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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Dec 31. 2020

너무 아파서 들춰보기 힘든,

디어 마이 프렌즈




서늘한 날이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무언가 볼 게 없을지 드라마 목록을 뒤적였다. 한 드라마의 제목이 눈에 밟혔다. "디어 마이 프렌즈" 우리 가족들 이야기 같은 드라마가 나왔다는 사촌 동생의 말에 당장 봐야겠다고 대답했던 드라마. 선뜻 내놓았던 대답과는 다르게 차마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없어 미루고 미뤄둔 그 드라마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불을 둘렀다. 어쩐지 오늘은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본 드라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힘겹게 누른 재생 버튼 속 드라마는 들었던 것처럼 나의 삶과 닮아있었고,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울고 웃으며 드라마를 봤다. 소문처럼 드라마는 명작이었다. 누군가 네 인생 최고의 드라마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디어 마이 프렌즈라고 대답할 만큼. 하지만 처음 미루고 미루다 재생 버튼을 누른 그 날의 용기가 다 본 후에도 또 필요해서 아직 한 번도 다시 본 적 없을 만큼 아프고 적나라했다. 이 드라마는 내가 감추고 싶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삶의 순간들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었다.



비열하고, 비겁한 박완.

왜 너는 30년 동안 묻어둔 그 얘길 이제야 이렇게 미친년처럼 터뜨리는 건데.

너는 그때도 엄마를 이해했고, 지금도 엄마를 이해해.

근데 왜 너는 지금 엄마를 이렇게 원망하는 건데.


내가 이렇게 된 거, 그리고 내가 연하랑 헤어진 거 그거 다 엄마 탓이야. 내가 이렇게 된 거 그거 다 엄마 탓이야!


그때 알았다. 나는 연하를 버린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연하를 버린 게 내 이기심만은 아니었다고. 이유가 있었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9화에서 박완(고현정 역)은 자신의 엄마 장난희(고두심 역)에게 소리를 지른다. 묻어두고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며 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냐고 앓던 속을 꺼내어 놓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한다. 비열하고, 비겁한 박완. 왜 이제야 그런 이야기를 하며 엄마를 탓하는 건데 하고.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악에 받쳐 소리 는 박완처럼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서 묻어두었던 긴 시간 동안 쌓여온 원망이 작은 물방울 하나로 툭 터져버려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울며 엄마를 탓했다. 엄마는 드라마 속 장난희처럼 같이 소리를 지르다 어느 순간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했다. 그 순간 참을 수 없이 밀려들었던 죄책감과 해방감. 어쩌면 내 마음속 응어리는 풀어진 게 아니라 나에게서 엄마로 옮겨간 게 아닐까. 고통스러운 엄마의 얼굴이 가슴을 찔렀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순간을 피해야 하는 걸까, 맞이 해야 하는 걸까.



몇 달을 모른 척 외면하다 겨우 눌렀던 드라마의 재생 버튼처럼, 진심을 털어놓기가 두려워 외면하던 감정들을 언젠가 다 털어놓아야 우리의 드라마는 시작되는 걸까?



모르겠다. 가끔은 생각해본다. 먼 훗날, 부디 정말 먼 훗날, 엄마가 내 곁에 더 이상 없을 때 내가 이 순간을 후회할지. 역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하나 느껴지는  있다. 서늘한 밤 드라마를 시작했던 용기가, 쌓아두었던 마음을 털어놓았던 그 날의 시간이 내가 이 드라마를, 엄마를, 내 삶을 보다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



그래서, 그럼에도 나는 맞이하기로 했다.



너무 아파서 들춰보기 힘든,

우리 삶의 진실된 순간들을.








벌써 2020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모두 각자의 편안한 공간에서 2020년을 정리하고, 맑은 마음으로 2021년을 반갑게 맞이하실 수 있기를요. 모두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2021년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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