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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Dec 05. 2020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맞춤법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반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국어국문학과에서 배운 모든 내용 중 아직까지 뇌리에 남은 한 문장이다. 교수님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내게 이 말은 "맞춤법 틀리는 것 신경 쓰지 마라."로 들렸다. 그 날부터 나는 바른 맞춤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관두었다. 당장 바뀌지 않아도 다수가 다르게 쓴다면 언젠가 그 말이 맞는 말이 될 테니까, 굳이 맞는 표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고등학생 때 문법 시험에서 연이어 백점을 맞아 얻은 세종대왕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맞춤법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맞춤법을 무시하는 건 나름 즐거운 일이었다. 올바른 단어를 확인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됐고, 다른 사람들이 맞춤법을 틀릴 때도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맞춤법 무시하기'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맞춤법을 무시하면서 아예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뜻이 비슷한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세심한 독해와 작문 모두 사소한 일처럼 여겨졌다. 오랫동안 글의 전체 흐름과 주제만이 훌륭한 글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갤러리에서 일할 때 처음으로 내 태도에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글에 예민한 갤러리 대표는 내가 쓴 글에 빨간 펜으로 주욱 주욱 선을 그었다. 여기서 이런 단어를 쓰면 어떻게 하냐는 그의 말에 속으로 '대충 뜻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반박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에 퇴근 후 남아 글을 고쳤다. 맞춤법과 단어의 의미를 찾아가며 고친 글은 또 퇴짜를 맞았고 난 다시 남아서 글을 썼다. 해야 하는 말을 작은 분량 안에 어떻게 정확히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여전히 퇴짜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해?!




김정선 작가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을 구매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책의 제목은 내 마음속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고, 뒤표지의 '내가 보기에는 멀쩡한 내 문장, 어디가 문제라는 걸까?'라는 문장은 이런 고민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산 책을 일 년이 넘게 지나 이번 주에 읽었다. 친구들에게는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이 책을 읽고 내 글이 정말로 엉망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얇은 책 한 권이 무거웠다. 용기를 내어 펼친 책은 기대보다 인상적이었다. 그토록 뇌리에 강하게 남은 교수님의 말을 덮어버릴 만큼.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의 저자 김정선은 다른 이들의 문장을 다듬는 교정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20년 넘게 일하며 알게 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이 교열을 마친 책의 저자로부터 받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메일에서 시작된 문장에 대한 담화를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지루할 것 같은 소재로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주는 이 담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대한 김정선의 답이다.



자기 문장이 그렇게 이상하냐고 물었으니 그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는 게 우선이지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당신 문장은 이상합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노라고 덧붙였다.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하죠. 제겐 그렇습니다. 20여 년간 남의 문장을 읽고 맞춤법에 맞게 고치고 어색하지 않도록 다듬는 일을 해 왔지만, 이제껏 이상하지 않은 문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는 한은 내내 그러리라 믿습니다.

(중략)

정답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심지어 맞춤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이란 그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규칙일 뿐이죠. 게다가 지금처럼 국가기관이 맞춤법을 통제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맞춤법에 그렇게 목을 맬 이유도 없지 싶습니다. 다만 책을 사서 읽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중략)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문장은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함 속에서 문장의 결이랄까요 무늬랄까요, 아무튼 선생님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갖고 있는 그 이상함이 선생님의 문장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는 셈이죠. '그렇게' 이상하냐는 물음에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니요'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유유, 2016, 101~103 쪽



이 글 속에 내 십여 년 간의 고민에 대한 답이 전부 들어있는 것 같았다면 과장일까. 맞춤법과 좋은 문장의 틀에 맞추어 글을 고치는 그가 하는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하지만 그렇게 이상하지 않지는 않다'는 말이 빨간 줄로 덮인 내 글을 보며 갖게 된 내 글은 틀린 글인가 하는 의문 위로 쓰였다. 김정선은 정답 같은 건 없다고 말했지만 교정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그의 그런 태도가 틀린 글과 이상한 글, 그렇게 이상한 글과 이상한 글 사이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나는 고민한다. 올바른 맞춤법과 정확한 표현, 좋은 글의 주제와 흐름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나만의 이상한 글을 쓰기 위해 그렇게 이상한 글과 이상한 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2021년 다이어리를 세 개나 샀습니다. 어쩌면 더 살지도 몰라요. ㅎㅎ 다른 분들은 어떤 다이어리 쓰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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