 203, 앉아 자>



꼭 누워서만 잠을 청하는 법은 없다. 등만 대면 어디서든 잔다. 보통 벽에 등을 대고 잠을 청할 때면 골반이 점점 더 천진난만해진다.




<10+153주, 203, 주먹 쥐고 쿨쿨 자>



'주먹 쥐고 쿨쿨 자'는 김호시의 인디언식 이름이다. 해먹이나 책상 모서리에서 잠을 청할 때 호시의 도톰한 주먹은 허공에 떠 있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주먹의 솜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




<(좌) 10+21주 / (우) 10+30주, 203, 시그니처 변형 자세>



다음은 수면 자세에 따른 골반 자유도를 측정한 기록사진이다. 앞발과 꼬리의 위치에 따라 골반의 수축과 확장이 이루어진다.




<10+51주, 203,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쿨쿨 자야지>



편해 보이는 데 불편해 보이는 '몸통 비틀어 자기 자세'다. 잠을 자다가 하품 한 큰술을 첨가할 때가 있는데 입이 벌어지거나 혹은 입이 닫히기 직전의 모습은 집사의 취향을 저격한다. 김호시는 치열이 참 이쁘다.




<10+125주, 203, 아방가르드 수면 전사>



김호시는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수면 과학 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전위적인 수면 자세를 연구하는데, 호시는 단연 으뜸인 아방가르드 수면 전사다.




<10+38주, 203, 아방가르드 - 아크로바틱 - 아스트랄>



야옹이들은 대체 어떤 자세까지 자는 것이 가능한지가 김 수석연구원의 연구주제다. 호시는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누구보다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묘(猫)다.




<10+103주, 203, 머스트-해브 아이템>



여름 홑이불은 김호시가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집사가 자려고 누우면 호시도 집사 옆에 자리를 잡는다. 잠을 청하는 호시에게 집사는 팔을 뻗어 살포시 배를 만진다. 여름철 에어컨을 틀고 홑이불을 덮는다. 손이 닿는 곳에 야옹이 배가 있으면 소소한 사치를 누릴 수 있다.


김호시의 배는 여름철 집사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다.




<10+116주, 203, 집사의 심장을 향해 쏴라>



제자리에


준비하시고


쏘세요.




<10+106주, 203, 묘권 보호>



대프리카의 여름은 야옹이들이 버티기에는 가혹한 환경이다. 날이 더워질수록 야옹이들은 점점 늘어진다. 특히 호시의 골반은 점점 더 쩍 벌어지는데, 김호시의 묘권 보호를 위해 집사는 이불을 덮어주곤 한다.


감쪽 같다.




<(좌) 10+117주, 203, 늘어져 자기 / (우) 10+133주, 203, 몸통 비틀어 자기>



아깽이 시절과 캣초딩 시절 쉼 새 없이 우다다를 하며 활동적인 사진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야옹이들의 사진은 잠으로 수렴한다. 분명 잠은 정적인 행위일텐데 이상하게 동적이다. 김호시의 잠은 이토록이나 씩씩하다.




<(좌) 10+234주, 302, 타오르는 불꽃 수면 자세 / (우) 10+254주, 302, 허공 메치기>



고양이의 신체 부위 가운데 배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정말 신뢰하는 대상이 아니면 고양이는 배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김호시와 고탐탐이는 배를 까뒤집는 것은 일상이고 심지어 집사가 배를 만지면 골골송을 부르며 좋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김호시의 수면 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위적으로 변하고 있다.




<(좌) 10+243주 / (우) 10+253주, 302, 머리 박고 쿨쿨 자>



요즈음 김호시가 새롭게 심취한 수면 자세다. 호시 얼굴이 혹여나 납작해질까 걱정이 크다.




<고양이의 시간 中>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떡잎을 자랑하던 김호시는 자유로운 수면 자세를 가졌다. 우리 집 대장님이 가끔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우리 집 야옹이들은 행복할까?"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야옹이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싶으면 고개 들어 야옹이들의 수면 자세를 보라!"




<10+133주, 203, 특별함이 아닌 일상_*>



어느 주말. 알람 없이 늘어지게 잠든 날.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깬 집사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다. 혹여나 호시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나와 카메라를 사부작 챙긴다. 다시 자리에 누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셔터를 눌렀다. 마음에 쏙 드는 포즈와 질감, 오랜만에 집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이다.




<10+149주, 203, (좌) 김호시 / (우) 고탐탐, 끝없이 펼쳐진 잠행성>



밥때와 다음 밥때 사이. 식사 후 졸음이 소화돼 가장 깊은 잠으로 가서 닿았을 때. 수평선도 아니고 지평선도 아니지만, 눈앞에 나타난 장면. 집사는 이것을 '끝없이 펼쳐진 잠평선'이라 부르기로 했다.




<10+30주, 203, 잠아 일체의 경지>



사진을 많이 찍다 보면 아주 작은 확률로 기억에 남는 장면과 마주한다. 찍히기보다 사진을 찍는 일이 많은 집사는 사진 속 관계체를 통해 사진 밖의 내 모습을 본다. 방석 위에 누워 다리 한쪽을 든 채 쿨쿨 자는 호시를 보며 사진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세상에서 김호시의 수면 자세를 제일 많이 마주하고 기록하는 집사에게 '잠아 일체(잠이 나이고 내가 곧 잠인 경지)'를 추구하는 신선의 경지를 보여준 이 장면. 사진 밖에는 빵 터진 채 셔터를 누른 집사가 있었다.


김호시는 분명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늘 영광이다. 집사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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