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존중
“나는 할멈 생각해서 닭 다리도 항상 양보해 줬는데!”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항변했다. 이에 할머니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나는 닭가슴살 좋아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머 글이다.
짧은 유머에 드러난 부부는 오래 함께 산 모양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내의 취향을 몰랐다. 물론 할아버지는 취향을 알지 못했을 뿐, 할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부가 “닭 다리 좋아하냐?” “아니, 난 닭 가슴살이 좋아.”라고 대화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씁쓸함에 시원스레 웃을 수가 없었다.
“애들 좀 깎아 주지, 이렇게 될 때까지 두냐?”
대개 그렇듯이 부부싸움의 시작은 사소했다. 설이 지나고 일주일 후가 시아버님 제사였는데, 연이은 제사에 쓰고 남은 과일이 냉장고에서 흐물흐물해지고 있었다. 주말이라 누워 있던 남편이 냉장고를 열어 보고는 가지고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데, 중간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받아쳤다. “자기가 깎아 주면 되지, 꼭 내가 깎아 줘야 해?”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점점 커졌다. 주말이면 푹 쉬고 싶은 마음은 남편이나 나나 똑같을 텐데, 내 잘못이라는 지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경제적인 벌이를 책임지고 여자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것이 기본이라는 남편과, 직장은 둘 다 다니는데 집안일은 여자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나 사이에는 애초부터 합의점이 없었다.
결국, 남편의 입에서 “네가 벌면 얼마나 벌었다고?”라는 말이 나왔고, “네가 사업하다 까먹은 것보단 적겠지.”라는 말만을 겨우 삼킨 내가 “그럼 나 당장 회사 때려치울 거야.”라고 하며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다음 날 보란 듯이 병가를 냈고 이후 직장을 정리하고 전업주부를 선언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내 전업주부 생활은 길지 않았다. 3~4개월도 못 가 남편이 니트 공장을 다시 시작하면서 1년 정도 공장에 나가 일을 도왔고, 그 후 몸이 아파 골골거리느라 몇 개월 쉬다가 다른 직장에 취직했다.
주 3일 출근에 2일 재택근무라 아침 8시에 나가 오밤중에 들어오며 주말도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남편에 비해 여유로운 나는 집안일을 전담하고 세 아이 치다꺼리도 도맡았다. 대신 남편의 생각을 존중해서 경제적인 부분은 남편에게 모두 맡겨 버렸다. 내가 버는 것으로는 남편 눈치 안 보고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운동복 사 입고 운동 다니며 체력 관리에 썼다. 체력이 나아지니 집안일에 지쳐 늦은 밤 퇴근한 남편에게 짜증 내는 일이 줄었다. 지혜까지는 아니어도 ‘슬기로운 부부 생활’을 위한 나만의 방식을 찾았달까.
그저 닭 가슴살이 좋은지 닭 다리가 좋은지만 물어보고 해결되는 문제라면 좋을 텐데, 기본적인 사고의 차이는 좁히기 힘들다는 것을 20년 가까이 살고야 깨달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사람 고쳐 못 쓴다’거나 ‘사람 안 바뀐다.’라는 말을 하나 보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다른 사고가 더 확고하게 굳어지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견해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투기부터 하려고 해서 말 자체를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를 봤다.
대화는 대체로 아이들 칭찬에 대한 것만 한다. 다투지 않을 최적의 소재를 찾은 것이다. 아이들이 제자리를 찾아 떠나고 나면 둘만 남을 텐데, 그때는 소 닭 보듯 하며 멀뚱멀뚱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고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툼을 줄이려는 노력이 오히려 소통의 부재로 이어졌다. 좁혀지지 않는 차이를 그냥 두고 기찻길의 레일처럼 방향만 맞춰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지만,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다. 위안이라면 오래 살아온 다른 부부들도 비슷하다는 점이랄까? 닭 다리 할아버지와 가슴살 할머니도 다투지 않으려다 소통의 창구까지 닫아 버린 것일지도.
결혼 전에 남편 아니, 그때는 맞선으로 만난 남자에게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침이면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얘기를 들으며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내가 생각한 아침 식사 광경은 아내가 토스트를 굽고 남편은 달걀프라이를 하며 아이들은 식탁을 차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다 같이 앉아 눈부신 햇살을 배경으로 우유를 따라 주며 깔깔 웃기도 하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가 생각한 것은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정갈하게 식탁을 차린 후 “다들 식사하세요.” 하면 남편이 “으흠!” 하고 나와 앉아 수저를 들고 아이들도 따라 조용히 수저를 드는 모습이다. 아내는 밥 먹다 일어나 숭늉을 내와도 좋겠다. 그는 사극만 봤나 보다. 이래서 디테일이 중요한 건데, 소통을 반만 했던 후유증이 오래가고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며 누구나 추앙해 마지않을 톨스토이도 그의 아내 소피아의 처지에서 보면 열셋이나 되는 아이의 양육과 가사를 홀로 도맡아야 하는 아내를 위해 주지는 못할망정 작품 옮겨 쓰는 일까지 시키는 무정한 남편일 뿐이다. 물론 톨스토이 관점에서 소피아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숭고한 일을 막은 악처일 뿐일 테고.
20년쯤 지나 남편이 더는 경제적인 책임을 지지 못하는 나이가 되면 나도 더는 살림살이에 매여 반찬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까? 아니면 “나는 널 위해 돈을 벌어다 줬는데…….” “날 위한 돈은 내가 벌었어.”라는 인터넷 유머를 남기며 황혼이혼을 요구하게 될까.
“나 물 좀 떠다 주라.”
글을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 내게 꽂히는 남편의 목소리. 이대로면 20년쯤 더 살아도 ‘지혜로운 부부 생활’은 요원한 일이다. ‘슬기로운 졸혼 생활’을 꿈꾸는 것이 최선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