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의 일주일
청명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서울에서 한두 시간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이국적인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이어져있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제출하고, 열을 잰 후에 잠시 일행을 기다렸다. 곧 엠블란스 한 대도 도착했다. 엠블란스 뒷문이 열리고 언니와 함께 아빠가 침대채 들려내려왔다.
그날이 오늘 다시 생각이 난 건 일본인 의사인 야마자키 후미오의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집어 들어서였다. 일본에서는 1990년에 발간된 책이니 꽤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웰다잉'에 대한 화두가 떠오를 때면 지금도 종종 언급되는 책인 듯했다. 병원은 '치료'의 목적이기에, 이미 삶의 끝을 선고받은 이들은 쉽게 '방치'될 수 있다는 얘기를 실제 사례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자신의 인생처럼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환자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폭풍에 휩싸인 돛단배처럼 의사들에게 실컷 농락당한 뒤 죽음을 맞았다.'라며 논란을 부를만한 말들도 있다. 무리한 연명 치료보다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를 얘기하는 그 끝은 자연스레 호스피스로 이어진다.
내가 아빠와 마지막으로 머문 그날의 그곳이 바로 호스피스였다. 결국 아빠의 숨이 멈추던 그날까지 일주일 정도를 호스피스에서 보냈다. 뒤돌아보면 이 일주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도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호스피스에서 경험한 다정함의 온도 때문이기도 했으며, 하나의 생명체로써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서이기도 했다.
3층. 호스피스에서 아빠의 방이 배정된 그곳으로 올라간 순간부터가 그랬다.
"가족이 어떻게 되죠?", "다들 마음이 어때요?"
"아빠가 평소 어떤 성격이었어요?", "뭘 좋아하셨어요?"
"그간 어떻게 투병하셨어요?", "그래서 보호자 분은 지금 좀 괜찮고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총 3분과 함께 얘기를 나누는 자리.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묻는 게 신기했고, 아빠뿐만 아니라 보호자로 들어와 있는 나에게도 그 배려가 확장됨에 당황스러웠다.
병실로 돌아가 다시 아빠 옆에 앉았는데, 조금 전 나눈 대화의 여운이 맴돌았다. 병원과 호스피스는 그 공간이, 사람이, 언어가 주는 온도 자체가 달랐다. 병원에서 더 이상 의미 없던 채혈이 새벽마다 계속되었고, 짧은 회진을 제외하고는 의사를 보기도 힘들었고, 고통을 호소해도 진통제 한 번 더 맞기가 어려웠는데 호스피스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의 중심은 환자였고, 보호자였다.
다음날은 한 남성 요양보호사님이 슬쩍 들어오시더니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면도를 하시면 더 멋있겠네. 아버님 제가 깨끗하게 정리해 드릴게요"
곧 쉐이빙 크림과 면도날을 가져오시더니 슥슥- 수염을 정리해 주셨다. 차분하게 면도를 해주시면서도 따뜻하게 묻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어디서 왔는지, 무슨 암인지, 어떻게 투병하셨는지, 한참을 얘기를 나눴다.
호스피스에서 아빠의 상태는 더 빠르게 안 좋아졌다. 호스피스 안에서 함께 산책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밥을 삼키지 못했다. 가래가 끓기 시작했고, 숨소리는 더 불규칙해졌다. 맥박이 안 잡히기는 때가 잦아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들어오는 건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숨길이 막히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숨이 막히는 게 가장 힘들대요"
장로님이라고 했던가, 인사를 하는 와중에 내 등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계속 누워 있다 보니 여기저기 욕창이 생기려고 했다. 얼마 후 1인실로 옮겨졌다. 코로나로 가족 중에 추가 2명이 임종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모든 것들에 제약이 있었다. 엄마와 동생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아빠와 둘이 남았다. 가래는 더 들끓었고, 갑자기 아빠의 숨이 멈출 것만 같아서 잠을 잘 못 잔 채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12월이 다 지나가던 그 어느 날 가늘게 이어지던 아빠의 숨이 멎었다.
그날,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길, 고개를 들어 호스피스 건물을 올려다봤다. 병원 복도는 다른 환자의 보호자 분이 손을 흔들며 떠나는 나와 아빠를 지켜봐 주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누군가 바라봐줌이 이렇게 힘이 되는 경험은 이때가 가장 강렬했으리라.
호스피스는 결코 인간이 죽는 장소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아가는 장소다.
-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중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곳에서, 다정함을 만난 줄이야.
그곳을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다정함은 여전히 한 존엄한 생명으로 대해주는 말에서, 행동에서, 눈빛에서, 그 모든 것들에서 분출되고 있는 무언가였다. 마냥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수용과 인정에서 오는 편안함도 함께.