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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인의병 Feb 10. 2023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5

창가의 김호시

<10+19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야옹이들과 함께 살지 않았던 시절에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집사의 머릿속에는 창가에 자리한 고양이 한 마리가 늘 있었다.


머리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

둥글게 말아놓은 꼬리와 가지런히 모아 둔 앞발

창밖을 보는 시선                                         


작업을 하던 어느 날이다. 잠깐 쉬려던 참에 고개를 들었고 창가에 눈이 닿았다. 순간, 상상 속에 존재하던 딱 맞춤한 자세의 김호시가 집사의 눈앞에 있었다. 야옹이들 사진을 찍는 일은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야옹이들의 행동 패턴을 기록하는 작업에 가깝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집사는 '관찰-반복'을 통해 일정한 규칙의 '사진-형식'을 만들고, 사진-형식의 '이름'을 정한다. 이름을 가진 '사진-형식'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장면을 사진으로 꾸준히 담을 을 만들어낸다.


창문, 창가, 야옹이, 이상적인 자세가 모여 '사진-형식'을 만들었고, '(연작) 창가의 김호시'가 시작됐다.




<(좌) 10+24주 / (우) 10+27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풍경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생애 가장 부지런히 움직일 때가 있었다. 이른바 '포인트'를 찾아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더 스펙터클한 풍경을 찾아 셔터를 누르고, 운 좋게 얻어걸린 결과물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풍경을 찾아 다닐수록, 즐거움이 아닌 경쟁으로 다가오는 스펙터클은 되려 사진 생활에 흥미를 떨어뜨리는 부분이었다.


한참 후에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된 계기는 매일 지나치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을 1년 이상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을 때였다. 그때 알게 된 풍경 사진의 묘미(妙味)는 '하나의 공간''시간'과 함께할 때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가는 데 있었다. 남는 건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이었다.




<10+30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집사는 '창가의 김호시.들'을 본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며 김호시에게는 '자기만의 창'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떠올리며 야옹이 김호시에게 창밖은 TV 같은 것이 아닐까 상상한다. 창밖을 보는 야옹이를 보고, 야옹이의 시선을 상상하고, 야옹이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창가의 김호시는 그렇게 집사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10+34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처음에는 창밖을 보는 야옹이 김호시가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날이 갈수록 셔터를 누르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창가의 김호시를 그저 보고만 있는 시간은 늘어난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호시의 모습이 집사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좌) 10+41주, 203, 창밖에 비가 와 / (우) 10+39주, 203, 창밖에 눈이 와>



작고 볼품없는 집이다. 창틀도 창밖 풍경도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김호시는 늘 새로운 장면을 집사에게 보여주었다.



 

<(좌) 10+34주, 203, 완전체 털냥이 / (우) 10+52주, 203, 등빡빡이 야옹이들>



털이 풍성하거나, 등을 빡빡 밀어도 야옹이들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여 '야옹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들어 나간다.




<10+208주, 302, (연작) 창가의 김호시>
<10+211주, 302, (연작) 창가의 김호시>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좀 더 넓고 빛이 좋은 창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도 창가의 김호시는, 야옹이들은 한결같이 그 장면을 집사에게 보여준다.




<10+123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창가에 오래 앉아 있던 고양이를 껴안으면 그 계절의 냄새가 난다. 털 사이에 그 계절의 햇빛과 온도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문을 구경시켜 준 것을 생각하면서, 더 현명하고 능숙하게 아프지 않게 돌봐주고 싶다."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라는 책에 실린 김건영 시인의 '나의 단이'라는 시(詩) 한 구절이다. 평소에 눈물은 하품할 때나 가끔 보는 편이지만 이 시를 읽었을 때 그동안 마주했던 '창가의 김호시.들'이 떠오르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대략적인 글의 뼈대를 세우고 사진을 고르면서 멀거나 가까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데려오며 괜히 또 울컥하는 밤이다. 시인의 마음처럼 창가에 있는 고양이를 마주하는 모든 집사님이 더 현명하고 능숙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진이 저마다의 이유로 존재한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이 있고, 구도와 노출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저 야옹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진도 있다. 당시에는 마음에 쏙 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나지 않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특정 상황에서 마법처럼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 공간(space)은 기억과 결합해 장소(place)가 된다. 어떤 사진은 기록으로만 의미를 갖지만, 어떤 사진은 당시의 느낌을 지금, 여기로 데려오는 기억으로 의미가 있다. 몇몇 사진을 통해 호시가 있던 공간은 집사에게 장소로 전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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