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Jul 31. 2023

엉뚱한 짓만 하는 데 괜찮은가요?

거꾸로 박쥐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독특하거나 창의적이라고 말하기 조심스럽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고, 그럴 발달 단계도 있습니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 


오늘은 세 살 여자 아이가 서서 오줌을 누는 모습을 보고 고민에 빠진 어머니를 만나 <거꾸로 박쥐>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2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엉뚱한 짓만 하는 데 괜찮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동 청소년이 상담받는다고 하면 문제아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 같은 경우 사회 부적응자로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 시각 때문에 시급한 문제, 또는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문제들도 쉬쉬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일이 커지고 나서야 상담실에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는 평소와 마음이 다르게 느껴지거나 감정이 컨디션을 좌우한다고 느낄 때라도 감기 환자가 병원에 내방하는 것처럼 상담사를 찾는 것에 비하면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연인과 헤어졌을 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찾을 때도 있고, 회사를 옮기려고 하는데 심리적 갈등 고조로 어려움에 있을 때도 상담을 의뢰한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그런 일로 상담까지 받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예방 접종 맞듯 사전 예방은 필요하다. 특히 감정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나는 상담 장면에서 고전적인 방법의 상담을 고집하기보다는 약간의 변화도 곧잘 시도하는 편이다. 반드시 상담실에서만 상담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시끄러운 고속도로 휴게소나 노래방 같은 곳만 피하면 된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면서도 조용하고, 무엇보다도 내담자가 편한 장소라면 난 기꺼이 응한다.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비슷한 연령대의 엄마들을 만날 때 간단하게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동네 지인이고 학교 학부모여서 편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등하교에서 자연스럽게 상담을 이어가는 이유는 병원에 온 환자처럼 취급받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고, 문제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편하게 말하는 대나무숲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석에서든 공석에서든 가장 많이 받는 상담 중에 “우리 애가 창의력이 뛰어난 건가요? 아니면 엉뚱하고 이상한 건가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든 이런 말을 한두 번은 해봤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렇게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소한 경우에 먼 거리를 직접 찾아와서 예약하고 상담받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식사 도중 수다처럼 튀어나오는 상담의 경우 식사를 마치고 따로 차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가까운 커피숍으로 이동해 내담자의 일을 학부모나 지인이 먼저 말을 꺼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너무 가벼운 고민이라 여기어 꺼내기 창피한 일들이지만 편하게 마음을 연다.     

“선생님, 우리 애는 천재일까요? 바보일까요? 어느 날 보면 멀쩡한 것 같은데, 요즘 보면 또 이상한 것 같아서 걱정되네요.”

“그런 때가 언제인가요?”

“너무 많아서……. 나래가 지금 세 살인데, 서서 오줌을 눠요. 다 그러면서 큰다고는 하지만 그런 지가 어제오늘이 아니거든요. 오래 되었어요.”

“어느 정도 되었다는 말씀일까요?”

“지금 한 달째? 다른 엄마들 말 들으면 한두 번 하다가 안 한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선생님.”

“그것 말고 또 다른 것도 있나요? 걱정하시는 게 이거 말고 다른 것도 많다고 하셨는데 더 알면 도움드릴 것이 많아집니다.”

“지금 가을이잖아요. 그런데 겨울옷을 입고 싶다고 울고불고 난리쳐요. 더운데 뭐 하는 거냐고, 친구들이 놀린다고 해도 막무가내예요. 또 어느 날은 아침에 쌀쌀한데 팬티만 입고 집 앞 슈퍼마켓에 가서 빵을 사야 한다고 난리를 치기도 하고요. 당장 먹고 싶다고. 친구가 놀러 오면 같이 놀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안방 침대 옆에 숨어서 아무리 불러도 나오질 않아요.”

“어머님 걱정이 많으시네요. 다양하고요.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 중 가장 걱정되는 건 뭔지 궁금합니다.”

“음……. 뭐랄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걱정이 돼요.”

“그러면 어머니는 나래를 보면 다 걱정이 된다고 하셨는데, 나래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드세요?”

“불안? 화남?”

“어떤 부분이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고 화나게 하는 걸까요?”

“남과 다른 행동을 하니까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닐까? 한두번도 아니고 그런 행동이 반복되니까 친구들과 못 어울리면 어쩌지? 다른 애들은 하나도 안 그런다는데 내 아이만 이상한 행동하는 게 문제아처럼 보이는 것도 싫고, 암튼 그래요.”

“나래가 잘못될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도 있는 건가요?”

“나래를 보면 뭐랄까요? 여자앤데 남자같이 굴어요. 곰돌이 인형보다 장난감 자동차를 더 좋아하고, 쇼핑가도 완구점 앞에서 떼쓰고 울거든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세 살 아이들이 보통 어떻게 노는지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세 살은 남녀 성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체성 혼란을 경험할 나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이때는 남자아이도 앉아서 소변을 보기도 하고,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안고 자기도 한다. 여자아이들은 아빠가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것을 보고 흉내 내기도 한다. 불편하다고 느끼면 바로 멈추기도 하고, 조금 지연시키기도 한다. 주변에서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느끼더라도 관심과 애정으로 생각해서 더 오래 끌고 가기도 한다. 이 나이 때는 앉거나 서서 보는 호기심은 있기 마련이다.     

 

나래 엄마가 염려한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자. 서서 소변보는 게 한 달째라면 조금 긴 날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기간을 따지다 보면 간과해서 놓치거나 크게 부각될 수 있으니 잘 점검해야 한다. 그저 가볍게 여기고 반응하는 정도였는지, 아니면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야단쳤는지 생각해 보자. 만약 후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나래가 서서 소변보는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만약 엄마가 다른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서서 소변볼 때만 유독 나래에게 관심을 보였다면, 나래는 그때마다 부정적 피드백이지만 그마저도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래가 혼자 놀 때는 엄마도 커피 마시거나 집안일을 하는 등 나래에게 좀처럼 말을 걸지 않았는데, 그런 행동을 할 때만 잔소리했다면 나래를 어떻게 생각할까? 잔소리 같은 부정적인 반응까지도 나래는 좋은 뜻으로 해석하고 말 것이다. 이런 경우 나래 엄마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나래 엄마에게 나래가 그런 행동할 때는 관심을 두지 말고 화장실에 쫓아가지도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다가 가만히 한 번 변기에 앉혀보고 나래가 잘 앉아 있을 때마다 칭찬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거나 안아주면 차차 나아질 것이다.


아이들은 ‘추우니까 따스하게 입어야지, 더우니까 시원하게 입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옷을 입지 않는다. 그냥 주변 어른들이 주는 대로 입고 다닐 뿐이다. 그렇지만 유독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 그림이나 캐릭터,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이 프린트된 옷이라면 달라진다. 어떤 남자아이는 번개맨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어린이란 선물로 받은 번개맨 반팔 티셔츠를 일주일 내내 입고 다니기도 한다. 땀 냄새가 나든 말든 상관없다. 더구나 이때의 아이들은 몸의 체온 변화를 스스로 깨닫기 힘들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야 춥다, 덥다를 느낀다.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지금 당정 먹고 싶은 빵이나 간식이 중요하지, 추운 겨울에 팬티만 입고 나갔다가 감기 걸릴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직은 우리 어른들이 많이 돌봐주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래는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나래 엄마는 또래 아이와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다른 행동을 하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세상사람 누구 하나 똑같이 생긴 사람 없고, 같은 옷을 입는다고 표정까지 같은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모두 다른 부모 밑에서 자라듯이 옹알이 하는 모양도 다르고 말 트는 시기도 모두 다른다. 이렇듯 먹고 자라는 환경이 다른 아이들이 제각기 다른 발달 사항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래 엄마는 나래의 모든 말과 행동을 주변 아이들의 행동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만약 나래의 말과 행동이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창의적인 아이, 엉뚱한 아이’로 단정지었다. 이렇게 흑백논리로 아이를 몰아가니 엄마 자신도 숨이 가쁘고, 그 숨가쁨에 눌린 나래 또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혹여나 아직 세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이를 다섯 살 이상으로 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나래 어머니는 본인의 성격을 인정했고, 나래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했다. 건강한 나래를 위해서, 바른 교육을 위해서 애쓰는 엄마들을 존경한다. 힘든 내색 없이 아이의 교육과 인성에 힘쓰는 우리들, 조금만 더 힘내자고요!


나는 나래 엄마에게 다음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거꾸로 박쥐』 진 윌리스(지은이), 토니 로스(그림), 최재숙(옮긴이), 국민서관(2007)


이 책에는 숲속에 사는 아기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 중에는 친구들 사이에 엉뚱하고 이상하다고 놀림받는 소외된 박쥐가 있다. 친구들은 박쥐가 뭐든 거꾸로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박쥐에게 가지고 싶은 선물을 말해보라고 하자, “발 안 적게 하는 우산이 필요해.”라는 괴상한 대답을 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가물이 불어나서 내 귀가 잠길 거야.”라라는 말도 했다. 친구들은 강물이 불면 발이 잠기지 어떻게 귀가 잠기자면서 박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놀리기까지 했다. 박쥐 자신은 모자를 쓰고 싶은데 모자가 자꾸만 풀밭 위로 떨어진다고 했지만, 친구들은 모자는 풀밭 아래로 떨어진다고 했다.     

아기 동물들은 박쥐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들과 너무 달라서 박쥐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엉이 박사님꼐 이 사실을 알리러 갔다. 박쥐가 머리가 돌았다고, 미친 소리만 한다고 떠들자 부엉이 박사님은 왜 박쥐가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기 동물들은 대답했다. “뭐든지 우리랑 다르게 봐요.”     

부엉이 박사님은 아기 동물들에게 박쥐처럼 거꾸로 나뭇가지에 매달려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러자 지금껏 박쥐가 미친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와서 아기 동물 모두가 젖게 되었다. 박쥐는 선물로 받은 새 우산을 친구들에게 빌려주었다. 숲속의 아기 동물들은 박쥐에게 사과했다.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분들, 상담현장에 계시는 분들께 도움되면 좋겠습니다. 빨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