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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May 31. 2023

마음의 총량

오늘 하루의 성공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나의 성실성으로부터 온다.

내가 항상 쓰는 생산성 앱의 맨 위에는 몇 달 전부터 문장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 하루의 성공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나의 성실성으로부터 온다.


좌우명이라고 하기는 거창하지만 지금 가장 마음에 새기고 있는 문장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놓치는 것들을 다짐한다. 늦잠을 자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기를 다짐하고, 홧김에 말을 잘 내뱉는 사람들은 말을 예쁘게 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가 아 나의 성실성을 다짐한다.


나는 자주 사람들과의 관계에 애달파하다 하루를 망쳐버리곤 했다. 툭 던지는 거친 말투에 하루 종일 마음이 상했고, 오지 않는 답장을 계속해서 기다리다 지쳤고, 이 사람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닐까 습관적으로 걱정했었다.


내가 사람들의 기분에 예민하고 인간관계에 민감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신경 쓰다가 내 하루를 자주 망쳐버리고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워낙 즉흥적인 성격 탓에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가볍게 덮어버렸고, 즉흥적이어도 기본적으로는 성실한 편이라 계획했던 일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마쳤기 때문이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던 사이의 하루들을 알게 된 건 도리어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면서였다. 파리로 이사 온 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으로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그게 먼 타지로 넘어와 살게 되며 경력이 끊길까 두려운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니 몸부림치고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압박감을 느끼지도 않은 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도전하며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이렇게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었나? 의아했다. 언제나 하고 싶었던 일들은 많았지만 에너지가 안 돼서 못했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모든 일이 쉬워졌고 어떻게 많은 일들을 할 시간이 생겼는지 천천히 돌아보았다.


해답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4시간 걸리는 먼 곳으로 오게 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내 안 좋은 습관인 '인간관계 신경 쓰기'가 자연스럽게 고쳐졌던 거였다. 우선 7~8시간 나는 시차가 큰 역할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국은 이미 오후고 프랑스가 오후 시간대가 되면 한국은 잘 시간이 된다. 내가 신경 쓰던 답장의 여부나 속도에는 시차라는 변명이 생겼고, 그 얄팍한 변명은 걱정거리를 무시하는데 생각보다 커다란 의지가 되어주었다.


평생 마음의 한편을 자리하고 있었던 가족에 대한 걱정도, 타지로 오며 친구들과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도 '어차피 이제와 이 먼 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생각하자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긍정적으로 맞아떨어졌달까.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인간관계를 고민하면서 보냈을 시간과 마음은 고스란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정말 많은 시간을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누군가 때문에 상처받아 힘들어하거나,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는데 쓰고 있었다.


낙관적인 말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무언가의 한계를 짓기보다는 비록 현실성이 없을지라도 끝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마음의 총량을 단 한 번도 살핀 적 없었다. 정해진 양 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와 일, 다른 종류의 이기에 서로 간에 미치는 어떠한 영향도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내 마음을 써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내 마음은 모두 인간관계로 흘러들어가 나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와 깨달은 사실을 고백한다. 내 마음의 총량은 작다. 내 마음의 총량은 작아서 하루에 마음을 어디에 쓸지를 고민해서 잘 배분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들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얼마나 많은 기회를 인간관계를 걱정하는데 마음을 쏟느라 놓쳐버렸던 걸까. 아쉽다. 웃긴 건 인간관계는 마음을 많이 쏟는다고 잘 되는 류가 아니란 거다. 오히려 한 발짝 떨어지는 편이 잘 풀리더라. 그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침마다 저 문장을 읽으며 다짐한다. 오늘은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가족들과 화목했는지로 하루의 성패를 결정짓지 말아야지.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성실하게 잘 해내서 밤이 되면 '오늘 하루는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어야지. 그렇게 내 작은 마음을 나를 위해서 흘려보내야지.



오늘 하루의 성공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나의 성실성으로부터 온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다니는 생산성 프로그램 workflowy 독자분들도 꼭 써보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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