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가 나타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종종 심각하게 고민하곤 한다. 첫 번째 소원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순간이동 능력을 갖게 해 주세요'. 돈과 시간의 압박 없이 출퇴근부터 해외여행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정한 소원이다. 원체 여기저기가 자주 아픈지라 두 번째 소원 역시 고민 없이 몸과 마음의 평생 건강으로 앳 저녁에 정했다. 그런데 늘 마지막 소원이 고민이다. 이것도 좋을 것 같고, 저것도 좋을 것 같아 뚜렷한 한 가지를 못 정하다가 최근에야 마음을 굳혔다. 바로 모든 생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공원의 산책하는 강아지,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만난 물고기, 길가의 가로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지니 없이 나의 마지막 소원을 이룬 남자,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의 이야기이다. 해외에서 영화 촬영을 하던 그는 작업의 부담감과 계속되는 해외 생활에 지쳐 일을 관두고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대서양의 거친 파도와 8, 9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바다 아래 존재하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찾고 평화를 얻는다. 바닷속에서 다시마 숲 사이를 유영하고 해파리들을 마주치며 다시 촬영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된 크레이그 포스터는 어느 날 한 문어를 만나게 된다.
처음 발견한 건 조개 더미가 쌓여있는 기이하고 독특한 형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어 고민하던 와중 조개더미는 흔들리고, 무언가 안에서 쑥 몸을 빼내어 유유히 빠져나간다. 문어였다. 크레이그 포스터는 이 문어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매일 문어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처음 문어는 크레이그 포스터도, 그의 카메라도 경계하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매일 자신을 방문하는 그를 보며 문어는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어느 날 문어는 그에게 다가온다. 마치 매일 나를 방문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을 표출하듯, 나를 해치지 않는 이 생명체에게 친근함을 표현하듯 조심스레 발을 내뻗는다. 문어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빨판으로 크레이그와 접촉하고, 크레이그 포스터는 그런 문어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어주며 문어와 교감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다큐멘터리는 크레이그 포스터의 회상 인터뷰와 문어와 그의 만남을 담은 장면들로 구성된다. 크레이그 포스터 시점에서 전개되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처음부터 문어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느낀 그와 달리, 경계심을 느꼈다가 그에게 점차적으로 마음을 주는 문어의 모습이 시간에 따라 잘 나타나 있어 문어의 마음을 쉽게 상상하게 한다. 밝은 물 밖 세상에서 나타난 나에게 관심을 주고 애정을 주는 한 존재와 친밀해지는 시간. 분명 크레이그 포스터에게 문어와 친밀해지는 시간이 특별했던 만큼 문어에게도 그 시간이 특별하지 않았을까.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어린 왕자와 그의 장미 한 송이가 생각났다. 수많은 행성에 존재하는 무한한 장미 중에 그가 특별하게 생각했던 단 한 송이의 장미. 그 장미를 위해 어린 왕자가 물을 주고 유리 갓을 씌워줬듯 크레이그 포스터는 단 한 마리의 문어를 위해 매일 물속으로 들어가고 수백 편의 논문을 읽는다. 문어가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문어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자 노력한다. 크레이그는 고백한다. 사실 그전까지 어떤 생물도 그에게 그렇게 특별한 적 없었노라고. 하지만 문어가 그에게 특별해진 순간부터 모든 생물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고. 그는 문어에게 사랑을 배운 것이다. 나와는 사는 곳도, 종도, 언어도 모든 것이 다른 생명을 특별하게 여기고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압축적이고 상징적이다. 나의 문어 선생님. 그에게 문어는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준 선생님인 것이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문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