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
남편과 대화도 시도하고 싸우기도 하고 참아도 보지만, 결론은 둘 중 하나다. 깔끔하게 안녕하고 뒤돌아설 것인가, 이대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볼 것인가.
사표 운운하며 브런치에 거하게 연재까지 했지만, 내 결론은 아직 지지고 볶기이다. 그렇다면 사직서 대신 휴가신청서를 내 보면 어떨까. 신혼 초에 나는 집안일이 하기 싫을 때마다 “나 오늘 파업!”이라고 외치고 빈둥거렸다. 그때는 그런 모습도 봐줄 만했는지,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었다. 아이가 생기고 난 뒤로는 파업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어느새 나는 365일 연중무휴 24시 편의점 신세였다.
이제 아이들이 어지간히 커서 1박 정도는 나갔다 와도 괜찮아졌다. 작년 봄 업무를 겸해 혼자 싱가포르에 3박 5일 다녀왔을 때도 남은 가족들은 그럭저럭 괜찮게 지냈었다. 그럼 이제 장기 휴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는 것은 못 했지만, 소심하게 휴가 기간을 협상하는 건 시도해볼 만하다.
어느 해인가 러시아 문학기행을 다녀온 선배들을 부러워하며 글쓰기 모임에서 친해진 아흐동 주민들과 곗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몇 년 전, 1차로 아리랑 문학기행을 갔었다. 1박 2일이 얼마나 짧은지 다음엔 꼭 길게, 멀리 가자 다짐했었다. 문학의 거장들이 거닐던 낯선 거리를 언니들과 수다 떨며 걸을 생각만 하면 없던 병도 나을 기세다. 올해 말이면 큰아이 수능도 끝날 테고 마음은 더 홀가분해질 터다. 최대한 긴 휴가를 꿈꾸고 있다.
두 달 정도 연재하며 글 속에서 남편을 씹고 뜯어서 그런지, 긴 휴가만 생각하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와 그런지, 실물 남편에게는 전보다 너그러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째려볼 일도 웃으며 넘어갔다. 내가 부드러워지니 남편의 표정도 따라왔다.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이기려고 꽁꽁 힘쓰던 마음을 풀어버리니 팽팽하던 줄다리기의 줄 끝에 편안한 관계가 따라왔다.
휴가신청서는 던지지 말고, 고이 접어 품에 안겨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